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반어법으로 비튼 복수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의 복수 방식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매일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도시인들이 어느 날 우연히 가게 된 한적한 시골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만일 도시의 치열한 경쟁에 지친 사람이라면 어딘가 한가로운 그 정경만으로도 치유 받는 느낌을 갖지 않을까.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는 그런 드라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서사는 복수극의 틀을 갖고 있다. 평범하게 돼지농장을 꾸려가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려했던 영순(라미란)에게 닥친 일련의 비극들이, 돈과 권력에 눈 먼 송우벽(최무성)이나 오태수(정웅인) 같은 악당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에 의해 남편은 자살로 위장된 채 살해당했고, 아들 강호(이도현)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에 7세 아이의 기억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들을 응징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서사 구조다. 

하지만 <나쁜 엄마>는 곧바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챈 영순이 저들에게 복수하는 그런 이야기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조우리 마을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가는 영순과 강호를 어떻게 따뜻하게 끌어안아 회복시키고 다시 살 수 있게 해주는가를 그려나간다.

이웃들의 일을 마치 제 일처럼 생각하며 기뻐하고 슬퍼해주는 이장(김원해),  외지에서 들어와 남편도 잃고 어렵게 자식을 키워낸 영순을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챙겨주는 정씨(강말금), 아들 삼식(유인수)이 철창에 가게 됐을 때 검사였던 강호(이도현)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 앙금이 있지만 그래도 따뜻한 본성으로 영순을 챙기는 박씨(서이숙),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나름 조우리 브레인으로 속 깊은 박씨의 남편이자 삼식의 아버지 청년회장(장원영) 등등.

이들은 돼지농장을 하는 영순을 마치 가족처럼 끌어안아 그 상처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잘난 아들 강호가 교통사고로 7세 아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영순의 독한 노력으로 강호는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심지어 휠체어를 벗어나 걸을 수 있게 된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

복수극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이라면 <나쁜 엄마>가 처절한 복수 대신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코믹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내고 있는 것에 어딘가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나쁜 엄마>가 하려는 복수의 방식이다. 물론 뒤에 가면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복수가 펼쳐지겠지만, 이 드라마는 저들이 사는 비정한 세계와 영순과 강호가 살고 있는 이 따뜻한 세계를 병치하고 비교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어느 곳에 진짜 가치 있는 삶이 존재하는가. 

복수극보다는 조우리 마을 사람들이 풀어내는 해학적인 코미디에 집중하는 <나쁜 엄마>의 서사 방식은 이 작품을 쓴 배세영 작가가 각색한 <극한직업>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생긴다. 잠복근무를 하기 위해 치킨집을 열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는 상황의 반전으로 빵빵 터지는 코미디를 만든 게 <극한직업>이 아닌가.

<나쁜 엄마>에서도 외지에서 들어온 저마다의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이곳 조우리 마을 사람들과 엮이면서 변화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코미디와 휴먼드라마로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송우벽의 지시로 강호를 감시하며 그가 숨긴 것으로 보이는 증거를 찾기 위해 들어온 소실장(최순진)과 차대리(박천)가 어쩌다 점점 귀농한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나쁜 엄마>는 우리가 예상했던 걸 뒤집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건 이 작품이 ‘반어법’으로 세상을 꼬집는 풍자와 연결되어 있다. 가난한 조우리 사람들은 보면 볼수록 풍족해 보이고,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도시의 권력자들은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처럼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나쁜 엄마? 스스로 자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자가 어디 진짜 나쁠까. 명절에 고향을 찾았다가 따뜻한 가족의 환대에 도시에서의 삶을 반추하는 것처럼,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진가를 <나쁜 엄마>는 유쾌한 반어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