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독립 서점이 문을 닫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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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지난 20일 방송된 CBS '조태임의 주말 뉴스쇼' 방송 현장.
지난 20일 방송된 CBS '조태임의 주말 뉴스쇼' 방송 현장.

[PD저널=박재철 CBS PD] 소도시 이주를 꿈꾼다. 주거지로서 첫 번째 조건은 인근에 도서관이나 서점이 있느냐다. 특히 주인의 안목이 깃든 동네 서점이 자리하면 마음이 더 끌린다. 

서점은 문화공간은 물론, 산책 동선에 경유지가 된다. 일 없이 들러 보리차 한잔 얻어 마시며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감식안 높은 주인으로부터 숨은 양서를 추천받기도 한다. 간혹 마실 나온 기분으로 저자 초청 강연에서 귀동냥을 할 수도 있다. 동네에 그럴듯한 서점이 한군데라도 있을라치면 스타벅스 입주가 건물의 공시지가를 높이듯, 그 동네의 문화지수는 덩달아 높아진다. 

잊을 만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한 달에 책을 몇 권 읽는다는 뉴스가 나온다. 대개가 질책성이다. 몇 년 전 문체부의 실태조사에서는 월평균 한 권을 밑돈 수치(0.8)가 나왔다. 독서에 대한 과도한 부추김은 책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싶다. 천천히 좋아할 기회마저 앗아가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책 소비가 저공비행을 하는 와중에 지역 소도시 서점들은 어떻게 생존할까? 언젠가 나의 이주가 현실화할 즈음, 개성 있는 독립 서점들은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닐까?

진주문고 '여서재'
진주문고 '여서재'

때마침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점 지킴이들의 속내를 엿들을 수 있었다. 밀양 청학서점은 1961년에, 진주의 진주문고는 1986년에 문을 열었다. 청학서점에는 소규모 형태의 독서모임이 6개나 된다. 특히 이곳에서 진행되는 완성도 높은 클래식 공연은 이미 입소문이 나 있다.     

진주문고는 ‘여서재’라는 공간의 인문학 강좌가 인기가 많다. 다른 지역의 영세 서점들과 연계해 생존전략을 공유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동개발, 시행하는 등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청학서점과 진주문고, 두 곳은 긴 세월의 나이테만큼이나 그 사이사이 고난의 마디도 굵었다. 방송 대기실에서 만난 두 책방 주인은 서로 첫인사를 나눈다. 

“힘드시죠?” 곧 월말이 다가온다며 청학서점 이미라 대표가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 전 독립 서점 대표님들과 북 토크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만나자마자 서점인들은 인사를 ‘힘들죠?’로 시작합니다. 동병상련일 테죠.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하면  어느새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힘든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죠.” 
 
방송 전반부가 오락실의 두더지처럼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서점 운영의 난제들에 관한 것이었다면, 후반부는 그 두더지의 머리를 힘껏 내려칠 수 있는 망치의 이야기였다. 만성적인 적자 속에서도 서점 문을 닫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다 그렇겠지만 저희도 경영이 무척 힘든 시기가 많았습니다. 접을까 싶다가도 지역의 단골 분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선결제로 책을 사주셔서 급한 불을 끈 적이 몇 번 있어요. 학창시절 때 자주 이용했다며 결혼 후 아이를 데리고 와 함께 책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여석주 진주문고 실장은 방송 내내 ‘책임’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의 책임감은 지역민들이 심어준 듯싶었다.

책에 대한 서점 주인의 애정이나 소명의식이 곧장 지속 가능한 서점 운영을 약속해주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가끔 책 한 권을 지역의 독립 서점에서 사주는 일’, 그것이 유서 깊은 서점을 우리 주변에서 계속 볼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이라면 기꺼이 마음을 내볼 일이다.   

빈티지가 오래된 와인 병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고풍스런 와이너리처럼 숙성된 문향(文香)을 마을에 진하게 풍기는 지역 서점들이 보다 오래 건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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