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 여행기', 슴슴한 여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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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여행의 매력 돋보이는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코로나 엔데믹을 맞아 일상 회복이 빨라지고 있다.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여행 소비 심리가 높아지고, 여행 관련 콘텐츠도 봇물 터졌다.

여행 콘텐츠들은 이국적인 볼거리와 ‘먹방’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여행 콘텐츠 홍수 속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가 지난 24일 공개됐다.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이라는 로그라인처럼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매회 약 25분 내외의 미드폼 드라마로 오는 31일 5~8화가 공개된다.

배우 이나영의 4년 만의 복귀작이자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의 작품. 소박한 여행이 돋보이는 <박하경 여행기>의 매력을 짚어본다.

<박하경 여행기>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박하경(이나영)의 당일치기 여행기다. 박하경은 삶이 답답하고, 심신이 지친 토요일마다 전국 구석구석을 누빈다. 해남, 군산, 속초, 경주, 부산 해운대 등으로 떠난다. 박하경은 여행기의 주인공이지만, 마냥 여행자가 아니다. 타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가벼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들‧바다‧골목 곳곳을 누비는 방랑자이다.

그래서인지 여행하면 떠오르는 지역 먹거리나 유명 관광지를 보여주는 데서 살짝 벗어나 있다. 하경이 부산으로 향했을 땐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해운대를 대신하고, 군산에서는 도시의 풍경보다 하경의 제자인 연주와의 에피소드에 무게를 둔다. 

어쩌면 박하경의 여행기이지만, 박하경이 만난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박하경의 여정에서는 특별한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에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매회 박하경과 각기 다른 인물들은 서로 엮이고, 이야기는 확장된다. 박하경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구교환, 한예리, 박인환, 조현철, 심은경 등의 배우들이 참여했다.

배우 이나영이 주연을 맡은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영 여행기'
배우 이나영이 주연을 맡은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이라는 인물은 캐릭터의 선명함보다 여행지에서 하나둘 인연을 만날 때마다 그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 짧은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캐릭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뻘쭘한 상황에서 싱거운 말투, 무덤덤하다가도 발끈하는 표정 등이 박하경의 여백을 채운다. 

여행이 마냥 설렘일 수 없듯이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다. 박하경은 제자인 미술가 연주(한예리)의 전시회 초대를 받고 군산으로 향한다. 하경은 난해한 행위예술을 펼치는 연주와 재능이 부족하다고 따끔한 일침을 놓아달라는 연주 동료의 부탁 사이에 곤란한 처지가 된다. 사실 하경은 연주의 학창시절 “너는 불나방 같다”라며 제자의 예술적 재능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속초 편은 여행보다 하경이 돌아가는 버스터미널에서 겪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하경은 TV 뉴스를 보다가 얼떨결에 젊은이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노인(박인환)과 말씨름한다. 국가, 정치인, 세대, 복지, 여성 문제 등에 관해 논리 없이 훈계하는 노인을 향해 발끈한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면 어딘가 모르게 짠한 노인의 뒷모습에 불편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예기치 못하게 겪은 충돌로 하경은 상념에 빠진다. 

이처럼 <박하경 여행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럴듯한 여행’에 관한 부푼 기대를 덜어낸다. 짧은 여행에서 ‘가성비’ 혹은 ‘가심비’보다 ‘비효율’을 택했기 때문이다. 박하경은 지역 곳곳의 숨은 맛집이나 명소를 찾아다니지도 않고, 당일치기가 버거울 것만 같은 땅끝마을 해남으로 망설이지 않고 떠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지극히 단순한 여정이다.

그래서인지 박하경의 여행을 함께 따라갈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박하경이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의 내면을 두드린다. 여행이 남긴 여백은 바쁜 일상에서 놓쳤던 물음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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