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로 넘어간 관객들...늪에 빠진 한국 영화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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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관객수 3개월 연속 100만 명대...'영화적 체험의 부재' 등 원인
새로운 플랫폼 환경에 부합한 생존 모색 필요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모습. ©뉴시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모습. ©뉴시스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한국 영화 부진의 늪이 깊고 찐득하다. 그 강한 점성에 올해 개봉한 국내 작품 모두가 발목 잡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5일 발표한 '4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4월 한국 영화 관객 수는 173만 명으로, 3개월 연속 100만 명 대에 머무르고 있다. 언론들도 앞다퉈 한국 영화의 위기를 언급한다.

부진의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데, 기사들은 주로 'OTT의 대두'와 '영화 값의 상승'을 꼬집는다. 영화표 한 장 가격에 못 미치는 돈을 주고 OTT를 한 달 동안 구독할 수 있으니, 영화관을 찾을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동의하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이 이슈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한국 영화의 부진'이라는 놈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의 민낯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좀 더 선명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 이어지는 '한국 영화'에 대한 언급은 방대한 국내 작품의 스펙트럼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 다만 주된 경향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가장 먼저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한국 영화의 부진으로 보이는 부분의 상당수는 사실 '영화관의 부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집계된 한국 영화 관객수는 173만으로 코로나 전인 2017~2019년 동월 평균인 395만 명의 43.8%이다. 그런데 올 4월 전체 영화 관객 수는 697만명으로 2017~2019년 동월 평균인 1287만 명의 54.2%이다.

한국 영화의 경우 정도가 더 심하긴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체 영화들이 코로나 이전의 실적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그러니까 이 통계는 한국 영화 콘텐츠가 아니라 '영화관'의 부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2년 2023년 4월 한국 외국 영화 매출액, 관객수.
2022년 4월과 2023년 4월, 한국·외국 영화 매출액과 관객수.

최근 극장을 떠난 관객들은 OTT, VOD 등의 서비스를 찾아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말 기준 가입자 수가 2억 3천100만 명이고, 올해 역대 가장 많은 한국 콘텐츠가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영화를 담는 플랫폼으로서의 극장은 생각보다 관객 친화적이지 않다. 관객이 상영 시작 시각을 정할 수 없고, 극장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어쩌다 옆자리에 무례한 관객이 앉으면 그날 관람을 망치기도 한다.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극장은 노약자에게 더욱 힘든 곳이다. 이는 '오프라인 플랫폼'이 공유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런 제약을 상당수 보완한 것이 OTT, VOD 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영화를 틀 수 있고,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심지어 비용까지 영화관보다 저렴하다. 물론 극장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온라인 플랫폼의 단점도 명확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상당수는 영화관에 새로이 실망한 것이 아니다. 오프라인 방식밖에 없었던 관람 시스템에 온라인 방식이 추가되니까, 자신에게 맞는 채널을 찾아서 떠난 것뿐이다. 극장에 약간의 불만이 있었으나 기술의 미비로 어쩔 수 없이 영화관을 찾았던 관객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의 위기를 논하기는 어렵다. 이는 영화관의 위기일 따름이다.

이런 분석에 분명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늘어나며 영화관을 찾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 것은 인정해.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한국 영화의 부진은 정도가 심해 보이는데?" 맞는 지적이다. 한국 영화는 온라인 시대가 도래하며 외화보다 더 빠르게 극장가에서 철수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여태 한국 영화들이 외화에 비해 영화관 시스템의 수혜를 더 크게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진작에 온라인 플랫폼이 있었다면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 작품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부진은 영화관의 위기만으로 완벽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제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를 할 시점이다.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은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바타 물의 길'.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은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바타 물의 길'.

최근 극장에서는 부진하지만 온라인에서 날개를 펴는 한국 영화들이 많다. 일례로 <외계+인>(2022)은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 153만 명에 그쳤다. 그러나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에는 10일 가까이 '오늘 대한민국 TOP10 영화' 코너 1위를 차지했다. OTT, VOD를 통해 한국 영화를 보는 관객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한국 영화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여전히 활발히 소비된다. 지금 많은 한국 영화들이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플랫폼에서 보기 좋은 콘텐츠로 인식되어 간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들은 어째서 극장 대신 온라인에서 보기 좋은 영화로 탈바꿈했나.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체험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1~4월까지 주요 흥행작과 관객 수를 살펴보면 <스즈메의 문단속>(512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59만 명), <아바타: 물의 길>(349만 명) 등이다. 모두 독특한 비주얼에 강점이 있으며 CG, 액션 등이 화려하다.

반면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뮤지컬 영화 <영웅>이나 <교섭>, <유령> 등이 있지만 확실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고 말할 만한 작품은 부족하다. 성공 공식으로 통하던 '천만 영화' 공식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신파에 대한 관객들의 거부감이 높은 것 같다. 제작하는 영화의 마지막을 적당한 신파로 끝내려는 제작사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관두는 게 좋겠다. 

그러므로 최근 한국 영화 부진의 원인은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과 '영화적 체험의 부재'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한국 영화가 어딘가 변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영화들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변화 없이 그대로였고(이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그것을 둘러싼 영화관과 콘텐츠 환경이 변한 것뿐이다. 극장가의 펜스 안에서 안전한 길을 택했던 한국 영화들은 플랫폼의 발전과 함께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올해 <범죄도시3>, <밀수>, <더 문> 등의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반기에 한국 영화의 관객 수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소 부정적이다. 새로운 이미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하는 작품들이 여전히 부족하다. 또 한두 작품이 흥행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한국 영화의 실적이라 부르기는 민망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실에서 한국 영화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투박한 의견이지만 두 가지를 짚고 싶다. 먼저 사운드, 이미지, 액션, CG 등 영화관이 선사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작품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프라인 플랫폼, 즉 극장에서 여전히 관객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의 다변화로 관객들은 점점 더 강하게 '극장에 갈 이유'를 요청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 플랫폼에 적합한 작품들을 왕성히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 환경에서의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극장 스크린이 아닌 노트북, 모바일에서 보기 적합한 영화의 스타일, 연출, 작법에 대한 기발한 발명이 나오기를 원한다.  

좋아하는 미드 <왕좌의 게임> 시리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Winter is comming(겨울이 오고 있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치열하게 자각하려는 언명이다.

우리가 한국 영화의 부진을 알리는 수치를 볼 때에 시급히 해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이정표를 새로 세우는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변하고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2~3년 이내에 한국 영화계가 위기라는 말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의 곁에 남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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