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맡긴 등급분류, '청불' 기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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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식의 OTT 세상 23]
시행 앞둔 OTT 자체등급분류 제도, 시장 성장 견인할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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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유건식 언론학 박사(KBS 제작기획2부)] OTT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크게 바뀌는 제도 중의 하나가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콘텐츠에 대한 자체등급분류이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방송과 달리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가입한 구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OTT 사업자에게 콘텐츠의 등급을 자율적으로 분류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게 제도의 취지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 <피지컬: 100>,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카지노> 등과 같은 드라마나 예능,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OTT의 자체 등급분류제에 대해 더 고민해볼 지점이 생겼다.

방송과 달리 극장이나 온라인에서 영화나 비디오를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제50조에 따라 비디오물을 제작하거나 배급 사업자가 사전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OTT 사업자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았다. 넷플릭스가 2016년 국내에 진출한 이후 2021년 애플TV+와 디즈니+가 론칭을 하고, 웨이브와 티빙도 OTT의 경쟁력을 강화에 필요한 오리지널 제작을 증가시키면서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 비디오물이 크게 늘어났다(2015년 4339건, 2021년 1만 6167건, 2022년 1만 3559건). 

OTT 사업자는 신규 콘텐츠의 사전 심의에 최장 14일 소요되어 불만이 많았다. 실제로 2021년 BTS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 영상이 심의 지연으로 공연 후 일주일 뒤에 공개되었고, 지난해 웨이브에서 월요일마다 공개하기로 한 <하우스 오브 드래곤>는 8회가 화요일에 공개됐다. 

지난 9월 영비법 개정은 방송처럼 콘텐츠를 자율 등급분류 체계로 전환해 달라는 OTT 사업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OTT 사업자는 영비법 제50조의 3 제2항 제1호 가에 규정된 “온라인비디오물을 시청에 제공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의 신고를 한 법인”에 해당한다.

다만 28일부터 OTT 자체등급분류제도가 시행되더라도 OTT 사업자가 바로 자체등급을 부여할 수는 없다. 추가적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두 달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된다.

우선 OTT 사업자는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선정되어야 한다. 영등위는 28일부터 자체등급분류 사업자 신청을 접수받고, 5월 중에 1차로 선정할 예정이다. 2차 6~8월, 3차는 9~11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선정 기준은 자체등급분류 운영 계획의 적정성, 사후관리 운영 계획의 적정성, 청소년 및 이용자 보호 계획의 적정성 등이다.

OTT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지정되면, 5년간 자격이 유지된다. OTT 사업자는 조직 내에 등급분류 책임자를 지정하고, 책임자는 영등위가 실시하는 등급분류 업무 교육을 연 2회 이상 이수하는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5월이 되면 실질적으로 자체등급분류가 처음으로 실시된다.

지난 2월 28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OTT 자체등급분류제도 설명회' 현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지난 2월 28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OTT 자체등급분류제도 설명회' 현장. ©영상물등급위원회

개인적으로 그동안 OTT는 자체등급분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과 달리 직접 개인이 서비스에 가입하고 어떤 콘텐츠를 볼 것인지 선택하고, 창작의 영역에서 너무 통제를 많이 하면 비슷한 콘텐츠만 양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다큐 등을 보면서 약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로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콘텐츠의 대부분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고, 주된 소재는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 관련이다.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 <인간수업>, <소년 심판>, <피지컬:100>, <나는 신이다>, 웨이브의 <약한 영웅>, 티빙의 <돼지의 왕>, 디즈니+의 <3인층 복수>가 대표적이다. 

OTT는 방송에 비해 심의가 자유로워 방송, 특히 지상파 TV와 차별성이 커지고 있는데, 적정한 노출이나 표현 수위를 유지하는 건 필요하다. <나는 신이다>에서 감독은 과한 장면 노출이 JMS의 심각성을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여러 번 있다.

드라마도 그렇다. 다소 과장되어야 극성을 띄기 때문에 과한 설정으로 갈 수 있다. OTT의 사업자는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콘텐츠를 공급해야 OTT 서비스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이용자를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영비법에 따른 시청등급은 ‘전체 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제한관람가’ 총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OTT 사업자는 청소년관람불가까지 등급을 분류할 수 있고, 폭력성과 선정성이 과도해 제한이 필요한 ‘제한관람가’는 부여할 수 없다.

문제는 ‘15세 이상 관람가’와 ‘청소년 관람불가’ 사이와 ‘청소년 관람불가’와 ‘제한관람가’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 경계가 애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영등위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영등위는 직권으로 등급을 취소하거나 재분류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가이드를 잘 주어야 레퍼런스가 쌓여 향후에도 잘 유지가 될 수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방송의 경우 ‘19세이상 시청가’와 유사)로 자체 등급을 분류했더라도 표현 수위만큼은 조금은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2022년 비디오 등급분류 현황을 보면, 전체 1만 3559건 중에서 청소년 관람불가가 3118건으로 전체 관람가(41.4%) 다음으로 많은 23.0%에 달하므로 앞으로도 선정적인 콘텐츠는 상당히 제작될 것이다.

규제는 완화되어야 산업이 발전하고 창작의 자유가 늘어나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많은 국가들이 이미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자체등급분류만으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1차적으로 콘텐츠의 제작자가 기획의도에 맞으면서도 사회적 양식에 맞게 수위를 정해 제작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에 맞지 않는 경우 규제를 강하게 해야 한다. 자율에는 그에 맞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어렵게 도입된 OTT 자체등급분류 제도가 별 탈 없이 정착하면서 OTT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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