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 익숙한 현대사 품은 회귀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3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 기록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첫 회에 주인공이 죽는다. 그리고 곧 시간이 되돌려져 다시 살아난 주인공이 이미 살았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삶을 재설계한다. 이른바 ‘회귀물’ 스토리다. 이미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그 저변이 넓혀져 하나의 장르가 됐다.

웹툰과 웹소설이 드라마의 원작으로 자리한 지 오래, 당연히 회귀물도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 4월 방영됐던 이준기 주연의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 이어, 이번에는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그 계보를 이었다.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장이라는 그럴 듯한 직함을 갖고 있지만 윤현우(송중기)는 사실상 오너 일가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하는 현대판 머슴에 가깝다. 그런 그가 재무팀장이 될 기회를 잡는다. 누군가에 의해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는 자산을 회사에 귀속시키는 것이 조건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윤현우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된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시간이 되돌려져 1987년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막내 손자 진도준(김강훈)이 되어 있다. 진도준은 순양가의 내놓은 자식 셋째 아들 진윤기(김영재)의 아들인데 의문의 사고로 죽은 인물이다. 어린 진도준이 되어 다시 살게 된 윤현우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재설계’를 시작한다.

먼저 진양철 회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리지만 예사롭지 않은 두뇌와 감을 가진 인물로 자신을 포장한다. 대선에 누가 당선될 것인가를 알려줌으로써 진양철 회장이 미리 뇌물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심지어 비행기 폭탄테러로부터 죽을 수도 있었던 회장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회귀물’이 가진 강력한 판타지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에서 비롯된다. 태생적으로 삶이 결정되는 ‘수저 계급’의 사회에서 더 이상 노력한다고 해도 삶이 바뀔 수 없다는 걸 절감하는 세대들은 이제 차라리 ‘인생 리셋’을 판타지로 꿈꾸게 된다. 모든 걸 처음으로 다시 되돌려 새로운 삶을 살고픈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에 ‘회귀물’은 한 번 살아봤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쉽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판타지도 더해진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재벌집 막내아들>이 흥미로운 건 회귀물 판타지의 밑그림을 ‘익숙한 현대사’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첫 번째 현대사는 1987년 6·10 민주화 운동으로 6·29 선언이 발표된 뒤 처음으로 직선제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다. 순양가에서는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 중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예측해 대선 비자금을 건네려 한다. 모두가 김영삼, 김대중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할 때, 어린 진도준이 노태우가 될 거라며 그럴 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실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진양철 회장은 진도준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진양철 회장이 진도준을 신뢰하게 되는 건 1987년 11월29일에 벌어진 KAL기 폭파사건 때문이다. 미리 사건이 터질 걸 알고 있던 진도준이 진양철 회장을 움직여 다른 비행기를 타게 함으로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된 것. 

이처럼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물이 갖는 판타지 서사에 익숙한 현대사의 밑그림을 넣음으로써 판타지를 더욱 그럴 듯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복고 가득한 옛 자료화면 속에서 그 때를 회고하면서, 그 때 이런 선택을 했으면 지금은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상상에 빠져든다. 보통의 회귀물이 사적인 삶에서의 다른 선택을 통한 새로운 삶을 욕망하게 만든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순양가라는 재벌집 막내손자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면서 나라를 뒤흔드는 국가적인 사건 속에서 다른 선택들을 욕망하게 만든다.

그때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그때 신도시에 땅을 샀더라면, 그때 미리 달러로 원화를 모두 바꿔 놓았다면 같은 상상들을 하게 만든다. 익숙한 현대사라는 굵직한 밑그림을 품은 회귀물은 그걸 공통으로 겪어온 대중들의 시선을 보다 폭넓게 끌어안게 됐다. 3회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낸 데는 이런 독특한 특징이 숨겨져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