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와 법리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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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50억 뇌물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무죄를 받은 곽상도 전 의원(왼쪽)과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윤미향 의원. ©뉴시스
50억 뇌물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무죄를 받은 곽상도 전 의원(왼쪽)과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의혹과 관련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윤미향 의원. ©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누군가의 말이 합당하고 상식적인 경우, 흔히 “일리가 있네”라고 표현한다. 이치에 닿으니 상대방 의견에 수긍할 의사가 있고, 내 기존 입장도 번복 가능하다는 뉘앙스까지 담고 있다. 

‘법의 원리’의 줄임말인 법리는 일상 대화에서 쓰이는 맥락이 좀 다르다. 법 집행의 속성이 그래서일까? 납득과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색채를 띤다. 불합리하거나 부당하더라도 “법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있겠나” 하는 체념이 발화자의 어조에 얼마간 섞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고와 구형, 구치소와 교도소 등의 차이에도 둔감한 많은 이들에게 ‘법리’는 이현령비현령의 타령쯤으로 다가온다. 율사,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용되는 전문 용어로 치부되기도 한다. 요컨대, ‘일리’와 ‘법리’ 사이의 괴리는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서 묵인 내지 승인하는 분위기가 짙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판결들은 상식의 논리와 법의 논리, 일리와 법리,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건너기 힘들 정도가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법 감정의 역린을 건드린 곽상도 전 의원 사건이다. 5년 일하고 받은 아들의 퇴직금이 50억 원, 이 돈이 대가성을 띤 뇌물인가 아닌가를 다퉜다. 아버지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다선 의원이고 그 아들은 인허가가 필요한 개발 시행사 직원이다. 대가 관련성이 녹취록에 남아 있다. 

명목은 퇴직금, 누가 봐도 돈의 성격은 자명해 보였지만 무죄가 내려졌다.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는 부자지간의 ‘경제적 공동체’ 의혹마저 떨쳐냈다. 이유는 아들이 성인으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독립해 살아도 이익공유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부자 관계에서는 그 방법이 훨씬 치밀할 수 있다. 아버지를 보고 준 돈이 뻔한 상황인데도 법의 시각은 달랐다. 거칠게 말하자면,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 이다. 50억 원은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 받았고, 아버지가 직접 받아야 하는 뇌물죄는 성립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검사는 왜 뇌물죄가 아닌 제3자 뇌물죄로 기소를 안 했는지, 증거는 왜 불확실한 녹취록뿐인지 등의 비판이 뒤따랐고 판사는 검사의 기소장에 근거해 해당 혐의의 시시비비만을 가릴 뿐이니 부실한 수사와 잘못된 기소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원 판결을 접한 장삼이사의 대체적인 반응은 마치 “1+1=?”의 물음에 미적분 공식을 가져와 “그러므로 답은 3이다”라는 설명을 듣는 기분과 흡사했다. 법리는 이해 불가요, 결과는 납득 불가였다.
  

2월 14일 울산시청 일원 도로에 더불어민주당 손종학 남구갑위원장의 '곽상도 의원 아들 50억 무죄 버스기사 800원 유죄'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2010년 법원의 한 판사는 버스기사가 400원씩 두 차례에 걸쳐 버스요금 800원을 빼돌린 혐의로 해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뉴시스
2월 14일 울산시청 일원 도로에 더불어민주당 손종학 남구갑위원장의 '곽상도 의원 아들 50억 무죄 버스기사 800원 유죄'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2010년 법원의 한 판사는 버스기사가 400원씩 두 차례에 걸쳐 버스요금 800원을 빼돌린 혐의로 해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뉴시스

연이어 나온 윤미향 의원의 판결도 역시 그러했다. 시민단체 후원금의 부당 사용 여부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었다. 여느 시민단체와 달리, 정의연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곳이었기에 더 높은 도덕성과 보다 투명한 자금 집행을 기대했다. 실제는 예상과 많이 달랐다. 윤의원은 8개 혐의에 대해 일부의 횡령만이 유죄로 판단돼 15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미등록 계좌에 42억 원의 기부금 모집도, 정부와 지자체에 거짓 서류를 제출하고 받은 3억 6750만 원도, 치매 상태의 위안부 피해자의 돈을 기부 증여하도록 종용한 혐의에도 무죄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영수증을 제출하지 못한 사실만으로 횡령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다양한 목적으로 모금했으므로 정대협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사용됐다면 횡령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증빙 영수증이 없는데 관련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사용됐’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걸까? 공금을 쓰면서 영수증을 첨부하는 그 번거로운 일은 이 법리대로라면 앞으로 안 해도 무방하다는 건가? 미등록 계좌라면 개인 계좌일 텐데 거기서 공공의 모금액을 받는 것 자체가 불법인 상황인데 앞으로 그리해도 된다는 의미인가?

"피고인은 30년 동안 열악한 상황에서도 활동가로 근무했고 이 과정에서 유죄로 인정된 액수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고 국내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횡령액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했다는 점이 횡령에 대한 양형을 판단하는 고려 사항이 된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돈과 법의 상관관계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기부를 많이 하면 죄의 무게가 덜어진다는 말인가? 상식은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활동 당시 기부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활동 당시 기부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자주 잊곤 하지만 법정 무죄는 피고인이 온전히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무죄는 검찰이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 혐의입증에 실패했거나 법원이 무리한 유권해석과 정상참작의 재량권을 과도하게 사용할 때도 나오는 결과이다. 

최근 판결들은 법에서 정의를 찾기보다는 최소한의 상식을 찾게 만들고 있다. 법리가 상식의 일리를 포함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척하고 무시한다는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법에 어두운 사람들에게도 쉽고 명쾌한 논리로 사안의 사각지대까지 비추는, 비유컨대 후미진 골목길에 가로등 같은 법리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법조 현실에서 아직 이른 것일까? 

법리와 일리가 수신호가 가능한 거리라도 유지되길, 그리하여 “요즘 판검사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샐러리맨이다”라는 한 정치인의 비아냥이 그냥 공허한 비아냥으로 그치길, 많은 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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