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수저계급론에 갇힌 청춘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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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 하상수와 안수영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까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의 경계가 드리워져 있다는 인식은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콘텐츠에 투영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대표적인 사례다. <기생충>은 지상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라는 주거공간으로 구체화해 우리 사회가 가진 계급 시스템을 풍자적으로 그려 글로벌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수저계급론’으로 불리는 시스템들은 청춘멜로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는 흙수저로 태어나 변방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쌈마이’ 청춘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통해, 비록 사회가 그들을 ‘쌈마이’ 취급 한다고 해도 그들은 저들이 정해놓은 틀 바깥으로 탈주해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바 있다. 

또 하명희 작가의 <청춘기록>은 어른들이 태생을 통해 규정해 놓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계 속에서도 그 선을 우정과 사랑으로 넘어서는 청춘들의 희망 섞인 비전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쌈, 마이웨이>나 <청춘기록>은 둘 다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전의 멜로드라마들이 그토록 계급을 넘는 ‘신데렐라’나 ‘왕자님’ 판타지를 그렸던 걸 떠올려보면, 지금의 시대 인식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저계급의 선은 선명하고 그래서 넘어서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벌어지지 않는다.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계급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배경으로 은행을 가져왔다. KCU은행 영포점에서 일하는 하상수(유연석)와 안수영(문가영)은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하상수는 대졸자 정직원이고 안수영은 고졸 계약직이다. 연차로는 4년 차인 안수영이 3년 차인 하상수보다 선배이고, 그래서 이 은행에 처음 온 하상수는 안수영에게 업무를 배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직급이 역전되었다. 하상수는 계장이고 안수영은 주임이다. 당연히 하는 일도 다르다. 안수영은 예금창구에서만 일을 하고 있지만, 하상수는 종합상담팀에서 일한다. 

JTBC '사랑의 이해' 예고편 갈무리.
JTBC '사랑의 이해' 예고편 갈무리.

안수영이나 은행경비원 정종현(정가람) 같은 계약직을 보는 정직원들의 시선은 차별적이다. 커피나 음식 심부름을 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이 하는 일을 허드렛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 차별이 싫어 계속 직급전환을 시도하지만 고졸이 스펙의 전부인 안수영의 이런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선은 공고하다.

안수영은 4년간의 은행 생활을 통해 이러한 경계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선을 긋는다는 걸. 때론 사소하게 때론 너무 노골적으로.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출발이 다르니까. 공평한 기회처럼 보이는 일도 교묘한 차별일 뿐. 선밖에 있는 사람은 선 안쪽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그냥 인정하는 것. 이곳에서 나는 선 밖에 서 있는 사람이다.”

본래 사랑 이야기는 어떤 경계를 넘는 이야기로 귀결되곤 한다. 그 경계는 시대에 따라 신분이 되기도 하고, 국가가 되기도 하며, 집안이나 빈부가 되기도 했다. 신데렐라 이야기들은 달라진 감수성 때문에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신분의 차이를 넘는 사랑이야기로 각광받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등장하는 청춘멜로들이 남녀를 가르는 경계로서 태생적으로 갈라지는 ‘수저의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스펙의 문제만으로도 분명히 선이 나뉘고 그 선 때문에 사랑의 관계조차 불편해지는 <사랑의 이해>가 보여주는 현실은 어딘가 과거보다 더 첨예해지고 분화된 새로운 계급사회가 엿보이는 것 같아 더더욱 씁쓸해진다.

하긴 은행이라는 공간이 자본의 양에 따라 갈리는 계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나 돈을 맡기러 오는 사람을 구분하고, 그 돈의 양에 따라서도 세분화되는 계급이 은행만큼 당연시되는 곳이 있을까. 그 곳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사랑이 바로 그러한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틀어질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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