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책임 따지지 않는 국조특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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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국조특위 가동했지만...유가족 요구사항 진척 없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예산안 처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이유로 국정조사를 거부하던 여당이 유가족의 호소를 마주하고 나서 국정조사에 합류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뒤늦게 국정조사는 시작됐으나 유가족이 국정조사와 함께 요구했던 사항들은 진척된 게 하나도 없다. 시민 분향소 옆에서 유가족과 희생자를 향해 매일 막말을 쏟아내는 보수단체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유가족을 향한 대통령의 공식 사과나 이상민 장관 파면은 정부는 물론, 여당 국조특위 위원들도 적극 거부하고 있다. 10대 생존자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벌어졌지만,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치료와 지원은 여전히 당사자가 먼저 연락을 시도해야 하는 수준이다. 추모 공간도 시민대책위와 유가족협의회가 직접 조성해야 했으며 유족 간 소통 공간을 만드는 역할도 시민단체가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유가족 동향이나 참사 진상규명 및 사후조치 현황을 보도로 접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참사 2개월 만에 10·29 참사 관련 보도는 축소되고 파편화, 정치화됐다. 예산안 합의까지 ‘국정조사’를 언급한 대부분의 보도는 여야의 예산안 공방에 따라 지연되는 부수적 요소 정도로 다뤘을 뿐이다.

국정조사특위가 본격 활동에 돌입한 이후에는 엉뚱한 정쟁 사안이 국정조사를 덮어버렸다.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이태원 국정조사’ 언급 보도(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는 488건, 이 중 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이른바 ‘닥터카’ 논란을 함께 다룬 보도가 170건, 35%에 이른다. ‘예산안’을 함께 언급한 보도도 156건에 달하는데 국정조사 보도 중 2/3가 ‘신현영 닥터카’ 논란과 ‘예산안 처리 상황’으로 채워졌다는 의미다. ‘국정조사’ 없는 ‘국정조사 보도’다.

27일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서는 ‘신현영 닥터카’ 논란 질의만 반복하는 여당 위원들을 향해 유가족이 “신현영 하나 물고 늘어지는 이런 국조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는데 언론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닥터카’와 ‘예산안’으로 ‘국정조사’ 보도가 채워지는 사이, 23일 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하여 “유족들이 부담을 느껴 못 만났다” “중대본은 촌각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 “(참사 현장에서의 인력 배치, 현장본부 설치, 교통 및 인파 통제, 영안실 및 병원 수배 등의 역할)그건 중대본과 무관하다” “중대본은 사후수습단계에서 필요했다. 당시 이미 골든타임 지났다” “내가 갔을 땐 수습 상황이었다” 등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왜곡한 이상민 장관의 행보는 은폐됐다.

이상민 장관의 해당 발언과 무관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언급이라도 한 ‘국정조사’ 보도는 31건에 불과하다. 당연히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기는 한지 톺아보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재난안전관리 기본법상 중대본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우려’만 있어도 설치할 수 있고 실무반을 편성하여 현장에 급파할 수 있으며, 현장 상황실도 설치할 수 있고 관련 기관에 특수기동구조대와 전문가 인력을 요청할 수 있다. 이 모든 권한과 책임은 당연히 중대본부장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있다.

버젓이 법이 있지만 장관은 아니라고 하고, 언론은 입을 닫았다. ‘내가 갔을 땐 수습 상황이라 중대본 설치가 급하지 않았다’는 주무 장관 앞에서 언론은 현장에 가보려다 논란을 일으킨 야당 의원만 붙잡고 늘어졌다. 이상민 장관은 27일에도 “골든타임은 지났다” “유족 명단을 서울시가 안 줬다”는 말을 했다. 

동아일보 12월 22일자 5면 기사.
동아일보 12월 22일자 5면 기사.

신현영 의원 닥터카 논란 보도는 정쟁을 증폭시키고 재연하며 참사 진상규명을 덮는 전형적인 ‘정치화’ 양상을 보였다. <與, '닥터카' 신현영 강공 "윤리위 회부할 것…명지병원도 조사"<(중앙일보 12.22.) 등 여당의 ‘갑질’ ‘콜택시’ 프레임을 중심으로 한 정쟁 중계 보도가 대부분인 가운데 ‘신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관용차를 함께 타는 바람에 차관이 못 탔다’는 단독보도(<신현영이 관용차 타자…상황실 가려던 차관 못타>동아일보 12.22.)부터 ‘해당 닥터카 의료팀은 신 의원과 협업한 게 없다’는 ‘닥터카 상황 보고서’ 보도(<신현영 “지원 팀원으로서...” 닥터카팀 “申·남편과 협업한 적 없다”> 조선일보 12.25) 등 여당의 ‘갑질’ 비난을 뒷받침하는 정황 보도들이 쏟아졌다.

급기야 신현영 의원과 윤석열 대통령의 동선을 대조하며 윤 대통령을 찬양하는 보도까지 나왔다. 지난 25일 <조선일보>는 <“구급차 방해 안하는 최단 경로로”… 이태원 그날밤 尹 동선은>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서울 자택에서 태우고 가느라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인데 “참사 당일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라며 깜짝 놀랄만한 도약으로 보도를 시작한다. 참사 당일 밤 11시 3분 자택에서 참사 최초 보고를 받은 후 대통령실로 출근을 했는데 참모들이 ‘구급차 통행을 방해할 수 있다’며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구급차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최단거리 경로를 찾아보라” 지시하여 결국 30일 0시 42분 경 대통령실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대통령이 지시하여 찾은 서초구 사저부터 용산 대통령실까지 ‘최단 거리’ 경로를 상세히 인용하며 윤 대통령이 결국엔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관계 부처에 지시 내리는 등 아침까지 사고 상황을 점검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신현영 의원 논란과 대통령의 동선이 무슨 상관이고 대체 왜 그게 갑자기 ‘관심’인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열심히 대처했다는 대통령이 참사 직후 30일 오전 현장에 방문해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압사? 뇌진탕 같은 게 있었겠지” 등 전혀 현실 인식이 안 된 발언을 했다는 데에 침묵한 점이 더 뼈아프다. 

27일 국정조사에서는 진상규명에 걸맞는 내용도 나왔다. 조응천 의원이 공개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부의 10월 14일 보고서는 핼러윈 기간 3일 동안 10만 명이 운집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인파 관리’ 계획 없이 ‘성추행, 마약범죄 등 우려’와 ‘일부 네티즌의 윤석열차, 토리아빠 코스튬 착용 가능성’을 주목했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다시 한 번 대통령실 집회 대응 때문에 경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기조나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비·경호 부담, 심지어 대통령 '심기 경호' 때문에 안전사고 사전 준비가 미흡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정부·여당은 완강히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요소는 언론 보도에서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규모 참사만 발생하면 유족과의 소통이나 지원, 진상규명에 있어 유난히 한 몸이 된 듯 소극적, 수동적 태도로 일관하는 세력이 있다면 언론이 고발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도 그 세력에 속해있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런 의심을 언론이 걷어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국정조사특위 활동 기간은 1월 7일까지,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한다면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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