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곳곳 경고음...불안한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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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특파원 눈에 비친 미국 경제 상황은
'대사직'에서 대량해고로...1년 만에 분위기 급변

2022년 연말, 타임스스퀘어 새해맞이 행사에 쓰일 2023년 전광판을 구경온 인파. ©강윤기
2022년 연말, 타임스스퀘어 새해맞이 행사에 쓰일 2023년 전광판을 구경온 인파. ©강윤기 특파원

[PD저널=강윤기 KBS 뉴욕PD특파원] 2022년 맨해튼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팬데믹으로 텅 비었던 2020년과 오미크론 변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2021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화려하게 반짝였고 맨해튼 거리 곳곳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 인파로 가득 찼다. 백화점과 쇼핑거리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들 팍팍해지고 있다지만 아직 미국 경제는 살만한 건가. 연말 주머니 사정이 어떠한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대답이 비슷했다. “세일 하는 가게가 여느 때보다 많아 비교적 싼 제품들을 고르고” 있고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했다.

통계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확인된다. 한 카드 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연말,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증가세는 2021년에 비해서 0.9% 줄어들었다. 팬데믹 이전의 연말 소비시장으로 돌아가려면 소비가 더 늘어야 하는데 그 증가세가 꺾인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서서히 닫히고 있고 그나마 돈을 쓰는 것도 싸게 파는 세일 제품에 몰렸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LA로 가보자. 2021년 연말, 역대 최악의 물류 대란이 벌어졌던 LA항. 항구 주변에 100여 척의 화물선이 한 달 넘게 대기하며 하역작업을 기다렸던 곳이다. 취재를 위해 1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2022년 12월,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대기하던 화물선은 2022년 10월을 기점으로 모두 사라졌다. 밤샘 작업을 하던 터미널은 이제 이틀에 한 번꼴로 휴무해야 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밀려드는 수입 화물 때문에 터미널 곳곳에 만들어졌던 컨테이너 산도 자취를 감추었다. 터미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물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LA항의 적체 현상으로 다른 항구로 일부 화물들이 분산된 탓이기도 했다.

미국 LA항 터미널의 모습.©강윤기
미국 LA항 터미널의 모습.©강윤기 특파원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미국회사들이 물건을 사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물건들이 잘 팔리질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을 줄이고 있다. 연말에 유난히 세일이 많았던 이유도 이해가 됐다. 미국 소매업체들이 재고를 싸게 팔아 치우고 긴 경기침체의 터널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류의 흐름은 경기의 선행지표라고 한다. 뉴욕에서 만난 소비자들의 마음을 물류회사와 유통회사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다시 뉴욕으로 가보자. 맨해튼의 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났다. 그와 함께 2년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공실로 비어있는 최고급 아파트를 찾았다. 1700 스퀘어피트(약 47.7평) 아파트, 맨해튼 중심부에 있어 위치도 좋고 아파트 안에 수영장, 헬스장까지 갖춘 곳으로 우리 돈으로 57억 원이 넘던 아파트였다. 초고가 고급아파트였지만 인기 또한 최고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2022년 들어 상황이 변했다. 누구도 사려 하지 않는다. 결국 집주인은 가격을 1년 만에 46억 원으로 낮추었다. 무려 11억 원이나 내린 것이다. 뉴욕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거래는 말 그대로 절벽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풀었던 돈은 팬데믹이 끝나가자 40년 만의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유가는 한때 3배 가까이 뛰었고 식비와 주거비도 무섭게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계속된 미중 갈등은 안 그래도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인플레이션에 가속 페달을 달아주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역시 역대급 스텝으로 금리를 올렸다. 2022년 1월 0.2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난 12월, 불과 1년 만에 4.50%가 되었다. 이른바 돈 잔치는 끝났다. 부동산, 주식 시장은 급속도로 식었고 기업들도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몸을 잔뜩 움츠리기 시작했다. 

LA터미널항에서 ©강윤기
LA터미널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강윤기 특파원

그럼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얼마 전, 맨해튼의 IT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지인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런데 반가운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해고됐다는 것. 이름만 대면 알만한 뉴욕의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다른 후배에게 새해 인사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다. 다행히 그 후배는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얼마 전 대규모의 해고가 그 회사에서도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연일 미국 현지 뉴스에서는 layoff, 즉 해고 뉴스가 들려온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1만 7000명을 해고한다느니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도 만명 이상을 해고한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도 대규모 해고를 준비하거나 이미 시행했다고 한다.

기업들이 대규모 해고를 한다는 건 미래 경영상황에 대한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해 비용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불과 1년 전을 기억해 보자. 역대 최악의 구인난 속에 인건비는 치솟았다.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좀 쉬면서 더 좋은 직장을 찾겠다는 이른바 ‘대사직, Great resignation’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년 만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뉴욕도 LA도, 여기저기 미국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온다. 미국 경제는 어두운 긴 터널을 앞두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졌던 시장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급작스러운 경제 상황의 변화는 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매몰차지 않았던가. 그나마 기축통화 ‘달러’를 가진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이럴진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2023년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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