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인권을 오염시키는 보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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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 논란에 5‧18 유공자, 전교조까지 소환한 여당
장애인 예산 증액 요구 "삥 뜯었다" 주장 중계에 묻히는 질문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서울 삼각지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는 제47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유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14일부터 18일까지 국회 국토교통상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육위원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등 예산이 논의된다'면서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 반영 희망을 품고 이번 주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유보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서울 삼각지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는 제47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유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14일부터 18일까지 국회 국토교통상임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육위원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등 예산이 논의된다'면서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 반영 희망을 품고 이번 주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유보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정치 뉴스 비중이 큰 우리 언론 환경에서는 지금처럼 정쟁의 수위가 높으면 아슬아슬한 발언들까지 모두 보도가 되기 마련이다. 최근 10·29 참사 희생자 성명 공개를 두고 벌어진 여야 공방에서 국민의힘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이나 전교조 명단을 비공개해야 하고 핼러윈 참사 희생자 명단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기준인가?”라는 말이 나왔다.

재난, 참사와는 전혀 무관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심지어는 현재 살아있는 ‘유공자’, ‘이념적 마녀사냥’의 피해자인 전교조 조합원들까지 소환됐다.(조선일보 <“5‧18유공자 명단은 비공개, 이태원참사 명단은 공개?” 與반발>11.14) 지저분한 말잔치를 언론이 그대로 중계하면서 과연 정부가 피해자와 유족을 먼저 찾아가 위로하고, 피해자 목소리를 반영한 지원 및 재발방지책 마련 등 근본적, 영구적 추모를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중요한 질문은 사라졌다. 

같은 시기,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애먼 피해자는 장애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0·29 참사 애도 기간이 끝난 후 11월 7일부터 출근길 투쟁을 재개했다. 올해 초 대선 국면에서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동권 투쟁을 ‘비문명적 지하철 인질 시위’로 낙인찍으며 파문이 일었고 정치권이 일단 장애인 권리 예산 논의를 약속했으나 변한 건 없었다.

저상버스 도입 확대나 장애인 콜택시 운전원 고용을 위한 예산은 여전히 없는 수준이고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 보조를 위한 장애인활동지원 단가는 최저임금을 밑돌고 있으며 탈시설 시범사업 및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역시 예산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지경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이 모두 개점휴업 상태다.

결국 재개된 출근길 투쟁은 11월 14일에도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장애인들의 권리 예산 증액 요구 상당 부분을 반영하기로 하면서 잠정 중단됐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놀라운 발언이 언론을 타고 튀어나왔다. “삥 뜯겼다”는 비난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  <전장연 “예산 반영으로 시위 유보”… 與 내부선 “예산 삥뜯겼다”>에서 “전장연은 장애인의 이동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탈시설화’를 요구하며 지하철을 점거하고 운행을 방해하며 출근길 시민의 발을 묶었다. 그러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장연이 요구했던 탈시설화 예산 요구에 굴복했다”고 적은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옮겼다. 

“만약에 개딸들이 이재명 수사하지 말라고 지하철을 점거하면 어떤 명분으로 금지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장연은 탈시설화와 관련된 부패혐의 의혹이 있다”, “‘삥을 뜯었다’는 표현보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가 결국 아낙을 집어 삼켰던 것처럼 전장연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상세히, 반론도 없이 인용했다.

왜곡과 혐오로 점철된 정치인의 발언은 이렇게 언론을 통해 공론장에 멀끔한 치장을 하고 입장한다. 장애인은 ‘당대표 수호에 나선 정당 지지자’와 달리 이동, 주거, 교육, 노동 등 천부적, 일상적 권리의 보장을 요구한다는 점, ‘탈시설화’는 고립된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에 안착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당연히 ‘이동권’과 연계된다는 상식들은 ‘개딸들의 이재명 방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은폐된다. 대체 ‘전장연의 부패혐의’가 뭔지, 기본권 보장이 대체 왜 ‘삥’을 뜯는 행위와 같은지, 정치인도 언론도 설명하지 않는다. 

서울신문 11월 8일자 1면 기사.
서울신문 11월 8일자 1면 기사.

정치적 오염을 넘어 참사로 인권을 오염시키는 보도들도 많다. <“사고 날 것 같다” “숨 못 쉬겠다”…‘이태원 공포’에 떤 지하철 출근>(서울신문 11.8)과 같은 보도가 출근길 투쟁 직후 만연했는데, 출근길 시위로 증가한 민원 중 ‘숨 막힌다’는 사례만 골라 ‘이태원 참사’와 연결시킨 사례들이다.

지하철 시위 재개에 갑자기 2년 치 ‘시위로 인한 민원 건수’(8120건)를 공개한 서울교통공사와 기다렸다는 듯 그 숫자를 보도하며 마치 이번 시위로 인한 민원 건수인 것처럼 제목을 뽑은 언론사(<"숨 못 쉬겠다"…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시위 민원 8120건>한국경제 11.9)들의 ‘팀플레이’도 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7일 보도한 <탈선사고·전장연 시위로 지하철 혼잡…“사람들 엉켜 숨 못쉴 정도”>처럼 탈선사고로 인한 열차 지연 및 축소를 전장연 시위의 결과로 뒤섞은 보도들도 보인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2~3일 전에 택시를 예약해 최소 40분, 최대 3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벌어지지 않는다.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대로 타지 못해 외출을 포기하지 않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의지에 반해 고립된 시설에 갇혀 교육과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사회적 교류를 차단된다면, 우리 다수는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불편하다면 언론은 최소한 우리 중 대부분이 겪지도 못하는 세상 곳곳에 널린 차별들을 함께 보여주고 고민의 여지를 줘야 한다. ‘이재명 방탄도 지하철 시위하면 들어줄거냐’ ‘삥 뜯겼다’ ‘장애인들로 인해 이태원 참사가 생각난다’와 같이 오염된 상상들을 언론이 전시하는 사이 그 상식적인 고민들은 사라진다. 참사와 인권 앞에 선 우리 언론의 반복되는 ‘허수아비 때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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