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죽이기'에 정부와 언론 '찰떡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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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회계 공개 압박하는 정부...언론 '혈세 도둑' 프레임으로 거들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투명성 관련 내용을 브리핑 하고 있다.©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노조 회계 투명성 관련 내용을 브리핑 하고 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항상 권력에 따라 붙는 언론의 홍보 보도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유독 빠르고 광범위해졌다.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보도가 대통령 발언과 거의 동시에 쏟아지고 있으며, 대통령은 그 보도를 정부 기조 정당화에 재활용한다. 

 기업 역시 대통령 발언에 반응하는 속도가 전광석화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통신사들의 과점을 지적하고 물가 안정에 동참하라고 말하자 통신 3사는 거의 동시에 3월 ‘30GB 데이터 무료 제공’을 발표했다. 지난 13일에 대통령이 금융권의 “돈잔치”를 지적하자 민간 은행은 일주일만에 채용 확대와 대출금리 인하를 선언했다.

대통령의 대표적 구호 ‘자유시장’의 요체인 금융권까지 대통령 발언에 ‘관치’가 작동했지만 언론 보도의 지배적 분위기는 다르다.

연합뉴스는 지난 20일 <공공요금 개입에도 기존 정책기조 유지…"정부는 상인">에서 정부의 모순된 행보에 “이런 조치는 민생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는 기조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우호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부 입장을 토대로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장의 메커니즘에 최대한 맡기되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정부가 제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산업 정책에 대한 시각도 어느 때보다 친시장적”이라는 답도 내놨다.

제도적 논의도 아닌 대통령 발언만으로 통신 데이터 무료제공, 대출 이자 인하, 대중교통 요금 인상 연기가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 ‘자유로운 시장의 매커니즘’이라는 놀라운 발상이다.

물론 통신비, 은행 이자 등은 공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똑같이 시장의 주요 행위자이자 공적 성격이 강한 노동조합에는 어떨까? 대통령과 언론 모두 표정이 전혀 다르다.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시장의 공적 영역을 위한 조정자’가 아니라 ‘노조의 저승사자’에 가까우며 언론은 ‘이것도 친시장’이라는 홍보가 아닌 ‘범죄자를 처단하자’는 행동대장으로 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노조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한 윤 대통령은 상장기업들에게나 요구되는 회계 전자공시를 노동자들의 자율조직인 노조에 도입하겠다고 압박했다. 지난 20일에도 “국민 혈세인 수천 억 정부지원금을 사용하면서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단호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며 ‘노조 지원’을 볼모 삼아 회계 공개를 압박했다.

대통령이 ‘혈세’ ‘정부지원금’을 빌미로 노조의 회계 공개를 압박한다는 걸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언론에서는 ‘양대노총이 정부지원금을 낭비한다’는 ‘혈세도둑’ 프레임 보도가 나왔다. 

<해외출장 24억·자녀 영어캠프 1억...양대노총이 타간 1520억 보니>(조선일보 2.20.)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최근 5년간 정부와 시도 17곳에서 지원받은 금액이 1520억여 원”이라며 “주민 1인당 부담한 금액을 보면, 울산시민 111만여 명이 1인당 1만3486원씩을 부담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노조 지원 사업은 국민 개개인에게 세금을 걷어서 노조에 뿌리는 게 아니며, 그런 식의 정부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한 계산법이다. 시민들의 돈이 노조의 이익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장치로 보인다. 더구나 정부·지자체 지원 사업은 노조가 e나라도움을 통해 의무적으로 정부에 모든 지출을 등록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노조의 지원금 용처를 상세히 나열하며 “깜깜이 혈세 낭비는 더더욱 많을 것”이라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발언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노조가 1520억이나 되는 혈세를 낭비했다는 결론인데, 기사에 나열한 사례를 보면 이게 낭비가 맞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두 노총은 정부와 광역단체들에서 주로 ‘노동 권익 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 센터’ ‘근로자 종합 복지 회관’ ‘노동 상담소’ 등 ‘노동’이나 ‘근로자’ 같은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각종 건물이나 기관을 건립하고 운영하겠다는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아갔다”는 대목은 시민 기본권인 노동권, 노동권익과 복지, 비정규직 지원을 위해 썼다는 의미다. ‘낭비’로 보기 어렵다.

“사무실을 무상으로 사용해 임차료를 아끼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는 했으나 ‘사무실’ 없이 ‘노동자 복지관’ 등을 운영할 수는 없다. 이외에도 기사는 “서울시는 ‘국제 교류 및 ILO(국제노동기구) 총회 참관’ 명목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3억7306만원을 지원”, “한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이 해외에 다녀오는 비용도 세금으로 지원” 등 다른 ‘낭비’ 사례들을 열거했으나 ‘ILO 총회 참석’과 같은 사례들이 왜 낭비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이 보도는 바로 다음날에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이용되며 언론과 권력의 ‘티키타카’를 완성했다. 윤 대통령은 “5년 간 국민혈세로 투입된 1500억 이상의 정부지원금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 장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20일자 4면 보도.
조선일보 지난 20일자 4면 보도.

노란봉투법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 법의 근본 취지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해 원청업체의 교섭 책임 및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그에 따라 비정규직, 하청, 특수고용직에서 발생하는 극단적 노사갈등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헌법과 민법 원칙에 위배”, “노사 갈등 확산시킬 우려”, “임금체불 등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상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시켜 노사갈등 빈번해질 우려” 등을 언급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 시기 관련 보도 대부분은 ‘직회부’를 한 야당 의원들을 향한 ‘법사위 패싱’이라는 비판에 집중됐고(문화일보 <거야 잇단 ‘법사위 패싱’에… 전문가들 “위헌 법률 양산”>), 찬반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으며(연합뉴스 <노란봉투법 논란 가열…"합법파업 보장" vs "불법파업 조장">), 나머지 보도 상당수는 정부 입장과 판박이다.

<조선일보>의 지난 17일  <협력업체 노조가 삼성 상대로 파업 가능해진다...노란봉투법 문제점은> 보도를 보면, “현재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쟁의할 수 있어 문제”, “노동쟁의 분쟁이 만연”, “협력업체 노조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교섭 요구할 수 있고 파업도 가능해진다”, “하청노조에도 단체교섭권이 생기면 하청노조와 원청노조 중 어떤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등 3일 뒤 나온 추 부총리 발언을 보강하는 수준의 내용이다.

협력업체 노조가 왜 삼성전자를 상대로 교섭과 파업을 하면 안 되는지, 하청노조에 교섭권이 생겨 교섭 상대를 정해야 하는 일이 그렇게도 귀찮고 불가능한 일인지, ‘하청노조’에 대한 뿌리 깊은 배제와 혐오를 읽을 수 있다. 이런 보도 기조 속에서, 그간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땐 무시하다 파업이 일어나면 수십 억 손해배상과 가처분 청구로 노동자를 탄압했던 원청기업들의 책임을 언급한 보도는 극소수다.

기업들은 대통령의 말을 발 빠르게 이행하고 기업들이 반대하는 노란봉투법에 언론이 함께 치를 떨며, ‘노조 혐오’가 정부의 ‘노조 회계 공개 압박’으로 현실화한 ‘삼각공조’의 중심엔 ‘돈’이 있다.

기업이 돈을 버는 데 방해되는 노조의 권리는 수십 억 손해배상 청구로 축소시키고, 언론은 ‘노조는 혈세를 낭비한다’는 프레임을 앞세우며, 대통령도 ‘국민혈세 수천 억 지원금’을 내걸고 법에도 없는 회계 공시를 압박한다. ‘돈’ 앞에 노동조합이 본래 헌법상 기본권, 즉 국민의 보편적 권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사라졌다. 돈으로 권리를 압박하는 야만이 ‘법치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권리를 짓밟는 ‘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면 제동장치인 언론이 아직 고장 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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