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이니셜 그리고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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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민 SBS 제작본부 PD

|contsmark0|‘모자이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빛깔이 나는 나무·돌·유리·조개껍데기 따위의 재료를 박거나 붙여서 만든 무늬나 그림’을 의미하는 미술 용어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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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방송pd들에게 모자이크는 더 이상 이런 예술적 향취가 풍기는 단어가 아니다. 명예훼손 소송이나 심의 지적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이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하는 작업을 이르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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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보고 있으면, 모자이크가 난무하고 있다. 어떤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 전체를 다 가리는 모자이크를 하고 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때도 있다(물론 대부분 음성변조도 동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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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문을 보고서는 k니 l이니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후 문맥을 통해 유추하는 게 하나의 일이 되었다. 많은 경우는 헛다리를 짚어서 같은 이니셜의 인물이 괜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다. 방송사에 있다 보면, 이니셜 뒤에 숨은 연예인이 누구인지를 문의해 오는 지인들의 민원(?)에 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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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6하 원칙을 가르친다. 기사를 쓸 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밝혀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누가’ 했는지가 모자이크와 이니셜 뒤로 사라지고 거기에 덧붙여 ‘어디서’ 벌어진 사실인지도 밝히지 않는(또는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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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나 기자 입장에서 보면 사건의 주체와 장소가 사라진 보도를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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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자이크와 이니셜 사용이 인권보호나 과도한 홍보행위를 막는 장치로 일정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방송에서 유난히 모자이크와 이니셜이 많다는 것이다. 해외 언론에서 우리처럼 많은 얼굴이 뭉개지고 아무개와 모씨가 많이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과연 해외 언론이 우리보다 인권보호에 소홀하고 보다 상업적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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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와 이니셜이 많아지는 첫째 원인은 pd나 기자들에게 있다. 모자이크나 이니셜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소송이나 방송 후의 잡음 등을 우려해 적당히 모자이크를 하거나 취재의 미진함을 덮어버리는 한 방법으로 이니셜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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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인은 언론 환경이다. 법원의 명예훼손에 대한 모호한 입장과 과도한 방송심의가 모자이크와 이니셜을 조장하고 있다. k(?)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원 판례로 보면 시사 프로그램 대부분이 ‘걸면 걸리는’ 상황이다. 공인의 한계도 협소한데다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어떤 사안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예측이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방적 차원에서 모자이크와 이니셜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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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자이크와 이니셜의 범람은 pd 등의 제작진이 주변 제작 환경에 적당히 타협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꼭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모자이크와 이니셜을 사용하고, 그것이 방송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떡칠’된 화면에 마음 아파하다가 어느 순간 모자이크와 이니셜에 익숙해지고 저항감도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자이크와 이니셜이라는 일상적 억압에 순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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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나 기자들이 외적 환경 때문에 자신의 양심에 반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자이크와 이니셜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분명 언론 자유의 침해이며, 취재의 미진함을 모자이크와 이니셜로 덮는다면 그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모자이크와 이니셜 뒤에 숨어버릴 때 언론의 환경 감시 기능은 무력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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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모자이크와 이니셜을 사용하는 게 인권보호 차원에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멀쩡한 얼굴을 뭉개는 것이 오히려 초상권 침해이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랑스러운 이름이 a나 q로 바뀌는 것도 일종의 명예훼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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