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윤리 저버린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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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더탐사' 유족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실명 공개
'피해자 보호' 명시한 재난보도 준칙 위배..."심각한 보도윤리 불감증 결과"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박수선 엄재희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신생 온라인 매체인 <민들레>와 <더 탐사>는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민들레>는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왔으나, 이태원에서 단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걷다가 느닷없이 참혹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인재(人災)이자 행정 참사인데도 사고 직후부터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며 책임을 논하는 자체를 금기시했던 정부 및 집권여당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두 매체는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유족 동의를 받지 못했다며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족들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단이 공개되자 고인에 대한 2차 가해, 명예훼손이라는 성토가 들끓고 있다. 관련 기사에는 "비극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냐"는 비판 댓글이 줄을 잇고 있고, 여당은 "유족의 권리마저 빼앗은 무도한 행태"라고 반발했다. 

이명재 <민들레> 대표 겸 미디어비평 애디터는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지적에 대해 “위폐도 없는 초상집이 어디에 있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2차 가해를 누가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며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희생자 명단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의무감으로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생 인터넷 매체인 '민들레'가 14일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신생 인터넷 매체인 '민들레'가 14일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하지만 희생자 실명 공개는 ‘피해자 사생활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재난보도 준칙과도 배치된다. 
 
재난보도 준칙은 서문에서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최근 마련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에도 ’재난 당사자 및 가족의 사생활과 인격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당사자 동의를 얻지 않은 명단 공개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재난보도 준칙의 첫 번째가 고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추모의 방식은 제3자가 정하는 게 아니다. 순수한 의도로 보이지 않고, 의도가 순수했더라도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보도한 외신은 희생자들을 실명으로 보도하고, 국내에서도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에 희생당한 고인들의 실명이 공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악성댓글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유족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온라인에 고인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너무 많다. 개인에게 참사의 책임을 묻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족 동의도 없이 명단을 공개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명단을 공개한 두 매체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낸 논평에서 “ 이번 명단 공개는 재난보도준칙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 제18조(피해자 보호) 및 제19조(신상공개 주의)를 모두 위반한 심각한 보도윤리 불감증의 결과”라며 “지금이라도 두 매체는 유족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해당 기사를 삭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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