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없는 정부, ‘균형’ 잃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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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요구에 업무개시명령으로 화답한 정부
'민주노총 악마화' 혈안된 언론, 초장시간 노동 현실 은폐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본부가 총파업 일주일째인 30일 오후 광주 광산구 대한송유관공사 전남지사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본부가 총파업 일주일째인 30일 오후 광주 광산구 대한송유관공사 전남지사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에 정부는 대화 없이 ‘업무개시명령’이라는 행정명령으로 답했고 급기야 손해배상 청구와 유류 보조금 제외 등 행정부가 가할 수 있는 모든 강제력 동원을 공언하고 있다. 화주와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노조’도 ‘파업’도 아니라면서, ‘안전운임제는 정부 아닌 국회 권한’이라면서도 ‘파업 분쇄’를 위해서는 ‘노동자로서의 책임’을 요구하며 따르지 않으면 ‘행정부의 권한’을 휘두르겠다는 태도다. 

정부의 이러한 ‘노조 척결 기조’는 언론 지형에 만연한 ‘노조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화물연대 파업’ 관련 보도 다수가 ‘우려’ ‘차질’ ‘피해’ 등의 키워드를 앞세웠고 비노조원 화물차에 발사된 ‘쇠구슬’, 비노조원에 대한 ‘운송 방해’ 등 ‘민주노총의 범죄’를 중계했다.

정말 그게 ‘파업’이라는 현상의 전부일까? 건설현장 래미콘 타설 56%(29일 기준) 중단 등 일부 산업 현장에 피해가 발생했으나 컨테이너 장치율(보관 능력 대비 실제 보관 비율)이 파업 기간 내내 평시를 밑돌아 물류 적체가 발생하지 않기도 했다. 28일까지 파업 관련 폭행,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으로 입건된 사건은 6건, 12명이다. 범죄로 점철된 파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수치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언론의 ‘파업 보도’는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보인다. 파업 첫날인 지난 24일 연합뉴스의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둔춘 주공 내일부터 공사중단 위기>는 “철강업계 역시 출하량 감소가 불가피해 우려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시멘트 공장의 생산은 예정대로 진행 중이지만, 파업이 일주일 이상 장기화하면 시멘트 재고가 적체되며 시멘트 생산 중단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다”, “내달 초 분양에 들어가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는 레미콘 타설이 중단될 위기”와 같이 피해를 ‘예상’ ‘우려’하는 문장으로 구성됐다. ‘철강업계가 우려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장은 ‘업계’를 의인화해 ‘우려’를 증폭시키려는 ‘문학적 수사’에 가깝다.

이후에도 ‘파업 피해 우려 중계’는 실시간으로 이뤄졌다. 지난 27일 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 '강대강' 대치속 내일 교섭…전국 곳곳 물류차질> 역시 ‘물류차질’을 제목에 썼지만, 정작 내용은 “산업계 피해는 이번주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업무개시명령을 전한 29일 보도들은 “정부는 총파업 이후 시멘트 출고량이 평소보다 90∼95% 감소해 전국 곳곳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것으로 보고 시멘트업을 업무개시명령 대상으로 정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업무개시명령에 화물연대 삭발투쟁 대응…산업계 피해 확산> 연합뉴스11.29) ‘이미 중단된 공사’가 아니라 ‘공사 중단’을 ‘예상’함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예상에 따른 행정명령’이 가능하고 정당한지, 언론은 묻지 않았다.

조선일보 11월 26일자 보도.
조선일보 11월 26일자 보도.

업계가 ‘우려’할 수 있는 피해 관련 보도들은 그나마 ‘파업’ 보도이기는 하다. ‘민주노총 악마화’ 외에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 기사들도 있다. <조선일보> 26일자 보도 <무법 민노총… 채용 요구 안들어주자 공사장 막고 신분증 검사>는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기간에 맞춰 ‘무법’이라는 제목을 뽑았는데 정작 기사 안의 ‘불법’ 사례들은 지난 2~4월 사건들이다.

전태일기념관도 언론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NOW] 시의원에 ‘사과문 모욕’ 준 민노총>(조선일보 11.26)는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장태용 의원이 11월 10일, 전태일기념관 운영에 “지나치게 단발성 행사 위주인 데다, 방만하다”하다고 지적하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성명서를 보내 “소감문과 사과문을 A4(용지) 2매 이상 작성하라”며 “줄 간격 160%, 함초롬돋움 11포인트(특정 글자체를 11크기로 하라는 뜻), 기본 여백” 등 구체적 형식까지 지정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전태일 기념관은 서울시의 재정 사업 평가에서 2020년 ‘보통’, 지난해는 ‘매우 미흡’ 판정을 받았다”, “2020년에는 9억5600만원을 들여 ‘전태일 50주년 행사’를 했는데, 홍보비로만 1억2800만원을 썼다”며 전태일기념관이 실제로 방만하게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9년 개관부터 기념관을 위탁 운영 중인 전태일재단, 그리고 직원 대부분을 구성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합원들을 겨냥한 보도다.

‘실제로 방만하게 운영되어 지적했더니 민주노총이 협박을 한다’는 그림인데 역시나 반쪽짜리 그림이다. 전태일재단은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서울시가 전태일기념관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 삭감에 착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매우 미흡’을 받았다는 재정사업평가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시가 평가 기준으로 삼겠다는 통보를 했으며 시정 요구와 이의제기 절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기념관이 줄곧 ‘우수’ 등급을 받아 2021~2024년 재위탁을 받는 이유가 된 종합성과평가와 재정사업평가 결과가 너무 다르다는 점도 이상하다. 재정사업평가 기준이 자의적이기 때문이라는 게 재단의 입장이다. 재정사업평가에서 서울시가 협의도 없이 주요 사업과 부차 사업으로 사업을 분류하고 부차 사업에 홍보, 교육, 문화 사업을 포함시켰는데 이 부차 사업들이 방만하다며 내년 예산 70%를 삭감해버린 것이다. 추모와 기념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기념관 시설은 당연히 홍보, 교육, 문화 사업이 ‘주요 사업’이고 이 사업들의 성격상 수익이 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지만 예산을 삭감하려는 시와 ‘민주노총 악마화’에 혈안이 된 언론에게 그러한 상식은 통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업무개시명령을 선언했지만 언론은 이미 그 전부터 <[사설] 파업 화물연대에 정부 운송개시명령, 법의 엄정함 보여라>(매일경제11.24), <[사설] 화물연대 파업 피해 더 커지면 업무개시명령 불가피>(조선일보 11.26) 등의 기사로 ‘업무개시명령도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갖가지 ‘피해 우려 중계 보도’와 ‘민주노총 처벌 기원’ 보도 속에 실제 현실 다수가 은폐되고 있다. 정부는 화물노동자를 향해 ‘고임금’이라며 최저임금도 필요 없는 ‘개인사업자’ 취급을 하지만 그들은 하루 16시간 초장시간 노동에 기름값 등 고정 지출과 트럭 값 포함 3억 5천만원에 이르는 초기 비용 등을 제하면 한 달 300~400만원을 벌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28일 갑자기 ‘파업은 재난’이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출범시켰는데 이 부조리극을 비판하는 언론도 극소수다.(<이상민·윤희근, 화물연대 대응 앞장…고개 든 참사 책임자들>한겨레, 11.28) 노조의 잘못이나 파업 피해를 보도하는 양의 절반만이라도 이런 현실을 다뤘다면 정부가 지금처럼 ‘대화 없는 강경일변도’를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균형마저 잃어버린 언론에게도 ‘대화와 타협’의 가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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