10월의 두 참사가 던지는 질문...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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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8]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 현장. 경찰은 지난 11일 오후 사고 현장 통제를 해제했다.©뉴시스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 현장. 경찰은 지난 11일 오후 사고 현장 통제를 해제했다.©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10월은 비극적이고 잔인했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이 깔리면서 150명이 넘는 생명이 사망했다. 그에 앞서 10월 1일 인도네시아 자바의 도시 말랑에서는 축구장에서 13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이 두 개의 참사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10·29 참사'가 발생한 당시의 이태원 현장을 두고 많은 이들이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고 성토했다. 대규모 인파가 그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 몰려들어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던 무질서 속에 이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해줄 공권력이 부재했다. 그 골목 위아래에 경찰 몇 명만 배치되어 있었더라면... 이런 뒤늦은 푸념이 참사현장을 지켜본 국민들의 새카매진 가슴 속에서 터져 나왔다. 십수통의 신고전화가 접수될 동안 국가는 죽어가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했는가.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된 그 곳을 왜 국가는 방기했는가.

10월 1일 인도네시아 말랑의 리젠시 칸주루한 축구장에서는 정반대에 가까운 상황이 펼쳐졌다. 국가권력이 과도하게 행사됐다. 당시 진행된 '아레마 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의 축구 경기에서 홈팀이 패하자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관중의 구장 난입을 마치 시위대를 진압하듯 진압봉으로 타격했다. 심지어 그도 모자라 관중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경찰의 무지막지한 진압에 놀란 관중들은 축구장 출입구로 우루루 몰렸다. 하지만 상당수의 문이 잠겨 있었고, 열려 있는 문도 대규모 관중들이 일시에 출입하기엔 너무 작았다. 결국 비극적인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인도네시아 말랑 축구장의 문제는 여러가지다. 구장 측은 경기가 끝나기 전에 모든 출입구를 개방해야 한다는 인도네시아 축구협회(PSSI)의 규정을 지키지 않았으며, 허용된 인원을 초과해 관중을 받아들였다. 진짜 문제는 흥분한 관중을 향해 마치 범죄자 다루듯 막무가내로 폭력을 행사한 공권력이었다. 축구장 내 최루탄 사용은 이를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을 어긴 것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경찰이 FIFA 규정을 어겼다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비록 필드에 난입한 관중이 질서를 어긴 것이 분명하더라도 그는 분명 인도네시아 국민의 한 사람이다. 국민에 대해 권력을 집행할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며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임무다. 하지만 그 날 말랑의 리젠시 칸주루한 구장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은 질서를 어긴 국민을 때렸고, 최루탄을 쏘며 토끼몰이를 했다.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심했다는 증거이며, 국민을 향해 힘을 행사하는 데 대해 주저함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지난 10월 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말랑 리젠시의 칸주루한 축구장 13번 출입구 앞에서 시민들이 축구장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현지 당국은 지난 1일 발생한 축구장 참사 당시 희생자 125명 중 어린이가 17명 포함됐다고 밝혔다. ©뉴시스
지난 10월 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말랑 리젠시의 칸주루한 축구장 13번 출입구 앞에서 시민들이 축구장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현지 당국은 지난 1일 발생한 축구장 참사 당시 희생자 125명 중 어린이가 17명 포함됐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인도네시아는 다종족사회(multi-ethnic society)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여건 탓에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단일한 공동체적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특히 현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과 건국을 중부 자바인들이 주도하면서 다른 섬 지역민들은 자신들이 자바인들에게 ‘정복당했다’고 여겼다. 당연히 건국 과정과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분리독립 운동과 저항이 지속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반란과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과 경찰력을 강화시켰다. 수하르토 군부독재가 오래 지속됐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인도네시아의 국가기구는 불균형적으로 성장한 반면 인도네시아 사회는 분열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국가의 공권력이 국민을 존중하는 문화가 쉽게 자라나지 못한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참사가 빚어진 후 국민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비극의 장소가 된 리젠시 칸주루한 경기장을 허문 후 새로 짓겠다고 발표했다. 구장의 잘못된 설계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 이게 정치쇼로 끝날지 아니면 인도네시아 국가권력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그날 이태원에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권력은 어떻게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수습할 것인가. 잔인한 2022년의 10월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은 국가권력에게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국가는 국민에게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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