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로 간 '구미호뎐1938’, '사냥의 시간'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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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 박제된 일제강점기의 새로운 모습

지난 6일 방송을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
지난 6일 방송을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1938년 일제강점기로 날아간 구미호 이연(이동욱).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은 형제인 이랑(김범)과 마주한 이연이 벌이는 판타지 액션 활극으로 문을 연다.

구미호 이연, 묘연각 주인이자 수리부엉이 홍주(김소연), 반인반호이자 이연의 형제인 이랑(김범), 정체가 백두산 호랑이인 홍백탈 천무영(류경수) 같은 산신들이 등장하는 이 판타지에선 날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한 방에 수십 명이 쓰러지는 장면이 펼쳐진다. 말을 타고 달리며 총을 쏘고, 열차를 추적하는 장면들은 어딘가 서부극을 연상케 하는데, 우리에게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익숙한 이른바 ‘만주 웨스턴’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구미호가 등장하는 만주 웨스턴이라니.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등장이다. 흥미로운 건 구미호 같은 토종 설화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들이 향후 맞서게 될 사이토 아키라(임지호)나 가토 류헤이(하도권) 같은 일본 요괴들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토 류헤이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요괴 ‘텐구’라고 한다. <구미호뎐1938>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요괴들의 판타지 액션 활극에 한일 대결 구도를 세워 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구미호뎐1938>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네 콘텐츠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방식은 과거에 비해서 훨씬 유연해졌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 같은 작품은 역시 항일운동을 하는 의병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전체를 감싸고 있는 장르는 멜로드라마다. 고애신(김태리)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노비였다 미국인 장교가 되어 돌아온 유진 초이(이병헌), 과거를 버린 친일파 구동매(유연석) 그리고 일본 유학파 문인인 이희성(변요한)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훨씬 유연해졌다는 건, 2007년 방영됐던 <경성스캔들>와 비교해보면 금세 드러난다.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라는 대사에 담겨 있는 것처럼,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항일운동과 연애를 덧붙였던 이 작품은 당시 이런 지점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사례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정 시기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콘텐츠에 있어서의 자유를 억압해왔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경성스캔들>을 쓴 진수완 작가가 또 다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쓴 <시카고 타자기>(2017)가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선을 말해준다. 역시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 서사와 뜨거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가 겹쳐진 이 작품에 대해 시청자들은 별 불편함(?) 없이 공감했다.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 포스터 이미지.
tvN 토일드라마 '구미호뎐1938' 포스터 이미지.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는 오래된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콘텐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항일운동’이라는 단 하나의 서사에 머물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지나치게 콘텐츠들이 ‘항일 운동’이라는 프레임 안에 이 시대를 가둬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제강점기 같은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네 삶은 여전히 지속되었고, 그 안에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활기 또한 있었다는 걸 이러한 획일화된 시대에 대한 접근을 담은 콘텐츠들이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 방영되어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송지나 작가가 쓰고 故 김종학 감독이 연출했던 <여명의 눈동자>가 두고두고 남을 명작이라는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강점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는 또한 ‘댄스홀’이 들어서고 신여성이 등장해 커피를 마시고 자유연애가 펼쳐지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구미호뎐1938> 같은 보다 유연하게 다양한 장르들을 가져와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내는 드라마가 반갑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시기 역시 사랑하고 아파하고 힘겨워하면서도 또 즐기기도 했던 삶이 존재했다는 걸 강박 없는 장면들이 에둘러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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