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대신 마음을 채우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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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주인공 맡은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자극 강한 드라마 범람 속 따뜻한 감성 내세워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일단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방향성이 느껴진다. 그건 ‘맵다’는 뜻이 아니고, ‘매울 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담긴 의미가 들어 있어서다. 결국 이 드라마는 어쩌면 큰 일이 별로 벌어지지 않는 우리네 하루하루의 ‘오늘’을 그리고 있지만, 그 오늘들 중 조금은 ‘매운’ 어떤 날을 맞이할 거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도 아주 매운 건 아니고, 조금 매운. 

제목처럼 이 드라마가 담는 이야기는 일상적이다. 물론 그 이면에 있는 사건은 결코 작지 않다. 아내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고, 별거 상태였던 남편(한석규)이 아내(김서형)의 부탁으로 집으로 돌아와 뒷바라지를 한다. 당연히 아들(진호은)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다. 엄마와 이혼까지 하려 했었는데, 갑자기 집에 들어와 그것도 안하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게 영 마뜩찮다. 그러니 드라마가 가져야할 인물들 간의 극적인 갈등구조는 다 있는 셈이다. 불치병, 불화 등등. 

하지만 드라마는 갈등을 통한 극적인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대신 엉뚱해 보이지만 대장암 투병을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부단히 인터넷을 들여다보면서 차려내는 건강식 레시피를 블로그에 올리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첫 에피소드에서 굳이 소금을 넣지 않고 만들어내는 ‘무염 잡채’ 이야기를 한석규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툭 내놨을 때는 도대체 왜 이런 음식을 이 남자가 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은 그것이 아내의 건강을 위해 좋은 재료를 찾고 좋은 방식으로 음식을 내놓으려는 남편의 정성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따뜻함으로 바뀐다. 

보통의 암 투병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라면 눈물이 철철 흐르는 감정 과잉이 되는 게 다반사지만, 이 드라마는 오히려 철저히 감정을 눌러 놓고 차분하게 이 사태에 대응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여준다. 한석규의 내레이션은 중저음의 매력으로 드라마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부터 내려놓게 만들고, 여기에 김서형의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 역시 어차피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오히려 담담하게 그걸 받아들이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찾아내려는 드라마의 남다른 태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담담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면에 담긴 아픔이나 상대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 같은 것들을 더 깊게 느끼게 해준다. 

왓챠 오리지널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왓챠 오리지널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전 세계적인 방송 트렌드가 된 먹방이나, 음식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음식은 말 그대로 식욕을 자극하는 소재로 주로 활용되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매회 잡채, 돔베국수, 굴비, 떡국, 탕수육 같은 음식들이 소재로 등장하고 레시피도 소개되지만, 식욕을 당기는 방식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환자식에 가까운 ‘건강한’ 음식들이 일반 시청자들의 식욕을 당기게 하긴 어려우니 말이다. 대신 그 건강함에 깃든 따뜻함이 마음을 잡아당기는 드라마다. 

“뜨거운 이야기는 많은데 따뜻한 소재들은 드물다. 여러분들한테 이 드라마가 좋은 추억으로, 천천히 오래 기억되는 드라마로 남았으면 한다.” 한석규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실로 뜨겁고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어느 때보다 많아진 요즘이다. 특히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레거시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높은 수위와 자극을 가진 드라마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반대급부로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단번에 시선을 잡아끌고,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그런 자극적인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심심하지만 보면 볼수록 대사와 상황 하나하나를 곱씹게 되는 드라마. 당장의 허기를 달래주기보다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드라마. 보고 나서도 한참을 따뜻한 포만감 속에 머물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다.

그래서 연일 맵게 싸우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일상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고, 좀 매운 삶 역시 다소 담담하게 보게 해주는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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