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없는 시리아 이재민, 절실한 구원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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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11]

2월 14일(현지시간) 시리아 알레포주 진데리스 마을에서 주민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찾고 있다. 유엔과 시리아 정부가 반군 지역에 대한 구호품 전달 통로 두 곳을 합의하면서 유엔 대표단이 튀르키예에서 시리아로 들어갔다.©AP/뉴시스
2월 14일(현지시간) 시리아 알레포주 진데리스 마을에서 주민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찾고 있다. 유엔과 시리아 정부가 반군 지역에 대한 구호품 전달 통로 두 곳을 합의하면서 유엔 대표단이 튀르키예에서 시리아로 들어갔다.©AP/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한국과 중국 간 '사드' 문제가 불거져 한참 예민해져 있던 당시 가족들과 함께 상하이와 주변 지역을 여행했다. 그런데 귀국 직전 비자가 들어 있는 가방을 분실했다. 중국에서 외국인은 비자 없이 입국도 못하지만 출국도 금지된다.

나는 비자를 재발급 받기 위해 상하이 출입국 관리소에 문의했으나 짧으면 2주에서 길면 2달 가량 걸린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나도 문제였지만 내 아이들도 학교에 가야 했기에 그 기간 동안 귀국을 하지 못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급한 마음에 상하이 총영사관에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중 관계가 좋던 시절엔 하루만에 비자 재발급이 가능했지만, 사드 문제로 냉기류가 흐른 뒤로는 중국 측에서 모든 행정·민원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갑자기 내 나라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외국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100년 전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설치한 애국지사들처럼 보호해 줄 정부가 없어 막막한 심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내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인들을 떠올리며 잠시 예전 기억을 소환했다. 엄청난 지진 피해를 당한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모두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진앙지 주변의 튀르키예인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의 피해 지역은 튀르키예에 비해서도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오만, 카타르, 팔레스타인, 이집트, 이란, 레바논, 러시아, 아르메니아 등이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인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자와 구조 인력을 파견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이다. 

문제의 핵심은 시리아 피해 지역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는 점이다. 이 지역은 국제법상 시리아 정부의 영토이다.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리아 정부는 해당 지역 대부분에서 실질적인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시리아의 피해 지역은 내전 당시 반군이었던 세력이 장악했거나, 튀르키예가 쿠르드 민병대 토벌을 명분으로 무력으로 점령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에서 구조와 복구를 지휘할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튀르키예가 시리아 점령 지역에 괴뢰정부를 수립하기는 했지만 허울만 있을 뿐 실제 정부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해당 지역은 기본적인 생활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시리아 국영통신 사나(SANA)가 제공한 사진에 14일(현지시간) 시리아 군인들이 알레포 공항에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구호품을 항공기에서 하역하고 있다. 그동안 반군을 지지해 시리아와 관계가 소원했던 사우디는 이날 식량 35톤을 구호 물품으로 보내왔다. ©AP/뉴시스
시리아 국영통신 사나(SANA)가 제공한 사진에 14일(현지시간) 시리아 군인들이 알레포 공항에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구호품을 항공기에서 하역하고 있다. 그동안 반군을 지지해 시리아와 관계가 소원했던 사우디는 이날 식량 35톤을 구호 물품으로 보내왔다. ©AP/뉴시스

2011년 3월 아사드 정권의 독재정치에 항거하면서 시작된 '시리아의 봄'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장기간의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IS(이슬람국가)라는 극단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까지 발호하면서 시리아 전역이 피폐해졌다. 2018년 5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서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가 모여 안전지대 설치를 합의하면서 내전이 일단락되고 휴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내전 기간 동안 곳곳에서 일어선 반군과 쿠르드군이 여전히 무장을 풀지 않고 상당 지역은 점유하고 있다. 튀르키예 역시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쿠르드 토벌을 명분으로 군사작전을 벌여 점령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엄청난 지진 피해가 발생해도 이를 수습할 정부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사드 정부와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은 원조 물자가 아사드 정부의 손을 통해 시리아인들에게 전달되는 데 반대한다. 아사드 정부는 반군들에게 외부의 지원이 전달되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고 있다. 시리아 북부를 점령한 튀르키예는 자국 영토의 피해 수습에도 쩔쩔매는 상황이라서 시리아 점령지역까지 돌볼 여유가 없는 듯하다.

이란, 러시아 등 동맹국가들이 지원을 해주고 있으나 이들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와 전쟁 등으로 다른 나라를 전폭적으로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아랍권의 '형제' 국가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으나 문제는 피해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여러 무장세력들이 과연 외부 원조를 피해 입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할까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여럿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를 보호하고 운영하기 위한 정부를 구성한다. 정부가 얼마나 유능하고 깨끗한가에 따라 그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잠시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상하이에서 망연자실했던 내 심정을 최악의 재난을 당한 시리아인들에게 대입하는 건 절대 무리일 것이다. 다만 시리아인들이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된다. 개인에게 믿고 의지할 정부가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시리아인들의 절망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

P.S. 참고로 우리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리 오래지 않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시리아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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