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작 지운 ‘청춘월담’ 성취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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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 '잠중록' 잔상 지우고 공들인 각색

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
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SBS <조선구마사>가 중국풍 소품에서 비롯된 논란으로 2회 만에 폐지됐을 때, 중국의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 <잠중록>을 원작으로 준비되던 사극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동북공정에 이은 문화공정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가를 충격적인 결과로 보여준 사례였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자칫 중국풍이 들어감으로 해서 저들에게 이러한 왜곡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사극들은 중요한 숙제를 안게 됐다. 인물은 역사와 상관없는 퓨전사극이라고 해도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면 적어도 그 안에 담겨진 일상사나 문화에 대한 고증을 보다 철저히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잠중록>을 원작으로 한 사극은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되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바로 tvN 월화드라마 <청춘월담>이다.

 <청춘월담>은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입는 복식이나 음식, 활이나 검 같은 소품들은 물론이고 저잣거리 풍경이나 궁궐까지 조선의 문화들을 담아내려한 노력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청춘월담>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검안’을 명진(이태선)이 소개하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신주무원록’ 같은 의서가 대표적이다. 신주무원록은 세종의 명으로 조선 전기 문신 최치운 등이 원나라 왕여 ‘무원록’을 주해해 1438년에 편찬한 의서다.

그리고 4회에 등장하는 독살 당한 이의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입에 밥알을 채워 넣고 그 밥알에 스민 독을 동물의 피에 넣어 엉기는지를 확인하는 대목은 실제로 신주무원록에 들어 있는 검시방법이다. 지금이라면 칼을 대는 검시를 했을 테지만 몸에 칼을 대는 걸 금했던 조선시대에 독살을 확인하기 위해 고안된 지혜가 신주무원록에는 담겨있다. 

또 3화에는 글을 모르는 가람(표예진)에게 명진이 한글을 배우라며 그 우수성을 설파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암글이라니? 그건 언문을 낮잡아 이르는 것이다. 언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글자인지는 그 스승께서 가르치지 않았더냐? (중략) 한자는 어려워 그렇다 쳐도 언문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 언문은 우리 세종대왕님께서 너 같은 놈을 위해 만드신 것이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하루면 다 배울 수 있단 말이다. 온 천지에 이런 잘난 글자가 또 있는 줄 아느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집어넣은 느낌이 역력히 드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사에서부터 소품, 배경 등에 대한 노력들이 힘을 발휘한 것일까. <청춘월담>은 애초 드라마 시작 전에 제기됐던 중국 원작 관련 논란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시청률도 3%(닐슨 코리아)대를 계속 유지하며 9회 이후부터는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고 14회에는 4%대에 근접했다. 20부작으로 예정된 작품이니 이런 기세로 탄력을 받으면 충분히 괜찮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청춘월담 방송 화면 갈무리.
'청춘월담' 지난 28일 방송 화면 갈무리.

<청춘월담>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으로 인해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져 있다. 글로벌 시대에 성공한 IP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중국과의 교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중록>처럼 중국 원작과 계약을 체결하고 리메이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상품성 때문일 수 있다. <잠중록>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들과 판권 계약을 맺은 작품이고, 국내에서도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되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리메이크를 잘 한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원작자가 혐한 발언을 하는 등의 논란이 야기되고, 중국의 문화공정이 대중들의 공분을 사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

결국 원작의 잔상을 지우고 오히려 우리 역사와 문화를 더 분명하게 채워 넣는 쪽으로 방향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노력은 분명 소기의 성취를 가져왔지만, 원작을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건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거의 원작을 새롭게 만드는 정도의 노력이라면 차라리 리메이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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