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대입 시즌, 학생들에게 필요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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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으로 예측 가능한 세상,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23학년도 논술고사가 실시된 11월 27일 오후 서울 이화여자대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2023학년도 논술고사가 실시된 11월 27일 오후 서울 이화여자대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지원 EBS PD] 11월의 주말, 서울의 대학가는 붐빈다. 토요일 아침, 예정에 없이 한 대학 근처를 들렀다가 약간은 들뜨고 동시에 묘하게 차분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점퍼를 입은 재학생들은 밝고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를 하고, 외투를 여며 입은 부모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교문 어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제는 내게 먼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누구나 잊기 힘든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법한, 대입 시즌이 왔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고3이 되는 고등학교 후배가 대입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역사상 만점자가 가장 많이 나온 수능과 전년도에 비해 전체 평균이 60점 이상 하락한 두 번의 수능을 겪은 나는 당시 한껏 시니컬해져 있었다. 불안을 안고 고3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시험은 복불복’ 이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많이 본다. 당장 성적과 대학을 걱정하는 아이들도 결국엔 훗날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과연 나를 책임지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했다. 부모 앞에선 투정 부리고 한껏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낯선 어른인 내게는 가끔 속마음을 내비치곤 한다. 예전의 나보다 세상 보는 눈이 더 밝아진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훨씬 많이 느낀다. 섣불리 ‘열심히 하면 잘 될거야’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이미 지나온 사람의 잘난 척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더욱이 조심스럽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그동안 닿지 않았던 동창들의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전교 꼴찌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던 이의 이야기였다. 이웃 동네에서 사슴 농장을 한단다. 사슴 농장이 잘 되어서 도에서 표창도 받고 신문에도 났다고 한다. 우리 동창 중에 그 친구가 제일 부자일 거라고 소식을 전하는 이가 말해주었다. 꼴통이라고 소문났던 다른 친구 이야기도 들었다. 지역의 대학가에서 PC방을 하는데 본인 소유의 PC방이 2개나 된다고. 웬만한 샐러리맨보다 훨씬 더 잘 번단다. 물론 그 PC방에 놀러가면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덧붙였다. 

기뻤다. 사슴 농장을 하던 전교 꼴찌 친구가 더 큰 부자가 되기를, 지역 사회에서 더욱 존경 받기를 바랐다. 동창이긴 하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남이어도 좋았다.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이 다가 아님을, 사회는 또 다른 세상임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꼴찌와 꼴통의 성취를 절로 응원하게 됐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고등학교 성적이 좋으면, 그리하여 좋은 대학을 가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높은 연봉은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될 수 있어 미래의 불안을 낮춘다. 학교라는 틀에 있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성적은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는 또한 재능에 가까운 것. 한 자리에 우직하게 앉을 수 있는 기질을 가진 아이들에게 특별히 유리하다. 

학교에서의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동창들에게 부모의 지원이 얼마나 바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했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차라리 공부 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느낄 정도의 고통이나 실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적만이 아니라 생의 방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만은 확실하며,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한창 입시의 터널을 지나는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된 나에게도 세상이 한 가지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성적이라는 한 가지 길 밖에 없다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세상에 누가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생은 예측 불허하고, 그러기에 의미가 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을 만들지만, 내 앞에 놓인 길이 어디로 연결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공평하다. 이 계절이 지나면 누구는 대학을 갈 것이고, 누구는 가지 않을 것이다. 누구는 원하는 곳을 갈 것이고, 누군가는 예상치 않았던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작이 목전에 다다른 이 계절, 모든 아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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