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승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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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선 출마 선언한 트럼프, “대단한 성과” 주장했지만...
현장에서 보니, 전현직 대통령 모두 패배한 美 중간선거

지난 11월 7일 열린 오하이오주 트럼프 집회 현장.©강윤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15일 중대 발표'를 예고한 11월 7일 오하이오주 유세 현장.©강윤기 특파원

[PD저널=강윤기 KBS 뉴욕PD특파원] 전 세계가 주목했던 미국의 중간선거가 11월 8일 치러졌다. 주별로 우편투표 등의 개표 절차가 다른 탓에 선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든 선거 결과가 확정되진 않았다. 공화당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격전지로 출장을 떠났던 필자 역시 취재를 진행하며 적지 않게 당황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 공화당이 상하원을 압승할 거라는 소위 ‘레드웨이브(공화당의 상징색인 붉은색이 물결을 이룬다는 뜻)’는 없었다. 

상원은 펜실베이니아, 네바다 등에서 민주당이 이기며 조지아의 결선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승리를 확정지었다. 하원도 공화당이 20여 석 이상 더 확보할 거라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겨우 몇 석 차이로 공화당이 진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여 년간 집권당이 계속해서 참패해왔던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들을 돌이켜보면 무척 이례적인 결과다.

무엇보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엄중한 경제 상황이 지속되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40%를 밑도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 더욱 놀랍다. 많은 이들은 이번 중간선거가 2020년 대선의 연장전, 즉 대통령 전직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 바이든을 밀어내며 차기 대선으로 향하는 레드 카펫을 펼치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졌다. 왜 그랬을까. 취재를 위해 격전지였던 조지아주와 오하이오주를 합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공화 민주 양당의 선거 운동 현장을 지켜보며 각 후보들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동시에 양당 지지자들을 계속 만나며 그들의 속내를 들어보았다.

하루 이틀 지나며 취재 현장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하이오주에서 만난 한 민주당 지지자는 “경제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없으면 경제가 무슨 소용이냐. 민주주의가 있어야 경제도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원한 후보들을 극단주의자들이라 비난했다. 또 유세 현장에서 만난 여러 유권자들은 여성의 낙태권을 폐기한 연방대법원도 문제였지만 지난 2020년 대선을 여전히 부정선거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용인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과 트럼프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준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반응이 이해된다. 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메흐메트 오즈는 TV 프로그램 출연으로 유명해진 의사, 소위 스타 닥터였다. 트럼프의 열렬한 후원을 등에 업고 경선을 통과한 그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했다. TV 출연 당시, 대체의학 등을 과도하게 소개했다는 자질론에 휩싸인 오즈 후보는 4% 차이로 민주당 존 페터만 후보에게 패배했다.

조지아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허셜 워커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다. 그는 스스로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구라 칭했다. 트럼프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고 그 덕에 경선을 통과해 상원의원 후보까지 올랐다. 역시 지난 대선 결과를 부정했다. 또한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를 찬성했다. 그런데 그가 과거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강요했다는 폭로가 등장하며 역시 자질론에 휩싸였다.

그나마 소위 ‘트럼프 키즈(트럼프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던 후보들)’ 중에서 오하이오주의 JD 밴스 후보 등이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그의 득표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밴스 후보의 상대였던 민주당 후보는 비록 패배했지만 지난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후보가 받았던 득표율보다 1.5% 이상 득표율을 올렸다. 

공화당 지지자들 인터뷰 장면.©강윤기 특파원
공화당 지지자들 인터뷰 장면.©강윤기 특파원

이번 중간선거 기간 공화당 유세에서 아주 특이한 점이 있었다. 공화당 공식 행사에서 그 누구도 트럼프를 거론하지 않았다. 후보들의 유세 발언에서도 그랬고 지지자들의 연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 내부의 반감이 생각보다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직접 주최하는 ‘미국을 구하라, Save America’ 집회의 분위기는 달랐다. 중간 선거 전날이었던 11월 7일, JD 밴스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오하이오주를 찾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마음껏 ‘2020년 대선이 잘못된 선거였고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압승할 것이며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다시금 백악관의 주인으로 세울 수 있다’고 외쳤다. 공식 유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밴스 후보도 이 집회에서만큼은 트럼프를 한껏 치켜세우며 나라를 되찾자고 외쳤다. 어쩌면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고립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민주당과 바이든의 승리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민주당의 선방 내지 ‘정신승리’일 수는 있지만 바이든 역시 패배한 아니, 다가올 패배를 미리 경험한 선거라 생각한다.

왜냐고? 바로 중간선거를 통해 공화당의 스타로 떠오른 사람은 론 디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 1978년생, 공화당의 젊은 라이징스타는 민주당 후보를 20% 넘는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리며 재선 주지사가 됐다. 공화당 전통 지지자들이 좋아할 스펙도 고루 갖추었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자 이라크 참전 경력까지 갖춘 디산티스는 이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밀어내고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디산티스의 등장은 트럼프뿐 아니라 바이든에게도 뼈아프다. 디산티스가 뜰수록 그보다 36살이나 연상인 바이든이 대선가도에서 강제로 밀려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 트럼프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유세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바이든에게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대가 트럼프니까 마지못해 바이든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다고 할까.

이런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가 밀려나고 디산티스가 차기 공화당의 주자로 떠오른다고 해도 바이든이 재선을 노릴 수 있을까. 결국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는 졌지만 바이든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 후보 유세현장.©강윤기 특파원
미국 민주당 후보 유세현장.©강윤기 특파원

이 글을 쓰고 있는 미국 현지 시간 11월 15일 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2024년 차기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역시 트럼프다운 결정이다.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선거가 끝나자마자 트럼프 본인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현장에서 지켜본 느낌은 달랐다. 선거는 끝났고 바이든과 트럼프 둘 다 이겼다 말하지만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한꺼번에 패배한 선거는 아니었을까.

※이번 취재에 담긴 현장들은 지난 12일 방송된 <특파원보고, 세계는지금>에 이어 오는 24일 방송 예정인 <다큐인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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