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1.5배속 시청...무너진 콘텐츠의 시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필독도서 58]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오학준 SBS PD] 6.3초. 2022년 일본 대중가요의 인기곡 상위 스무 개의 평균 도입부의 길이다. 2011년,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전에는 17초 정도로 비교적 일정했다.

<일본경제신문>이 ‘배속 일본’ 기획 기사에서 일본이 이른바 ‘고속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증거로 든 사례다. 기사에서는 이 현상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좋아하는 곡을 골라 듣는데 부담이 크게 줄었고, 더 많은 곡을 더 짧게 듣고 판단하게 되면서 제작자들 역시 그 짧은 시간에 노래가 소비자의 귀에 감기도록 도입부의 길이를 줄이면서 발생한 것이라 분석했다.

영상 분야에서는 판단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아예 콘텐츠의 ‘시간’ 축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배속 버튼을 눌러 영상을 재생하거나, 커서를 직접 이동해 장면을 건너뛴다.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요약 영상만 소비한다. 제작자들도 이에 대응해 자극적인 제목이나 썸네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려 하거나, 영상 앞부분에 재미있는 내용만 요약해 넣는 식의 전략도 쓰지만, 이렇게 대응하는 게 맞는지는 아직 누구도 확답하기 어렵다.

PD로서 공들여 쌓아 올린 영상을 멋대로 건너뛰고, 짧은 요약 영상을 보고선 다 봤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마뜩하진 않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로서 시간이 부족하단 이유로 배속 버튼을 누르고, 스포일러가 포함된 영상으로 내용만 간단히 확인했던 때도 있다. 모두가 그러하다면, 영상 콘텐츠의 소비 행태는 돌이킬 수 없게 변화해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게 느긋하게 영상을 감상하라 요구한다면 시대착오적일까?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집어든 데에 그 답답함도 큰 몫을 했다.

이나다 도요시가 집필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가 집필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그가 보기에 오늘날 봐야 할 영상이 너무 많아졌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더욱 바빠졌다. 작품마다 정성을 들일 시간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오히려 애써서 골랐다가 시간만 날릴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에서 ‘가성비’를 찾기 시작했다.

꾸준히 노력해도 보상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에, 열정적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할 사람들은 적다. 요약 영상 정도면 ‘실패’는 면한다. 제작자들도 이에 반응해 점차 대사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게 된다. 감상의 집중도가 떨어지니 힐끔 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독백을 장면마다 채운다. 시청자들은 대사만으로도 상황을 알게 되니 장면들은 부담 없이 건너뛴다.

이나다 도요시는 영상을 게임 공략하듯 대하는 태도의 밑바탕에는 영상을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쾌락을 얻고 SNS에서 대화의 소재로 삼기 위해 소비하는 오락적 사물로 보는 시선이 있음을 지적한다. 콘텐츠 소비 비용도 급감한지라 정보가 필요하거나 눈요기가 필요하면 굳이 집중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반복해서 시청하면 된다.

그러니 쉬운 플롯, 상투적인 대사, 직접적인 제목이 유행한다. 해석에 이견이 있거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불쾌하거나, 서사가 너무 복잡하면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된다. 예전엔 맘에 들지 않는 작품을 소비하길 포기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해 직접 창작자에게 작품 수정을 요구하는 능동적인 소비자 행동에 나선다.

SNS라는 소통 수단은 창작자를 압박하는 동시에 소비자를 옭아맨다. 언제나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서 대부분의 소통이 일어나니 고립을 피하려면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을 어떻게든 봐야 한다. 동시에 언제든 모르는 ‘괴수’가 비판할 수 있으니 틀릴법한 말은 삼가야 한다. 그 와중에 개성도 살리려면 다양한 작품을 섭렵해야 한다. 삼중고에 시달린 결과, 사람들은 재치있게 요약된 ‘패스트 무비’(유튜브 요약 영상)를 자주 본다. 어쨌든 밥은 먹어야 하니까.

제목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작품들, 끝까지 읽어야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교한 평론은 예전과 같은 권위가 없다. 여유도 없는데 나의 얕은 이해를 꾸짖는 작품과 평가에 불쾌하기는 싫으니까.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감상, 해석, 작품으로 만들어 낸 필터 버블 속에서 느끼는 안온한 평화를 언제든 깨트릴 수 있는 타자는 그렇게 시선에서 사라진다. 결말까지 포함하는 요약 영상이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고 즐거우니까.

ⓒ픽사베이
ⓒ픽사베이

하지만 그 날카로운 분석이 결론 부분에서는 약간은 뭉툭해진다. 구조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기보다 현실을 ‘자연화’한다. 제작자들도 분투해야 한다면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재원이 부족하고, 평생직장과 사회보장이 사라져 안전한 미래를 구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적절하게 지적했지만,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이해한다. 영상 콘텐츠를 ‘무자비’하게 소비하는 태도가 그들의 사회적 상황이 빚어낸 것이라면, 상황을 바꿀 수도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요약’을 원하는 건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 줄 요약’은 MZ 세대 이전부터 있었다. 호흡이 긴 글과 영상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어쩌면 언제든 콘텐츠 감상을 멈추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수단들이 확보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사람을 산만하게 만드는 자극들이 널려있는 한 누구든 집중도가 낮아지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산만해지고 있는 것이라면, 진단과 처방도 조금 달라져야 할지 모른다.

정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재미있고, 이해하면 더 재미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들의 대응도 매우 중요하지만, 타자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이 불편한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태도를 만들어내는 젊은 세대의 상황에 변화를 줄 방법이 무엇인지를 방송이 따져 물을 필요도 있다. 어째서 그들에게 자원과 시간이 부족한지, 그저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기 전에 실제로 여유를 가질 만큼 보장해 주었는지를 묻는 그런 작업들.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단순한 콘텐츠 제작자가 아니라 TV라는 매체를 경유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시청자의 요구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동시에 그 행동에 적절한 자극을 시도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시청률(!)에 둔감하지 않으면서도 반 발짝의 거리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시도들은 그래서 소중해 보이는 게 아닐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