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기여자들, 우리 곁에서 함께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7회 이달의 PD상 수상자 인터뷰] KBS '이웃집 찰스' 문주은 PD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을 연출한 문주은 PD.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을 연출한 문주은 PD.

[PD저널=이영광 객원기자] 제277회 이달의 PD상 TV 교양정보 부문에 KBS <이웃집 찰스> ‘서부동 사람들’ 편이 선정됐다. ‘서부동 사람들’ 편은 2021년 '미라클 작전'으로 구출된 아프가니스타인이 국내에 정착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 심사위원으로부터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상 소감과 함께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해 ‘서부동 사람들’ 편 연출한 문주은 PD와 지난 1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문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 3월 방송된 <이웃집 찰스> ‘서부동 사람들’ 편으로 이달의 PD상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려요.

“우선은 감사드립니다. 바쁜 PD들이 시간과 또 에너지를 들여서 수상작 선정하고 축하하는 이유는 의미 있는 방송이면 앞으로도 용기 내서 만들라는 격려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어느 방송이 안 그렇겠냐만, 이번 방송은 특히 섭외부터 촬영, 심지어 번역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나 봐요. 계속 제작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는데, 이번에 주신 상을 기억하면서 좀 더 모험하고 좀 더 용기 내는 PD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상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되게 기쁘고 또 뿌듯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잘 전달됐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 제가 수상한 덕분에 ‘서부동 사람들’을 찾아볼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서부동 사람들’ 편은 2021년 '미라클 작전'으로 구출된 아프가니스타인이 국내에 정착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잖아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가 처음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분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작년 3월에 한국 학부모님들 중 일부가 아프간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에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을 때였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미라클 작전’을 통해서 아프간 사람들이 짠하고 한국에 성공적으로 입국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처음으로 낯선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탈레반 혹은 아프간 난민 하면 나와 먼 이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들의 얘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 당시에는 촬영이 쉽지 않았어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한국 적응과 지역사회 내의 갈등과 혼란 해결이 시급했었거든요. 그러다 마침 올해 2월이 아프간 분들의 지역사회 정착 1주년이었기에, 지난 1 년을 되돌아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담기에 적절한 시기라 생각했어요. 울산을 찾아가 보니, 아프간 가족분들도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며 적응하고 계셨고 한국 주민분들과도 초기의 여러 갈등을 딛고 느리지만 천천히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고 있었더라고요. 그 과정을 담는다면, 아프간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 외국인 차별이 심하잖아요. 이에 대한 생각도 프로그램 제작하며 하셨을 것 같아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 수가 늘고 외국인들이 미디어에도 많이 등장하면서 과거보다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낯선 나라의 사람들 특히 이슬람 문화권 출신에 대한 경계심이나 적대심은 여전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걸 단순히 차별이라고 문제 삼기보다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이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낄까?’하고요. 왜냐하면 저도 주민분들과 비슷한 입장이 있었다면 뭔가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걱정은 됐었을 것 같거든요. 잘 모르니까요. 

촬영 전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하면 떠올렸던 게 뉴스에서 본 오사마 빈라덴, 탈레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문제 일으켰다는 이슬람 이민자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문제를 일으켜야지 뉴스에 나오는 세상이잖아요. 평범해서 뉴스거리는 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다루면 그런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이템 결정하고 뭐부터 하셨어요?

“‘미라클 작전’을 취재했던 선배를 만나 이런저런 도움을 얻었고, ‘우리 모두 친구’라는 사단법인을 운영하고 계시는 손문준 교수님을 만나 뵈었어요. 손 교수님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내에 설립된 한국병원의 원장으로 계셨던 분인데요. 말하자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분들의 옛 동료예요. 그래서 제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분들을 만나기 전에 알아두거나 유의해야 할 부분들이 있을지, 그리고 전반적으로 그분들의 현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방송 제작하며 생각이 달라진 부분 있나요?

“달라졌다기보다는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정말 많았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은 있었던 것 같아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뭐가 비슷하나요?

“사소하게는 그들에게도 이름마저 똑같은 ‘만두’를 빚어 먹는 풍습이 있고, 정이 많아서 손님이 오면 간식이나 음식을 계속 권하세요. 남녀가 유별한 문화도, 많이 멀긴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존재했었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다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분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프가니스타인이 사는 아파트에서 열린 간이 시장 풍경으로 시작하셨는데 왜 이렇게 구성하셨어요?

“가장 단순한 이유는 재밌고 생경한 풍경이어서였는데요. 울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파키스탄 사장님이 트럭을 몰고 등장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서 장 보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인데, 그게 아프가니스탄도 아니고 우리나라 울산의 한 아파트 앞에서 주말마다 펼쳐지고 있다면 다들 시청자분들도 궁금해할 것 같았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첫 장면인 만큼 최대한 많은 아프가니스탄 분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모두를 같은 비중으로 담을 수는 없지만 결국 '서부동 사람들'은 그분들 모두의 이야기였거든요. 뉴스에서 봤던 군용기 속 그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삶의 터전에서 떠나 이국땅에서 산다는 게 힘들 거 같은데 어땠나요?

“맞아요. 사실 처음에 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와 가족분들이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한국에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요.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는 일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일이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일상생활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문화와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에 나왔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대학 교육이 유상인 사실을 모르고 일단 등록하는 바람에 상당한 양의 등록금을 갑자기 부담하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무엇보다도 대가족을 이끌고 한국으로 왔는데 공장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받는 임금으로는 생활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내 분들도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이죠.

무엇보다 크게 공감했던 어려움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낯선 이들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였어요. 지아우딘 씨는 한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밝은 미래가 약속 되어있다고 말하고 제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정작 딸 자이납은 한국에 온 뒤 웃음이 줄었지요.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삼촌과 이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명확히 표현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겪은 반대의 목소리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자이납에게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 잠시 가서 삼촌하고 이모를 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이곳에선 훨씬 안전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어서요. 한국에서 배운 축구 덕분에 축구선수라는 꿈도 갖게 되었고요. 그러니까 방송에서 BTS가 있어서 한국이 좋다는 자이납의 말은 그냥 둘러댄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한국 생활에 대해 나름대로 본인이 내린 대답인 거죠.”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
지난 3월 방송된 KBS '이웃집 찰스-서부동 사람들' 편.

-아프가니스타인들이 한국 정착 1년을 맞아 지인들과 파티를 하던데 분위기는 어땠나요?

“대체로 기쁘고 밝은 분위기였지만 슬픔도 공존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보낸 1년은 고향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1년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에서 1년을 무사히 잘 살아냈다는 자부심과 그 시간을 함께해 준 한국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는 자리인 동시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이었어요. 재밌었던 점은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초대한 한국 지인들의 직업군이 다양했다는 점이에요. 회사 동료는 물론, 지구대의 경찰, 한국어 선생님, 자주 가는 은행의 상담창구 직원 등이요. 아프간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의 도움이 존재했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아프간 가족들이 자주 가는 미용실과 문방구의 사장님들도 그날엔 바쁘셔서 못 오셨지만, 이전의 생일파티 등에는 선물을 들고 참석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천천히 서부동의 이웃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초기에 학교 입학을 둘러싼 갈등만 크게 보도 되었지, 정작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서부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부각되지 않은 것 같아서 꼭 1주년 파티를 방송에 담고 싶었어요.”

-엔딩에서 아프가니스타인들이 학교 가는 모습은 왜 담으셨어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으로 꼽는 것이 안전과 교육이에요. 특히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이 집권하고 나서부터 여자들은 초등학교까지밖에 진학을 못 하고, 직장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고, 꿈을 키우고, 사고를 확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육받지 못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에 너무나도 큰 위협이에요.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사회적인 관계부터 직업을 통해 얻게 될 경제적인 소득까지,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하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이 아프가니스탄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가능성을 열어주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160여 명이 한꺼번에 이웃으로 살게 되면서, 당연히 처음에 누군가는 싫었을 거고, 또 누군가는 두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 막연한 두려움에 비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얻게 된 안전과 자유, 그리고 꿈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아이들이 학교 가는 모습 뒤로 엄마들은 한국어를 배우러, 아빠들은 일을 하러 걸어가는 모습이 이어지는데요. 그렇게 그들이 우리 곁 어딘가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작하며 느끼신 점이 있을까요?

“촬영하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있네?’하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진 적이 있어요. 미국이나 브라질,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 사람이었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 거예요. 왜냐면 제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거나 방송에서 봤으니까요. 그만큼 제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막상 만난 아프간 사람들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와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태어난 곳이 달라서,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만난 대부분의 가족이 탈레반 혹은 내전으로 인해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유명한 고향 노래를 부르기에 가사를 물어보니 고향 땅을 잃고 이곳저곳 떠돌아야 하는 아픔을 호소하는 내용이었고요. 이슬람이라는 종교도 우리에겐 낯설지만, 그 땅에서 나고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문화라 생각해요. 뉴스 한 줄에서 끝나지 않는 그들의 삶 이야기를 최대한 담고 싶었고, ‘진짜 결국엔 다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뻔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꼈던 제 마음속 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촬영했지만 방송에 안 나온 거 있을 거잖아요. 얘기할 만한 게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나는 거는 아버지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장면이었어요. 이분들이 일을 하시다 보니 가족 중에서는 한국어를 제일 못하시거든요. 그런데 한국어 수업을 듣는데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정말 열심히 배우시더라고요.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얘기를 하는데도 엄청 수다스러우세요. 선생님이 뭐 하나 물어보면 뭐라도 대답하려고 얘기하시고, 선생님 말에 따르면 주말에도 문자를 보내서 모르는 걸 물어본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에서 빨리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잘 보이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