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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13]

인도 뉴델리 의회 건물 앞에 세워진 마하트마 간디 동상. ©AP/뉴시스
인도 뉴델리 의회 건물 앞에 세워진 마하트마 간디 동상. ©AP/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힌두교의 이미지가 강력한 인도이지만, 사실 인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이슬람 왕조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 세력은 13세기 초 맘루크왕조 이후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델리를 중심으로 인도 북부를 지배해왔다. 이후 들어선 무굴제국은 한때 인도아대륙 대부분을 정복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있던 인도를 짧게나마 하나의 왕조 아래 통합하기도 했다.

델리 술탄국이나 무굴제국은 모두 지배세력이 무슬림인 이슬람 왕조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타지마할 역시 이슬람 왕조인 무굴제국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힌두와 이슬람이 동거하며 1947년에 건국한 인도공화국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는 세속국가를 지향해왔다. '인도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인도국민'이라는 것이 마하트마 간디 이래 인도를 지탱해온 원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도는 힌두민족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힌두 우익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이념적 바탕을 가진 정당 BJP(인도인민당)가 2014년 단독으로 집권하게 되었다. BJP의 지도자는 현 인도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이다. 모디-BJP 정부는 이후의 선거에서 연승하며 현재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디 정부와 집권여당인 BJP는 인도의 기존 정부와 달리 무슬림들에 대한 각종 문화·정치적 공격에 적극적이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인도 역사교과서에서 '이슬람 지우기' 작업을 하는 것이다. 건국 이래 지난 70여년 간 인도 역사교과서에서 델리술탄국과 무굴제국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특히 현대 인도 영토의 기틀을 확립한 무굴제국의 역사적 중요성은 누구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이슬람 왕조는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도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BJP 정부와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이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인도아대륙은 오랜 동안 힌두 단일 문화권을 유지해왔으며 오직 힌두만이 인도를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최근 발표된 인도의 역사 교과서에서 델리술탄국과 무굴제국의 분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무슬림 군주들에 대한 언급도 대거 사라졌다. 그나마 존재하는 분량에서 이슬람 세력은 침략자로 묘사된다. 인도를 침략해 고유의 '민족 문화'인 힌두교를 탄압하고 힌두를 무참히 학살한 이들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시각이다. 

힌두 민족주의는 교과서 밖에서도 역사에 수정을 가한다. 그 중에 하나가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평가다. 마하트마 간디는 여러 종교와 정체성이 뒤섞여 있던 인도인들을 하나의 대오로 묶어 식민주의 영국에 ‘평화적으로’ 대항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독립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간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다수인 힌두가 소수인 무슬림들에게 양보해서라도 이들 모두를 하나의 인도 국민으로 통합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인도의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간디에게 붙는 ‘마하트마’란 칭호는 ‘위대한 혼’이란 뜻이다. 하지만 간디는 결국 힌두민족주의자가 쏜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간디를 정반대로 묘사한다. 간디의 비폭력주의 때문에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분리하는 것을 강하게 막지 못하고 무력하게 바라만 봤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힌두들이 무슬림의 폭력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인도의 다수였던 힌두들이 간디를 따르지 않고 대신 힌두민족주의의 주장을 따랐다면 파키스탄 영토는 오늘날 인도의 일부였을 것이며,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리즘으로 인도인들이 희생당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힌두 우익의 역사관이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오히려 간디를 암살한 청년 나투람 고드세를 영웅으로 받든다. 오늘날 인도의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나투람 고드세가 한때 몸담았던 힌두민족주의 운동조직인 RSS의 활동가 출신이다. 지금 인도 정부는 간디의 길에서 이탈해 나투람 고드세의 길로 진로를 바꾼 셈이다. 그리고 인도 전역에서는 2억 명에 달하는 무슬림 인구에 대한 여러 가지 물리적·문화적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한때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의 자랑이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다.

‘역사왜곡’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도 역사왜곡은 일어나고 있다. 5·18에 대한 왜곡이 대표적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은 민주주의 정립의 기본이다. 그래서 전두환이 진실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세상을 떠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 손자의 사과가 할아버지의 몫을 대신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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