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노동자 혐오'가 낳은 섬뜩한 '분신 기획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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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언론의 ‘건폭 근절’ 구호에 지워진 노동 인권
‘인간의 얼굴을 해달라’는 요청까지 해야 하는 언론 보도 행태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열사정신계승 전국건설노동조합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열사정신계승 전국건설노동조합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경찰의 ‘채용 강요’ ‘노조 전임비 갈취’ 수사에 반발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3지대장이 지난 2일 숨졌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느닷없이 ‘분신 기획설’을 들고 나왔다.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뚱맞은 막말의 근거는 “자신의 동료가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이던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이를 말리지 않고 한참 동안 바라만 봤다는 보도”이다. 이는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조선일보 5.16)를 가리킨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30초 간 고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불이 붙은 후 뒷걸음질 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는 CCTV 속 모습만으로 ‘말리지도 불을 끄지도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 보도를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다.

경찰도 “기사는 해당 기자가 알아서 쓴 거지, 경찰에 취재를 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며 “바로 불을 지른 게 아니고 주위에 시너를 뿌려둔 뒤 동료가 왔을 때도 라이터를 든 채 ‘가까이 오지 마라. 여기 시너 뿌려놨다’고 경고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괜히 다가갔다가 자극받은 양씨가 라이터를 먼저 당길 수도 있고, 만약 들어가서 말렸다면, 둘 다 같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일축했다. 

'민주노총 술판 집회' '건설노조 양회동 분신 방조' 의혹 기사로 채운 조선일보 5월 17일자 10면.
'민주노총 술판 집회' '건설노조 양회동 분신 방조' 의혹 기사로 채운 조선일보 5월 17일자 10면.

문제는 악의적 음모론이 버젓이 기사로 나오는 우리 언론의 토양이다. 저 보도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관련 보도 전반에 이미 건설노조를 동료의 죽음을 이용하는 수준으로 비하하는 혐오가 잔뜩 깔려 있었다. 

노조를 향한 적대적 혐오는 정부와 수사기관에서 출발한다. 고인의 구속영장에 피해자로 명시된 건설업체 현장소장들은 피해를 입은 바가 없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증거대로 수사했다’는 입장을 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15일, “범죄 의심이 있으면 전력을 다해서 당연히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는데, 어쨌든 충분히 피해자 진술, 주변 참고인, 객관적인 자료 분석을 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것”이라 말했다. ‘어쨌든’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죽어 안타깝기는 하지만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서슬 퍼런 권력의 엄포가 단 세 글자로 번뜩인다. 

언론은 마치 감정이 없는 AI처럼 이 상황을 받아썼다. <‘건폭몰이’ 민노총 주장에, 경찰 “강압수사 없었다”>(조선일보 5.15)는 “숨진 양씨는 작년 4월부터 올 2월까지 강원 지역 공사 현장을 돌며 외국인 근로자들 대신 노조원들을 고용하라고 강요하고, 공사를 방해 및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8000여 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았다”면서 우종수 본부장 발언을 인용했고 “경찰청은 올해 건폭 수사에 특진 50명을 내걸었는데, 이는 마약 수사 특진 인원과 같은 숫자”라며 ‘건폭 단속 경찰 특진’도 별 일 아니라는 입장을 한 번 더 사실로 확정해주기도 했다.

무고함이 확인된 고인의 사례까지 나온 건설현장 노사 관행의 문제가, ‘마약 범죄’와 동급이라고 친히 부연해준 것이다. 국가권력에겐 그 정도로 친절하지만 사망한 건설노동자의 사정은 단 한 줄도 없는 기사다. 사실관계의 선택적 기술과 인간적 감정의 온기를 쏙 뺀 측면에서는 챗GPT도 못 따라올 지경이다.  

11일에는 정부‧여당이 당정협의를 열고는 ‘건설현장 정상화 5대 법안’ 추진을 선언했는데 국토교통부 공무원을 ‘특별사법경찰’로 만들어 건설현장 단속에 투입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양회동 지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단속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언론은 <건설현장서 더이상 '주먹' 안통한다…24시간 감시체계 도입>(머니투데이 5.11)와 같은 보도로 분위기를 띄웠다. 늘 그렇지만 받아쓰기 보도와 ‘치어리더 보도’의 경계는 모호하다. 너무 열성적으로 정부의 말을 받아쓰다보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노조를 ‘주먹 쓰는 폭력배’ 쯤으로 비방하게 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故 양회동 지대장은 ‘주먹’ 쓰는 폭력배도 아니었고 돈을 뜯은 깡패도 아니었다. 이는 업체 사람들이 입증했다. 영장에 피해자로 명시된 업체의 현장소장 15명은 4월 말 일제히 처벌 불원서를 법원에 냈고 그 중 한 명은 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양회동씨는 현장에서 일이 원만하게 돌아가게끔 회사와 조합원 사이에서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노조의 압박 때문에 쓴 처벌불원서가 아니다”, “단체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집회가 한번 있었지만 그 또한 나와 합의했고, 집회 신고하고 한 것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작 1명의 억울한 사례로 ‘건폭 수사’를 막을 순 없다는 게 경찰 입장인 듯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뉴스와 시각]분신 뒤에 숨은 건폭의 불법>(문화일보 5.15)의 경우 “경찰은 건설 현장 200일 특별단속을 통해 불법행위 총 866건(5071명)을 적발했고, 이 중 749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열흘 남짓 진행한 국토교통부의 건설노조 피해사례 일제 조사에서 확인된 불법행위만도 2070건” 등 숫자를 앞세세웠다. 이어 “현장 소장 사무실을 찾아가 집기를 던지며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노조원에게 태업 지침을 내리고 현장 건설사 관계자의 약점을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행위” 등 사례를 제시하며 “이렇다 보니, 조직폭력배들마저 노조라는 이름을 앞세워 건설 현장에 들어와 똑같은 행동으로 공사를 방해하는 지경”이라 일갈하기도 했다.

749명이 ‘송치’됐다는 것만으로 이미 범죄가 확인된 걸까? 故 양회동 지대장은 영장 청구 단계에서 이미 피해자들조차 아니라고 하는데도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현장소장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면 처벌 받아야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양 지대장을 죽음까지 이르게 한 ‘수사’의 폭력성은 왜 그냥 넘어가도 되는가? 단 1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없어야 한다는 원칙은 억울함에 세상을 떠난 노동자 앞에서만 무기력하다.

이런 공방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단속된 건설노조원의 숫자와 횡포 사례들을 열거하는 언론과 경찰은 단 1건의 ‘건폭’만 사실로 드러나도 스스로를 정당화할 명분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국가경제, 국익, 공정, 법치주의, 자유 등 바로 ‘건폭’을 만든 윤석열 대통령의 어휘들이 그 정당성이다. 언론이 이 용어들로 ‘건폭 근절’부터 ‘외교 행보’까지 수놓아준 날들이 지난 1년간 여러 차례다.

그 사이 고립된 10·29 참사 유가족과 사망한 양회동 지대장 같은 사람들의 현실은 지워졌다. 권력이 현실을 지우고 힘을 잘못 휘둘렀다면 언론은 인권의 얼굴로 현실을 보충해야 한다. ‘채용 강요’와 ‘전임비’는 대부분 일용직으로서 최소한의 고용 안정과 노조할 권리조차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건설노동자 특성상, 노조가 건설업체와 함께 ‘단체협약’으로 만든 ‘상호 간 약속’이다. ‘단협’은 법적으로 보장된 자율적 약속이고 그걸 어기면 쟁의를 하는 게 ‘노조의 의무’다.

‘건폭’ 보도는 많지만 그 배경에 ‘단체협약’과 ‘일용직’ 등 딱딱한 현실이 있다고 밝힌 보도는 극히 적다. 현실을 지운 채 소수 ‘조폭 사례’를 양대노총 사례인지 자세히 구분도 안 한 채 경찰이 발표하고, 언론은 조폭 사건 보도에 민주노총 현수막 사진을 넣어 ‘민주노총=조폭’ 이미지를 암시한 사례까지 있었다(세계일보 <‘노조 완장’ 찬 조폭들, 건설현장 상대로 협박해 1억2000만원 뜯어내> 현재 삭제). 

이 오래된 ‘노동자 혐오’는 결국 양회동 지대장이 사망했는데도 ‘분신 기획설’ 따위를 암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가 사람의 얼굴을 잊었다면 언론이라도 되찾아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해달라’는 요청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인간의 얼굴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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