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도 ‘유노동 무임금’…비정규직 결방료 지급 왜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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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 결방 프로그램 50개 넘어...'방송 송출' 기준으로 임금 받는 비정규직들
"월드컵 기간 임금 절반으로 줄어"...대다수 방송사 결방료 지급 조항 無
"표준계약서에 결방료 지급 명문화 필요"...스포츠계 특별기금 조성 제안도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질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 앞에 월드컵 트로피 조형물 설치돼 있다 ⓒ뉴시스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질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 앞에 월드컵 트로피 조형물 설치돼 있다 ⓒ뉴시스

[PD저널=엄재희 기자] 방송작가 등 방송계 비정규직들이 프로그램 결방으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이번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도 반복됐다. 일은 일대로 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특별기금 마련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한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4일까지 지상파 3사가 경기 중계 등으로 결방한 프로그램은 50개가 넘는다. 32강 경기가 오후 7시·11시간대에 치러지면서 이 시간대에 편성된 생활정보, 시사, 예능 프로그램이 대거 결방됐다.   

문제는 대다수 방송사 비정규직은 프로그램이 결방하면 정규직과 달리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송사·외주제작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거나 위탁·용역을 체결한 방송작가, 독립PD, 방송 스태프는 방송이 나간 뒤 임금을 받는다. 

지상파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A씨는 "임금을 주 단위로 받는데 이번 월드컵 기간 임금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주도 있었다"며 "올해는 야구 포스트 시즌 때도 결방돼 이중고를 겪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월세도 못 낼 지경이 되어 일상생활 자체가 흔들리는 작가 동료도 있었다"며 "월드컵은 온 국민의 축제이지만, 우리는 일이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소외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프로그램이 결방된다고 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A씨는 "결방하면 나중을 대비해 예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톡' 작업을 하거나 새로운 기획을 해보자고 업무지시가 내려온다"며 "그런데 방송은 송출이 안 됐으니까 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일은 정규직처럼, 임금은 프리랜서처럼 준다"고 지적했다.

'유노동 무임금'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기간이나 특집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명절 때마다 지적을 받아온 문제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지난 9월 외주PD와 작가 2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명절 기간 임금을 아예 받지 못했다는 사람은 42.3%(107명)에 달했다. 응답자 64.4%는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꾸준한 문제제기에도 결방료를 지급하는 방송사는 드물다.

안동MBC 포항MBC 등 일부 지역사가 노조와 합의해 결방료 지급을 명문화했지만, 대다수 방송사는 결방료에 대한 근거 규정이 없다.  KBS ‘방송제작비 지급 규정’에는 방송 계획이 변경됐을 때 출연료의 50~60%를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비정규 제작진에 대한 임금 보전 방안은 빠져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출연료 보전 조항'을 작가들에게 준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유지향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은 "방송계는 관행적으로 프로그램이 송출되면 페이를 지급한다"면서 "노동의 기준을 송출 여부로 따지는 것인데, 일을 했으면 돈을 지급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1월 17일 방송 제작 종사자들과 만나 결방 기간 임금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1월 17일 방송 제작 종사자들과 만나 결방 기간 임금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임금 미지급'이 방송계의 불합리한 관행으로 지목되면서 정부도 뒤늦게 문제 개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류호정 의원은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서 "계약서도 없이 일 시키는 외주제작사들을 관리·감독하려면 일단 실태를 알아야한다. 조사된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고, 박보균 장관은 "카타르 월드컵과 과거 결방 피해를 다시 한번 전면적으로 살펴보면서 확실한 대책을 살피겠다"고 답했다. 박보균 장관은지난달 17일 방송 제작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임금 미지급 문제에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류 의원실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 제작사 3자가 참여해 프로그램 결방에 따른 임금 미지급 문제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정례회를 만들어서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하자고 제안할 계획"이라고 했다. 

표준계약서에 결방료를 명문화해 방송사에 권고하는 방안과 특별기금 조성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방송사의 사정으로 편성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방송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임금의 70~80%는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 간담회에서 특별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 지원준 한국독립PD협회 정책위원장은 “한국대표팀이 월드컵에 출전하면 대한축구협회는 배당금을 받는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프로야구 경기로 수익을 얻는 단체들이 수익금의 1%를 출연해 문화체육상생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기금을 통해 결방사태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비인기종목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굶는 사람 없이 상생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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