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떠난 자리에서 열린 '아바타: 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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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돌아온 제임스 카메론...항홀하고 무자비한 바다, 환상적으로 그려내

지난 14일 개봉해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지난 14일 개봉해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제임스 카메론이 바다로 돌아왔다. 과장을 허락한다면, 나는 <아바타: 물의 길>을 이 한 줄로 요약하고 싶다.

13년 만에 우리에게 돌아온 이 기념비적인 블록버스터는 전작과 다르게 바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영화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서 나는 이것이 아바타 세계관의 확장이라고 예상했다. 판도라 행성의 육지를 비추던 카메라가, 이제 바다까지 끌어안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확장이 아니라 이전이다. 제이크(샘 워싱턴) 가족은 바다로의 '이동'이 아닌 '이주'를 택했다. 제임스 카메론은 (어쩌면 잠시뿐이라 할지라도) 육지와의 이별을 고하고 바다의 품에 온전히 안긴 것이다. 13년 만에 다시 불리는 노래는 아득한 물길 위에서 시작된다. 

전작만을 생각한다면 이런 변화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바타 세계관의 창조주, 제임스 카메론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익숙한 전개라고 할 것이다. 그는 <타이타닉>(1998), <심연>(1990) 등 다양한 작품에서 깊은 바다, 심해(深海)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을 고백해 왔으니 말이다. 

재밌는 것은 <아바타: 물의 길>에서도 그의 바다에 대한 애정이 불쑥불쑥 스크린에 묻어나고는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바다가 된 것이 서사나 액션 상의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름답고, 물속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바다가 아니었어도 제임스 카메론은 얼마든지 화려한 영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바다를 향한 것은 그의 '사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사로운 마음 말이다. 전반부에서 영화는 자꾸만 판도라 해상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영화는 찰방찰방 물장구를 치며 푸른 물의 색감과 질감을 만끽한다. 마치 스스로 창조해 낸 공간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러므로 바다를 대하는 이 영화의 태도는 이권을 따지는 '하늘의 사람들'도 아니고, 생존을 걱정하는 '제이크'도 아니고, 오직 그곳을 경이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영적으로 교감하는 '키리(시고니 위버)'의 그것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나는 실망했을 것이다. 영화가 판도라 해상의 아름다움을 늘어놓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민망한 자화자찬에 불과하니까. 이 영화가 바다를 대하는 태도의 묘미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그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 속 바다는 생명을 품은 특별한 공간으로 한 단계 격상된다.

제이크 가족과 마일즈 쿼리치(스티븐 랭)의 격렬한 싸움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누구나 예상했던 전쟁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제이크가 승리했을 때, 사실상 영화의 서사는 마무리된다. 빌런은 사라졌고 히어로는 승리했다. 남은 자들은 여유롭게 승리를 만끽하면 될 터이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작한다. 제이크 가족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이리저리 부서진 선박의 기체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들은 비록 싸움에서는 이겼으나,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이제 그들이 극복해야 하는 것은 어떤 적도 아닌 바다 그 자체다. 그들을 경탄시키고 내치기도 했지만, 끝내 품어주고 새 삶의 터전을 제공했던 바다.

이 순간 그들이 느끼는 바다는 영화의 전반부에서 경이에 차서 바라봤던 그곳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여러 생명을 담은 영롱한 액체가 아니라 그들의 호흡을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시꺼먼 물이다. 제이크는 바다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하고 급기야 생을 포기하려 한다.

나는 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자꾸만 <타이타닉>을 떠올렸다. 물론 그것은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에 대한 오마주를 자꾸 삽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없이 낭만적이던 바다가 죽음의 장소로 돌변했다는 것과, 그 가운데 선박이 침몰해 있다는 점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타이타닉>이 침몰의 순간을 재난 블록버스터의 장르적 연출로 소화한 뒤 서둘러 사랑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아바타: 물의 길>은 침몰 후의 잔해를 보다 오래 응시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기체 아래 갇힌 이들이 느끼는 공포, 절망, 실낱같은 희망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순간 <아바다: 물의 길>은 마치 <타이타닉>이 미처 보지 못했던, 난파선 아래의 어두운 공간을 끝까지 지켜보겠노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다. 그러는 동안 바다는 행복한 한낮에 보여주지 않았던 또 하나의 잔혹한 얼굴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것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지독히도 두렵다. 두 개의 얼굴을 통해 바다는 비로소 온전한 제 모습을 되찾는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안기는 이 광활한 우주가 바로 바다가 아닌가. 그렇게 <아바타: 물의 길>은 <타이타닉>이 떠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며 바다를 둘러싼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적 세계를 확장한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아바타>만큼이나 <아바타: 물의 길>도 3D 기술에 대한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판도라 행성과 주요 배경인 해상의 비주얼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 아름다움이 기술력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판도라 행성 바다의 아름다움은 진실과의 접촉에서 온다. 무슨 진실? 바다에 대한 진실 말이다. 그것은 바다가 얼마나 황홀하고도 무자비한 공간인지를 아는 연출자가 내릴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제임스 카메론과 바다, 그리고 아바타의 만남이라니. 이곳에서 후속작을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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