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방미 외교 보도에 없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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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주고받는 동맹 아니라는 정부...‘신외교’ 포장하는 언론

5박7일간 국빈 방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30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5박7일간 국빈 방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30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일정이 4월 30일 귀국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언론에게도 검증의 시간이 돌아왔다. 방미 외교의 결과물을 분석·평가해야 하고 언론의 평가와 분석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도 검증의 대상이다.

국가적 이벤트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한만큼 언론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기본적인 매커니즘으로서 다양한 논쟁이 추후 외교적 가능성, 방향성을 가늠하게 해준다. 

우리 언론이 12년 만의 미국 국빈방문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목도하고 그린 현실은 획일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대통령 방미 보도의 대부분은 ‘확장억제 강화’, 특히 최초의 별도 문서인 ‘워싱턴 선언’에서 성과를 찾았다. <대북억제 강화…한미, 우주·사이버로 동맹 확대 [尹대통령 방미 결산>(서울경제 4.30)는 “이번 국빈 방미 성과의 핵심은 워싱턴 선언”이라며 워싱턴 선언에 따라 신설되는 ‘핵협의그룹’에 “‘사실상의 핵 공유’라는 평가”를 달아줬다. ‘방미 결산’이라는 이름까지 단 보도치고는 민망한 구석이 있다.

‘사실상의 핵 공유’는 여기저기서 누군가 해준 ‘평가’가 아니라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 등 대통령실과 여당이 내놓은 ‘자평’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미국에서는 아니라고 했다. 이 보도가 나오기 3일 전, 정상회담 바로 다음날 에드 케이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이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가 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걸 감안하면 당당하게 “사실상 핵 공유”라 평가한 보도가 명백한 현실을 잘 모르는 건지, 에드 케이건 백악관 선임국장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렇게 대놓고 ‘환상’을 ‘평가’라고 내놓은 사례들 못지않게 대통령실의 ‘기대’를 언론이 ‘현실’로 만들어준 보도들도 많다. <[한미정상회담] 미 핵작전에 한국 공동기획·핵연합훈련 강화(종합)>(연합뉴스 4.27)의 경우 핵협의그룹을 ‘미국 핵작전 한국 공동기획’이라 명시했는데 마치 유사 시 미국 핵전력 운용에 한국이 정말 ‘공동기획’하는 것처럼 제목을 써놨으나 현실은 딴판이다. 실제 기사 본문을 보면 “미국 핵 작전에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 “도상 시뮬레이션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핵작전 공동기획’은 ‘핵 정책 공동기획’을 실제로 하고 있는 나토의 핵기획그룹도 제한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서 한국은 미국 핵 작전을 도와주는 한국 재래식 전력 운용을 공동 기획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보수언론에서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조선일보 <워싱턴 선언, 전술핵 재배치 불가… 나토식 핵공유엔 못미쳐>)가 나왔는데 다수 매체가 획일적으로 ‘핵협의그룹’ ‘확장억제 강화’를 ‘최대 성과’로 꼽으면서 실수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왜곡’을 양산했다.  

문화일보 5월 1일자 1면 기사.
문화일보 5월 1일자 1면 기사.

신조어들도 등장했다. <“한미, 산업·문화 전방위 동맹”… ‘윤 신외교’ 스타트>(문화일보 5.1)는 이번 방미를 계기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가 한·미의 핵협의그룹(NCG) 신설 합의로 외교안보 지형에 중대변화를 불러올 ‘포스트 워싱턴선언’ 국면에 진입”했다면서 “미·중 갈등 첨예화로 신냉전 상황이 조성되면서 동북아에서 한·미·일 지역안보 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있어 비상한 관심”을 표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윤석열 대통령의 신외교’라 칭했다.

사실 ‘신외교’는 <문화일보>의 순수한 아이디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한국과 미국 간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하는 등 여권에서 나온 ‘새로운 외교’ ‘새로운 계기’라는 평가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줬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내달 7~8일 訪韓 가닥…尹 '8강 외교' 속도낸다>(서울경제 4.30)는 비슷한 맥락에서 G7을 확장한 ‘윤석열 대통령의 8강 외교’라는 ‘우리만의 G8’을 만들어줬는데 이 역시 박진 외교부 장관의 “대한민국은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8강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에 화룡점정을 찍어준 사례다. 

이런 평가들을 종합해보면 북핵 위협에 맞서 우리 안보를 안심시켜주는 ‘워싱턴선언’으로 ‘한미일 3각 공조’도 두터워져 ‘신냉전’ 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게 이번 방미의 성과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언론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일단 ‘워싱턴선언’이 ‘사실상 핵공유’라면 대체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실제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비핵화’는 단 1번 등장하며 ‘워싱턴선언’은 핵전쟁을 전제한 ‘미국 전략자산의 즉각적 한반도 전개’가 핵심이다. 우리 언론이 기대했던 ‘핵보복’이 실제로 명시되었다고 한들, 이미 벌어진 핵전쟁에서 우리 국민이 얻는 건 파멸뿐이다. 

또한 중‧러와의 대결을 의미하는 ‘신냉전’을 한국이 이렇게까지 발벗고 나설 일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만 해도 살상 무기 지원은 일본도 모호한 입장만 내놓은 채 저어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이 G7에 제안한 대러시아 수출금지안은 일본과 EU가 거부하기도 했다. 우리 언론과 정부는 자의적으로 G8까지 만들어 한국을 G7에 우겨넣었지만 정작 G7 중 미국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이번 방미 또 하나의 최대 목표였던 경제 부문에서 ‘신냉전을 함께 할 혈맹 미국’은 더욱 물음표 덩어리다.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부문의 우리 기업 차별적 조치는 ‘앞으로도 긴밀히 협의한다’는 원론적 합의에 그쳤다. 원전 관련 협력도 정상회담 의제였으나 미국 에너지부가 미국 업체 웨스팅하우스의 고발로 한국 원전의 체코 수출을 막아 버렸다. 정상회담에서도, 언론 보도에서도 이 얘기는 불현듯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와 강제동원의원모임, 역사정의평화행동, 후쿠시마오염수 공동행동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
더불어민주당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와 강제동원의원모임, 역사정의평화행동, 후쿠시마오염수 공동행동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 방한'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어쩌면 이는 예견된 결과다. 정부는 한일·한미 관계가 ‘이익을 주고받는 동맹이 아니다’라는 말로 ‘주기만 하는 외교’를 사전에 정당화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4월 24일 방미 도중 “한·미 동맹은 이익을 거래하는 게 아니고 자유 수호를 위해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장억제’와 ‘사실상 핵공유’를 받아낸 ‘신외교’라고까지 포장한 셈인데 대통령의 입장으로 돌아가도 문제는 남는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근간으로 국제사회 연대를 실천해 나가는 최상의 파트너”라고 한미동맹을 설명했는데 ‘주고받는 이익’을 포기한다고 해도 ‘자유’와 ‘인권’은 남아있을까? 이 모든 도정의 시작이었던 일제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은 전쟁범죄 피해자의 사죄 받을 권리, 배상 받을 권리, 즉 인권을 침해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추후 구상권까지 몸소 포기해줬는데 공교롭게도 정부의 명분은 ‘한일관계 회복에 따른 경제적 이익’, ‘국익’이었다. ‘나머지 반 잔’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는 기대도 말한 바 있다. 인권을 침해할 땐 ‘이익을 주고받는 동맹외교’였다가, 이익이 없을 땐 ‘자유와 인권으로 맺어진 혈맹’이 되는 순환논리다. 안타깝게도 현실에 그런 외교는 없다. 그걸 현실로 만들어주는 건 언론이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기다렸다는 듯, 일본 기시다 총리가 5월 7~8일 방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시나 우리 언론에서는 아무 질문도, 비판도 없이 <尹, 이달 중 한일·한미일 연쇄회담…한미일 협력 심화 본격화>(세계일보 5.1)와 같은 보도를 쏟아냈다. ‘한미일 협력’이 대체 무엇이고 우리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가상현실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외교에 있어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우리가 얻는 게 많다면, 당연히 잃는 것도 있다는 게 상식이다. 잃는 게 무엇인지만 더 열심히 보도해줘도 지금보다는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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