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제동원 해법 두둔한 언론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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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설득’ 하겠다던 정부, 제3자 배상안 발표
정부 입장 받아쓴 언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타령만

강남촛불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7일 박진 외교부 장관 지역 사무실 앞에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뉴시스
강남촛불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7일 박진 외교부 장관 지역 사무실 앞에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정부가 기어코 강제동원 배상 판결 제3자 변제안을 확정 발표한 3월 6일, 생존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우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배상 판결의 원고이자 강제동원이라는 전쟁 범죄의 피해 당사자이지만 놀랍게도 ‘제3자 변제안’이 확정 발표되기까지 김성주 할머니의 입장은 언론 보도에서 찾기 쉽지 않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3월 1일부터 7일까지 ‘강제징용’을 언급한 보도가 1344건에 달하지만 ‘김성주’ 이름 석 자를 등장시킨 보도는 고작 55건, 4%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보도들은 피해 당사자 입장도 없이 대체 뭘 보도하는 걸까? 대부분의 보도는 정부 입장을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다. 일상화된 ‘받아쓰기’ 양상은 확정 발표 직전에 극대화됐는데 3월 4일이 절정이었다. 4일 하루만에 ‘정부 익명 관계자’를 출처로 ‘협의 종료 임박’에 이어 ‘3월 6일 확정 발표’까지 보도된 것이다. 정부가 피해자 측에게도 가했던 ‘일방통보식 소통’이 ‘언론플레이’로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는 4일 <강제징용 해법 공식발표 초읽기…정부 “협의 종료되는대로 설명”>에서 “협의 종료되는 대로 설명할 것”이라는 “외교부 당국자” 발언을 전하며 제3자 변제안에 “강제징용 소송 관련 일본 피고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가 언제든지 가능한 상황을 고려해 일단 현금화 실현을 막기 위함”, “한일 정상 셔틀 외교 복원 등 양국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라는 판단도 깔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최종 발표에서도 반복된 정부의 ‘정당화 논리’로 언론은 이를 최근 3개월 내내 보도했다. 같은 날 <[단독]정부, ‘日기업 배상참여’ 사실상 최종안 전달… “日로 공 넘어가”>(동아일보)는 “최종안’에 근접한 합의안을 제안했다”며 “공은 일본에 넘어갔다”라는 “정부 소식통”의 말을 전했고, 이후 <강제징용 해법 공식발표 초읽기…정부 "협의 종료되는대로 설명">(연합뉴스) 등 “한국 정부의 배상 해법 공식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발표 임박’ 보도가 쏟아졌다.

이때 이미 “일본 기업이 배상이 아닌 다른 용도의 기금에 출연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최종 발표에 포함된 ‘일본 기업들의 일본경제단체연합을 통한 미래청년기금 별도 창설’이라는 ‘기부 참여 우회안’까지 ‘일본 언론보도’를 출처로 보도됐다.발표 이틀 전에 정부의 최종안이 모두 ‘익명’ 출처로 공개된 것이다.

피날레는 ‘정부 소식통’을 출처로 6일 한일 양국이 연쇄적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입은 한국 기업들(포스코 등)이 배상금을 우선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한다고 전한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 <한일, 강제징용 해법 합의…6일 韓 이어 日 연쇄 발표>였다.

3월 7일자 동아일보 2면 보도.
3월 7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 

이 모든 ‘정부 익명관계자발’ 보도가 하루 안에 나왔다. 고작 일주일 전인 2월 28일 처음으로 유족과 단체 면담으로 ‘피해자 설득’에 돌입한 정부가 ‘협의 종료가 임박했다’더니 바로 그 날 ‘협의 다 됐으니 이틀 후 발표한다’며 여론전을 폈고 언론은 받아썼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부 관계자발 정보 속에 다수 매체의 논조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경제·안보 협력을 위한 해법’ ‘국내외 법적 문제 피하기 위한 유일한 고육책’ 등 정부 입장에 치우쳤다. 대부분의 신문 사설은 ‘미래 지향’ ‘자유 수호’라는 정부의 슬로건을 확대 재생산했다.

<[사설] 한·일 과거사 대승적으로 매듭짓고 '자유·미래'로 함께 나아갈 때>(한국경제 3.5)는 2018년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만만찮은 상황”, “특정 재판부의 판결문만을 절대시해 파국을 자초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라며 깎아 내렸다. 정부안에 대해서는 “배임 이슈 피하기 위한 고육책”, “역사적·도덕적 우위 확보”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의 근거는 “한계에 달한 북핵 위협”, “중국발 안보·경제 위험 급증”에 따른 “한·일 협력의 필요성”이었다.

<[사설] 강제동원 해법, 아쉽지만 한일 미래 디딤돌 돼야>(서울신문 3.6)의 경우 같은 논리를 내세워 “자신들의 희생이 미래세대에게 희망으로 되돌려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징용 피해자들도 최소한의 고통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훈계까지 나아갔다. 이미 미래를 잃고 최소한의 인권마저 70년 이상 유예된 채 살아온 피해자들의 ‘희생’과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비범함이 가히 놀랍다.  

이러한 지배적 보도 기조에서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를 포함한 피해자 측의 목소리는 묻혔고 기부조차 참여하지 않은 일본 전범기업이 뜬금 없이 조성한다는 ‘미래청년기금’은 “배상-기금 투트랙 해법”으로서 ‘한일관계 매듭을 푸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배상-기금 ‘투트랙 해법’… 5년간 꼬였던 ‘한일관계 매듭’ 푼다> 문화일보 3.6)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은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등 불법적 식민지배에 의한 전쟁범죄, 인권 침해 행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받지 못한 임금이나 보상금’만 다뤘다는 해석은 우리 대법원뿐 아니라 심지어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되는 바이지만 언론은 가볍게 ‘국제법 위반 논란이 있는 대법원 판결’로 취급했다. 어째서 ‘국제법 위반’인지 설명한 보도는 찾기 어려우며, 전쟁범죄 가해국가의 논리로 무장하고도 무의미하게 되뇌이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나 ‘한미일 3각 공조’ 외에 별다른 이유를 대지 않는 태도에서 완고함마저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뉴시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최소한의 금도인 ‘피해 당사자의 반론’마저 ‘소수 의견’이 되어버린 한국 언론 지형이 무력하기는 하지만 오로지 언론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지난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표 자리에서 우리 기자들은 정부가 단 3개로 제한해버린 질문 속에서 날카롭고도 상식적인 의문점을 던졌다.

“결국 일본 피고 기업의 직접적인 배상금 참여는 견인하지 못했다,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번 해법 발표를 두고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에 짜 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외교부의 입장과는 달리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있는데 설명해달라”, “일본 기업도 배상에 확실하게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냐,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만 배상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 확신하느냐”, “일본에 비해서 한국이 너무 많은 양보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어떻게 보느냐” 등 절실하고 당연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는 독자를 더욱 의아하게 만든다. 그 질문들은 왜 보도로 나타나지 않는가? 이유는 기자의 질문 대신 정부의 답변만 기사화되는 고질적인 보도 생산의 구조, 관행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자들의 질문은 <韓재단이 강제징용 배상…박진 "'반쪽 해법'? 동의하지 않는다" [일문일답]>(중앙일보 3.6)와 같은 형태로 기사화 되어 기자 질문의 문제의식은 대폭 축소되고 박진 장관의 답변만 상세히 전달됐다.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한 해법 강행’ ‘왜 일본을 위해 양보할까?’와 같은 문제의식을 별도로 심층 취재를 통해 탐사 보도까지 이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정부와의 일문일답식 기사가 지배적으로 생산, 소비되는 보도 유통 구조 속에서 나홀로 고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지만 왜 질문하던 그 비판 정신을 기사에도 담지 못하냐고 기자들을 책망하기엔 너무 늦었다. 독자들에게는 언론의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소수의견’에 머문 채 흩어져 있는 좋은 보도들, 피해자 관점의 보도들을 번거롭지만 직접 찾아 정보의 균형을 개별적으로 맞추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명백한 전쟁범죄인 강제동원을 두고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게 우리 언론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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