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에 등장한 윤 대통령...이미지 정치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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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테핑 중단에 1주년 기자회견 생략한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방식
'유퀴즈' '동물농장' 인기 프로그램 출연으로 논란 일어

지난 28일 SBS '동물농장'에 출연한 윤석열 대통령.
지난 28일 SBS '동물농장'에 출연한 윤석열 대통령.

[PD저널=김창룡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석가탄신일 연휴 기간,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SBS <동물농장> 출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이딴 식으로 할 거면 페지하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특정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게시판에 와서 비판하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각자 판단의 몫이다. 정치권력의 TV 오락 프로그램 출연은 늘 논란거리가 되지만 앞으로도 시청자들은 종종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방송 출연을 남는 장사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기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유혹은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으며 인기나 지지도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고 매력적인 수단으로 본다.

미디어의 효과로 '황우석 신화'에 빠졌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방송을 비롯한 모든 국내 언론은 그의 화려한 말솜씨와 과장된 연구업적을 포장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위선과 허위에 속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든 미디어에 힘입어 국가는 그에게 최고의 대우와 경호서비스까지 붙여준 해프닝은 어떻게 됐는가. 허위 이미지에 열광하고 진실에 무심했던 결과는 미디어의 패배, 국민의 좌절이었다.

지난 2009년 6월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안철수’ 편 ⓒMBC
지난 2009년 6월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안철수’ 편 ⓒMBC

안철수 국회의원의 신화는 MBC <무릎팍 도사>에 나오면서 시작됐다. 2013년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해 군입대 과정, 창업과정 등을 이야기하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특히 컴퓨터 바이러스 개발과 관련하여 미국 맥아이피사로부터 1000만달러의 투자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는 발언은 전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 이어진 방송, 신문사의 그에 관한 보도는 객관성은 사라지고 홍보 수준으로 과포장됐다. 그가 방송에서 던진 발언의 진위는 논란이 됐고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도 올랐지만 이미 그것은 관심밖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가 손을 들어준 서울시장 후보는 절대열세에서 당선되는 기적을 연출할 정도였다.

방송 출연으로 쌓은 이미지는 곧바로 정치적 자산이 됐다. 국회의원 선출 이후 탈당, 신당 창당 등을 거쳐 급기야 대통령 출마로 이어졌다. '단일화는 없다'는 자신의 말을 뒤집고 윤 대통령과 극적 단일화를 이뤄 오늘의 윤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SNS 등 각종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 포위된 현대 사회에 미디어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뉴스 소비는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지만,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소비자의 사고력과 판단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기에 권력자나 그 주변 참모들은 인기 프로그램 출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윤석열 당선인 SNS에 올라온 '유퀴즈' 촬영 현장 사진.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지난해 4월 당시 윤석열 당선인 SNS에 올라온 '유퀴즈' 촬영 현장 사진.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국민 소통을 강조하며 야심차게 시도한 도어스테핑을 돌연 중단한 윤 대통령이 인기 프로그램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4월 윤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출연한 tvN<유 퀴즈 온더 블록> 출연 역시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유 퀴즈> 방영 일주일 전인 4월 13일 윤 당선자가 출연해 녹화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은 달라올랐다. 하루 만에 약 3000여개의 글이 올라왔고, 방송이 나간 20일까지 1만여개의 댓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지 않는 정치인 출연을 반대한다” “윤 당선자가 부처 장관 후보 지명을 두고 나오는 잡음을 예능 출연으로 잠재우려 한다”는 등의 목소리였다. 시청자 신뢰도 ‘1순위 연예인’으로 꼽히는 진행자 유재석을 향한 원성도 터져나왔다. 

정치권력이 힘을 앞세워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강행하면 장수프로그램과 시청자 신뢰 1위 사회자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방송사 사장이 직접 프로그램 제작에 간여할 수 없지만 방송제작의 독립과 편성의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방송은 누구 것인가. 정치권력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미디어 소비자, 국민이다.  방송법이 보장하는 방송 제작·편성의 자율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인기 방송에 출연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막아야 한다. 시청자, 국민의 목소리가 높을 때 방송사 사장도, 담당 PD도, 방송 진행자도 'NO'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영상매체가 타락하면 독재자를 영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주의 깊게 관찰한 기록영화다. 나치당의 결속을 강조하고 독일민족에게 당의 지도자들을 소개했으며 나치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의지의 승리>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프로파간다(propoganda, 선동)영화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중에 하나이다.”('시각 권력에 의한 이미지 연구' 이한석,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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