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언 난무하는 '대장동·서해 피격' 검찰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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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의심 근거로 문 전 대통령·이재명 대표 수사 임박 보도 쏟아져
경향 한겨레 등 일부 매체만 "‘첩보 삭제’ 공소 제기 못한 검찰" 비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1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1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 최고위급 안보 책임자인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기소된 가운데, 지난 13일엔 노영민 전 비서실장, 14일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잇따라 소환됐다. 주요 혐의는 2020년 9월 23일 관계장관회의에서 고 이대준 씨의 피격 사실을 은폐하고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기 위해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검찰의 대대적인 사정 사건들은 감사원과 검찰을 거쳐 야권 거물급들이 구속 또는 기소되는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언론도 사정당국의 행보를 거리낌 없이 따라가고 있다. 대장동 의혹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언론 보도는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에서 나온 전언과 ‘의심’은 물론, 구속영장, 공소장 내용이 시시각각 생중계되고 있다. 반면 당사자의 반론이나 사정기관의 관점을 향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12월 9일 서훈 전 실장 구속기소하면서 검찰은 그간 강조해온 ‘첩보 삭제 지시’ 대신 ‘피격 사실 보안 유지 지시’가 직권남용이라는 혐의에 무게를 뒀다. 그러자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검찰이 확보했다는 진술과 ‘검찰의 의심’이 주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4일 '단독'을 붙인 <서훈 “서해 피살 남북관계 악영향” 입단속… 비서관 “실장 미쳤어”>에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서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비서관 일부가 회의를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와 ‘이거 미친 거 아니냐, 이게 덮을 일이냐’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라고 하는 등 반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서 전 실장이 대통령에게 상황 보고 하지 않고 은폐를 결정 및 실행한 것”이라는 ‘검찰의 판단’을 전했다.

누가 그런 진술을 했는지, 다른 진술은 없었는지, 어째서 ‘첩보 삭제 지시’는 추가 수사하기로 하고 ‘보안 유지 지시’가 핵심 혐의가 되었는지, 이 보도만 보면 중요한 질문들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하다. 검찰발 진술과 의심만이 현실을 구성한다.

장기간 수사하고 있는 대장동 사건 보도는 더욱 극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수사 확대 전 美 가라더라”… 김만배, 남욱 ‘출국 종용’ 정황>에서 '본지 취재'를 근거로 ‘검찰이 대장동 개발 분양대행을 맡은 이 모씨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통화 녹음파일’에 "김만배 씨가 남욱 씨에게 수사 확대를 우려하며 미국으로 나가 있으라고 말한 걸 남욱 씨가 이 모씨에게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그간 쏟아진 ‘검찰발 진술 전언’, ‘공소장 속 검찰의 의심 전언’을 넘어 ‘남욱 씨가 들었다는 전언을 들은 이 모씨가 녹음한 통화 녹취 전언’이다. 언뜻 읽어보면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고 그게 어떻게 보도까지 이어졌는지 전언의 전달 과정조차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중 전언’ 보도의 맹점이다. 그 녹취 내용을 입수한 검찰 외에 다른 출처를 떠올리기 불가능하지만 ‘본지 취재’라는 모호한 표현 속에 사실상 출처도 없는 보도다. 

이는 ‘검찰발 보도’의 고질적 단면이다. 사회적 관심이 높고 정쟁으로 크게 번진 사안일수록 철저한 검증보다 오히려 ‘검찰발 보도’가 더욱 일상화된다. 가까운 시일 내 ‘검찰발’로 보도할 전언이 부족하면 언론은 과거로도 향한다. <[단독] 서해 피살 ‘7시간 감청원본’…서욱, 삭제지시 했었다>(조선일보, 12.8)의 경우 역시나 ‘본지 취재’를 근거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검찰과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이 관련 북한군 교신 내용이 담긴 우리 군의 ‘감청 원본’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검찰 수사 이전 감사원 조사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 정확히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 ‘감사원발 진술 전언’까지 ‘단독보도’가 됐다. 이러한 일방적 보도 양상 속에 서해 공무원 사건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가, 대장동 사건에서는 이재명 대표 수사가 임박했다는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경향신문 12월 13일 6면 기사.
경향신문 12월 13일 6면 기사.

‘검찰발 정보’들에서도 당연히 다른 의미나 의문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유독 우리 언론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양질의 질문은 극히 일부 매체의 메아리에 그친다. <[단독] 검찰 “서훈 보안유지 지시는 직권남용…경계강화 못했다”>(한겨레, 12.9)는 검찰이 서훈 전 실장 구속영장에서 주요 혐의를 ‘피살 및 소각 사실의 보안 유지 지시는 직무유기’라고 제시했다며 이를 비판했다. 보안 유지 지시로 군의 경계태세 등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고 ‘군에 대한 보안 유지 지시’가 과연 ‘직권남용’에 해당되기는 하냐는 질문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단독으로 보도한 <검 “서해 피격, 자위권 발동했어야”···군작전 가이드라인 제시까지?>에서 검찰이 서 전 실장 구속영장청구서에서 서 전 실장의 보안유지 지시로 ‘북한 도발에 따른 자위권 발동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논리를 폈으며 이는 “고도의 군사·안보적 조치인 ‘자위권 발동’에 대해서까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 비판했다.

두 보도는 그간 서훈 전 실장의 ‘월북 외 첩보 삭제 지시’를 강하게 주장한 검찰이 정작 공소장에는 ‘피살 및 소각 사실의 보안 유지 지시’라고 쓰며 ‘첩보 삭제’는 공소 제기도 못한 이유와 관련해 큰 시사점을 던진다.

대장동 사건에서는 뉴스타파 보도(<정영학 자필 메모 입수...천화동인 숨은 지분 428억 어떻게 나왔나>11.23)에 주목할 만하다. 뉴스타파는 이재명 대표 최측근 2명의 구속기소까지 이어진 핵심 쟁점인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의 정체가 ‘이재명 대표 측에게 할당된 수익’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아니라, 정영학 회계사가 직접 계산하여 여러 비용을 제하고 ‘유동규 본부장’ 몫으로 산정한 액수임을 보여줬다. 근거는 ‘진술 전언’이나 ‘검찰의 의심’이 아니라 실제 검찰에 제출된 ‘정영학 자필 메모’다. 

이렇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들이 지배적 보도 양상에서 사라진 현실은 위험하다. 사정기관으로부터 일사분란하게 터져 나온 보도들이 일찌감치 구성해버린 ‘전 정권 범죄 이미지’는 추후 실제 유무죄 여부와 무관하게 지금 당장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전 정권을 겨냥한 수사들은 여당이 10·29 참사 국정조사 등 정부·여당 책임이 불거진 사안마다 야당에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

참사 유족의 진실규명 요구를 ‘민주당 방탄 국정조사 불가론’으로 거부하는 끔찍한 정치 현실에 과연 언론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어째서 ‘참사 유족 전언 보도’는 ‘사정사건 검찰발 전언 보도’만큼 만연하지 않은 걸까? 객관적 근거나 정황, 진술에 대한 겹겹의 ‘크로스체크’라는 언론의 기본 양식이 사라졌다는 점은 ‘검찰발 보도’의 근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목적 때문에 기본 양식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것은 아닌지, 이 서글픈 질문을 언론에 또 던질 수밖에 없는 ‘사정정국’ 한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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