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스캔들’, 일타강사보다 센 밥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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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일타 스캔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구도지만...밥 이야기로 사람 냄새 더해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일타 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스캔들 아니 로맨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로맨틱 코미디의 구도는 전형적이다. 일타강사 자리에 한때 실장님, 대표님, 전문직 종사자 같은 시대의 로망을 자극하는 ‘현대판 왕자님’을 앉혀놓고, 반찬가게 사장의 자리에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다양한 직종의 무수한 캔디와 신데렐라를 앉혀놔도 큰 무리가 없는 구도다. 

‘일타강사’라는 직종이 특이하다면 특이한데, 여기에는 사교육 광풍 속에서 일타강사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기업 대표나 전문직 종사자를 훌쩍 뛰어넘는 재력을 갖게 된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이런 구도라면 아마도 그토록 많은 멜로드라마를 봐온 시청자들이 “또야?”라며 채널을 돌리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일타 스캔들>은 오히려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된 데는 정통 로맨틱 코미디라도 웰메이드된 대본과 정경호와 전도연을 비롯해 빈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연기 그리고 이를 균형감 있게 만들어낸 연출의 공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큰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 그건 ‘밥’ 이야기다. 

굳이 반찬가게 사장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남주인공인 일타강사가 과도한 일과 스트레스로 섭식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과의 연관성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1조원의 남자’로 불릴 정도의 재력과 인기를 한 몸에 갖고 있어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이 밥 한 끼를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상황은, 그 빈구석을 음식 하나로 정평이 난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이 채워줄 수 있다는 여지를 만든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많은 여지들 중 ‘밥’일까. 

최치열이 남행선의 음식만 거부감 없이 먹게 되는 이유는 그 음식의 질이나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과거 이 강사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엄마처럼 밥을 챙겨줬던 식당 사장님이 바로 남행선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남행선은 그 맛을 이어받은 것이고, 그래서 최치열은 힘들 때 자신을 버티게 해줬던 그 맛으로 현재의 어려움 또한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최치열과 남행선 엄마와의 에피소드는 마치 영화 <변호인>(2013)에서 돈 몇 푼이 없어 먹고 도망쳤던 고시생 송우석(송강호)과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변호사가 되어 돌아온 송우석은 순애의 부탁으로 재판을 앞둔 그의 아들 진우(임시완)의 변호를 맡게 된다. 돈 잘 벌던 세무 변호사 송우석이 인권변호사가 된 길에서 ‘국밥’ 한 끼의 의미는 크다. 삶이 돈의 가치로 평가되고 그래서 점점 본질에서 멀어질 때 그를 다시 삶의 진짜 가치로 데려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

<일타 스캔들>은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 안에서도 어딘가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건 다름 아닌 이 ‘밥’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다. 다들 결국은 먹고 자는 삶일진대, 저들의 삶은 어딘가 거기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일타강사인 최치열의 삶도 그렇지만, 그런 강사에게 어떻게든 자식들을 맡겨 보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엄마들의 삶은 더욱 그렇다.

이들 엄마들 중에는 자식을 챙기기보다는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자행하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아들을 해외유학 보냈다며 숨기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아이들의 매니저를 자임하며 학원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고 운전기사처럼 학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또 엄마들끼리 모여 자기 자식들만을 위한 반을 만들고 일타강사들도 좌지우지하려 한다. 이들은 브런치를 먹지만 손수 자식들에게 밥을 챙기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타 스캔들>은 로맨스의 구도로만 보면 잘 나가는 일타강사가 음식이 매개가 되어 반찬가게 사장님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자본화된 사회에서의 위계는 가진 자인 일타강사가 주도권을 쥐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래서 그것은 스캔들처럼 오인되지만), 드라마는 그 주도권이 거꾸로 음식을 쥐고 있는(?) 반찬가게 사장님에게 있다는 걸 보여준다. 로맨스의 틀 안에 담겨진 밥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에 ‘사람 냄새’나 ‘삶의 본질’ 같은 무게감을 더해준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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