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감 떨어진 마블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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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굳건한 마블 유니버스...악명만 무시무시한 빌런 캐릭터라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컷.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스틸컷.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최근 들어 마블 영화의 감이 약간 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마블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나 촘촘한 서사, 개성 강한 캐릭터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마니아들에게 마블의 기량은 논쟁거리겠지만, 전체 극장가에서 마블 유니버스의 지위는 여전히 굳건하다. 개봉만 하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스코어가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다만 '감이 떨어졌다'는 인상은, 영화의 유머 코드에서 온다. 너무 사소한 부분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유머(humor)는 중요하다. 산들바람처럼 얼핏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유머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유머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보통 그 세계의 윤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통상 유머는 누군가의 지위를 살짝 깎아내림으로써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미끄러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는 지위가 높은 자들을 겨냥해 유머를 만들어내며 사회 속의 격차와 부조리를 풀어내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이미 지위가 낮은 자들을 손쉽게 비하하며 우월감 섞인 웃음을 공유한다(이때 '지위'는 단순히 돈이나 신분을 의미하지 않다. 특정 상황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종합적으로 결정된다). 전자는 종종 치유로 이어지고, 후자는 자주 폭력과 연동된다.

그러므로 유머는 한 세계의 윤리관을 비추는 유리구슬이다. 어떤 사람을 놀려도 되는지, 어떤 상황을 웃음거리로 삼아도 되는지에 관한 기준선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안전한 영역에만 머무는 개그는 재미가 없는 법. 적당히 상대를 도발하면서 윤리의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 귀신같은 능력을 우리는 '감각'이라 한다.  

이전 편에 등장했던 대런(코리 스톨)을 개조해 악당으로 만든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  
이전 편에 등장했던 대런(코리 스톨)을 개조해 악당으로 만든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주기를 바란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대해 마블만의 매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서사, 캐릭터, 설정의 매력이 이전보다 옅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느껴진다. 오히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가 모독(코리 스톨)을 취급하는 방식이다. 모독(M.O.D.O.K, 살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정신유기체)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악당 캐릭터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이전 편에 등장했던 대런(코리 스톨)은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에 의해 개조되어 모독이 된다.  

무시무시한 악명에 비해 모독의 실체는 어설프다. 뛰어난 지능을 상징하는 거대한 머리는 우스꽝스럽고, 흐물거리는 팔다리는 초라하다. 그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악당다운 위엄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스캇(폴 러드)의 가족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다.

그들은 모독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대런"이라고 부른다. 개조되기 전 그의 이름이니까. 그 역시도 모독과 대런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냐며 "내 몰골을 보라"는 모독의 말은 이상한 감명을 자아낸다. 외형은 흉하게 변했는데, 변형된 이유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는 처참한 실패. 아무리 지독한 악당이라도 이 지경에 이르면 고통과 공허를 풍겨내기 마련이다. 우리가 이때 느끼는 연민은 악당 개인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괴로움과 불행을 향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영화는 떨떠름한 얼굴로 모독을 쳐다본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어색하고 가벼운 유머로 순간을 넘긴다. 마지막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죽음, 우정을 말하는 그를 두고 스캇은 시시껄렁한 말들을 하고, 죽어가며 손을 뻗을 때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다. 영화는 모독의 슬픔을 대놓고 조롱하지 않지만, 적당히 웃어넘길 만한 소재로 활용한다. 

오해를 막기 위해 강조하자면, 나는 이런 장면들이 비윤리적이라고 단정 지으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장면들은 윤리의 회색지대에서 희미한 불편감을 자아낸다. 이런 연출이 대단히 폭력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이 장면들은 유쾌하지 않다. 영화가 악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과, 그 상황을 유머의 소재로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전자는 개인의 차원이고 감정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사회의 차원이며 예의와 품격의 문제다. 한 마디로, 이런 유머는 웃기지 않다. 그리고 나는 마블이 (이전에 특히 강점이었던) 유쾌한 웃음에 대한 감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어쩌면 이건 코믹스가 영화화되며 더 도드라지는 문제일 수 있다. 코믹스에서 모빅은 특유의 이상한 형체 덕에 생물체라기보다 그저 캐릭터로 보인다. 종이 위에 펼쳐지는 그래픽 노블에서 그는 더욱 비생명체로 느껴진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생생하게 구현된 모빅은 변형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으로 느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표정 덕에 이런 경향은 강해진다. 그래서 때떄로 그를 사물처럼 취급할 때 거북한 느낌이 든다.

코믹스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스크린 위에서 구현됐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고, 그 차이를 알아보고 조율하는 것 역시도 '감'이다. 한 마디로 마블은 지금 감이 떨어진 상태다. 그리고 여느 예술가가 그렇듯, 감이 떨어지면 답도 없다. 

사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유머 코드는 더 나간다면 자칫 위험해질 소지도 있다. 특히 변형된 신체를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 부분을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 예민한 문제인 만큼, 마블에 대한 애정이 있는 만큼 아직은 그저 위험한 가능성 정도로만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그래서 유머가 어렵다. 실패한 유머는 자주 무례 혹은 폭력으로 번지니까. 처음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이 말을 전하고 글을 마쳐야겠다. 마블이여, 감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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