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절벽과 교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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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10]

이주호(오른쪽 두번쨰)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개혁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주호(오른쪽 두번쨰)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개혁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한때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한국의 발전을 이끈 것이 교육열이라는 분석이 여러나라에서 제기됐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나라로 널리 알려졌다.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지만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롤모델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교육과 입시지옥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한국의 교육열은 다행히(?) 더 이상 세계 최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자녀 정책이 자리 잡은 중국은 1인당 평균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자녀교육비를 지출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연 1억원 이상의 돈을 들여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고자 하며 이를 위해 각종 교육 관련 금융·보험 상품에 가입하고 있다.

중국판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오카오(高考)’의 응시인원은 연 1천만명에 육박하는데 이로 인해 거대한 입시 시장이 만들어진다. 중국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돈과 정성을 쏟아붓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유학이나 명문대 진학이 향후 더 높은 소득이나 지위 획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도의 교육열 또한 만만치 않다. 아직까지 한국이나 중국처럼 전국민적인 교육열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미 중산층 이상에서는 상당수가 자녀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곧 세계 인구 1위를 차지할 인도에서 이러한 수요가 집중되면 당연히 교육시장 역시 거대하게 성장한다.

인도인들이 자녀 교육에 몰두하는 것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인도국립공과대학(IIT) 졸업생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취업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도 IIT 출신의 인재를 잡기 위해 애쓴다. 해외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인도에 진출한 글로벌 IT기업들이 이 학교의 졸업생들을 모셔간다. 대학졸업장이 인도 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셈이다.

그러니 IIT 입학을 위해 장수생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허다하다. 마치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장수생의 길을 가던 고시생들을 떠올리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사시 한방에 판검사가 되면 팔자가 편다고 여겼기에 인생을 걸고 시험에 도전했다. 인도인들에게 IIT 입학은 그 이상의 인생보험으로 여겨진다.

서울 시내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의 전경. ©뉴시스
서울 시내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의 전경. ©뉴시스

반면 한국에서 교육열이나 입시열풍이 잦아드는 이유는 명문대 입학이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명문대 진학 열풍을 경험했던 이들이 학부모가 된 후 세상을 달리 보게 된 것이다. 실제로 대학 간판이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경험을 했고 이보다는 실제로 먹고사는 데 더 유리한 진로를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한때 교직을 딸 수 있는 교대나 사범대학이 큰 인기를 얻었고, 무슨 과를 가든 그냥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간판보다 실리’라는 트렌드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의대 선호 현상이다. 먼 지방대라도 의대를 들어가는 것이 서울의 명문대에서 의대 아닌 다른 학과에 들어가는 것보다 인생설계에 더 유리하다고 여긴다. 

또한 한국에서 명문대 입학 붐이 사그라들고 있는 건 학벌보다 연예계와 스포츠 분야에서 부와 명예를 얻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K팝 스타들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는 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으며, 손흥민 등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는 스포츠 스타들 역시 반드시 명문대 진학에 인생을 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촉매가 되었다.

먹고사는 데 유리한 진로를 선택하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전략적인 판단은 고교 진학에도 반영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외국어고등학교다. 한때 명문대 입학의 지름길로 여겨져 큰 인기를 누렸던 외고의 2023학년도 입학 경쟁률은 1.13대 1에 불과했다. 그나마 올해는 조금 오른 것이고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외고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먹고 살기에 유리한 이과로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과 진학에 불리한 외고가 찬밥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한때 외고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중국어과는 대부분의 외고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반중 정서가 높아지고 미-중 갈등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약해지는 트렌드가 이렇듯 학생들의 선택에 곧바로 반영된다.

사실 한국의 교육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학생수 급감의 문제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07년생은 49만6천여명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2010년생은 조금 줄어든 47만명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6년생은 40만6천명으로 크게 줄어든다. 더 강력한 쇼크는 그 다음부터다. 유치원에 들어가는 2019년생은 30만2천명이다. 사교육 시장, 자사고, 특목고, 대학교 모두 근간과 체질이 흔들릴 것이다. 이제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수록 교육비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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