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교차하는 인터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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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64] '기자와 살인자'

지난해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3'에서 다룬 제프리 맥도널드 사건.
지난해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3'에서 다룬 제프리 맥도널드 일가족 살인사건.

[PD저널=오학준 SBS PD]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 인터뷰란 결국 취재원과 PD가 벌이는 게임이란 거다. 한편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이를 찾는 취재원이, 반대편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찾는 PD가 있다.

두 사람의 목적은 서로 같았다가도 달라진다. 게임 초반부엔 취재원이 유리하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PD가 유리해진다. 말할 내용과 말하지 않을 내용을 고를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완전히 신뢰하는 경우는 드물다. 취재원은 PD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할까 의심하고, PD는 취재원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의심한다. 그래서 서로는 마치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밝히기 위해 정찰병을 보내듯, 서로의 진의를 갖은 방법으로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릿한 그곳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이 있을까? 재닛 맬컴은 있다고 본다.

<기자와 살인자>는 그 규칙을 위반했던 작가 조 맥기니스의 사례를 통해 인터뷰 게임을 진행하며 기자·PD가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인지를 점검한다. 데뷔작이 베스트셀러였던 작가 조 맥기니스는 실화 범죄 소설을 쓰기 위해 소재가 될 만한 사건을 찾다가 제프리 맥도널드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용의자로 재판을 받는 그가 후원회를 연다는 기사를 보고, 맥기니스는 맥도널드를 찾아가 당신 사건으로 책을 쓰고 싶다고 제안했다.

재닛 맬컴이 쓴 '기자와 살인자'
재닛 맬컴이 쓴 '기자와 살인자'

무죄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변호사비가 부족했던 맥도널드는, 맥기니스가 수익금의 일부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겼다. 둘은 함께 스포츠 중계도 보고, 식사와 운동도 함께했다. 맥도널드는 맥기니스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끝내 본인이 유죄를 받자, 맥기니스가 변호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았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교도소에 수감된 뒤에도, 책을 쓸 때 필요할 내용들을 녹음해서 건네주기도 하고 교도소 근처에 있는 집을 맥기니스에게 내어주기도 했다. 이것은 우정의 표시였다. 그래서 맥기니스가 자신을 끔찍한 살인마로 묘사한 <치명적 환영>이 발간되었을 때 경악했다. 맥기니스가 <대통령 팔아먹기>에서 닉슨 대통령 측이 고용한 홍보대행사에 침투해 그들의 ‘속임수’를 폭로했던 방식을 자신에게도 적용했으리라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맥기니스가 자신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맥기니스는 통상적인 취재 과정이라 항변했다. 맥도널드가 보내준 자료 속에서 맥도널드가 살인자라 확신할만한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에 거짓된 주장을 할 수 없었고, 정확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맥도널드의 비위를 맞춰주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른바 ‘비진실’을 ‘진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택했을 뿐이라는 게 맥기니스와 그의 변호사 콘스타인의 주장이었다.

재판은 그에게 불리했다. 그가 맥도널드를 구슬리기 위해 남긴 수많은 편지들에는 움직일 수 없는 거짓의 증거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변호사 보스트윅은 모두 진술에서 “이것은 가짜 친구에 관한 소송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재판의 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친구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친구를 배신한 거짓말쟁이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배심원들 대다수가 동의했다.

콘스타인이 재닛 맬컴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이 재판이 미결정 심리로 끝난 후였다. 콘스타인은 이 재판이 취재원에게 기자나 작가가 자기 의도를 명시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선례를 남기려는 시도이자, 취재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보았다. 저널리스트인 맬컴은 이 편지에 반응해, 사건의 당사자인 맥도널드와 맥기니스, 그리고 관계자들인 콘스타인, 보스트윅, 밥 키일러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조 맥기니스가 펴낸 '치명적 환영'
조 맥기니스가 펴낸 '치명적 환영'

분명 취재를 하다보면, 취재원의 모든 말을 완전히 납득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취재원이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PD나 기자가 자신에게 더 이상 흥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야기 중 중요한 부분을 감추기도 한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 취재원을 전적으로 믿는 일은 PD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의도를 투명하게 공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맥기니스는 착각했다. 수많은 저널리스트들이 “고의로 유도해낸 도덕적 무정부주의”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기가 논픽션 작가로서의 한계가 무엇인지 잊지 않았다. 전세 세입자가 벽을 함부로 헐 수는 없듯이, 논픽션 작가는 ‘진실되고 정직하라’는 벽을 함부로 헐 수 없다. 그것은 독자들이 위임한 벽이다. 만약 맥기니스가 맥도널드가 진범이라고 느꼈다면, 그는 자신의 판단을 알리거나, 취재를 포기했어야 맞다. 

인터뷰 게임은 평소엔 음지에 있지만, 취재원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아 그 과정이 양지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 PD는 그것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투명하게 노출될 수 있는 과정임을 가정하고,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게 취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이 재판은 인터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와도 같은 인터뷰 과정 아래에서도 따라야 할 준거점이 있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였다.

“인터뷰 대상의 눈먼 자아도취와 기자의 회의주의 사이의 긴장”이라는 재닛 맬컴의 문장은 말해준다. 상시적인 파탄의 위협이 도사리는 인터뷰 게임에서 취재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방법은, 법률로 명확하게 재단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윤리적 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긴장하는 일밖엔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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