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할 권리 축소에 쌍수 든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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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없이 집회 권리 억압하는 정부
언론, 공권력이 아닌 다친 시민의 얼굴 볼수 있어야

지난 3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퇴진 및 전국동시다발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한 경찰 기동대 옆에 캡사이신 보관통이 놓여있다.©뉴시스
지난 3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퇴진 및 전국동시다발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한 경찰 기동대 옆에 캡사이신 보관통이 놓여있다.©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노동개혁’을 ‘노조 회계 공시’와 ‘불법행위 근절 등 법치주의’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소수 기득권 노조의 비노조원 착취’로 왜곡한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출범 1년 간 유일하게 이행이 빠르고 가시적인 ‘공약’이다.

뒤틀린 개념화는 법적 근거도 없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노조법상 의무인 회계 관련 장부와 서류의 ‘비치 의무’를 단속하겠다며 법에도 없는 ‘장부 제출’는 의무를 부과했다. 건설노조의 경우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이어져 온 최소한의 노동권 보호 장치인 ‘채용시 노조원 차별 금지’, ‘월례비’ 등을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여 처벌하고 있다. 

현실과 법을 무시한 ‘노동개혁’의 이번 목표물은 ‘집회’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 양회동 지대장을 죽음으로 내몬 건설노조 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건설노조는 5월 16일, 1박 2일 집회에 나섰다. 그러자 정부와 경찰,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회할 권리’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집회 다음날인 18일 윤희근 청장이 예고에도 없던 브리핑을 열고 ‘문화제 빙자 집회 해산’ ‘불법전력 있는 단체의 집회 불허’ 등 사실상 ‘집회 허가제’를 천명했고, 19일엔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집회 대응에 물대포 부활 위해 법 개정’을 외쳤으며 21일부터 당정은 여기에 ‘소음 규제 강화’ ‘출퇴근 시간대 및 야간 집회 금지’를 추가하여 법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대통령도 빠질 수 없다. 23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그는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면서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 법집행 공직자들이 범법자들로부터 고통받거나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보호할 것”이라며 경찰의 물리적 진압을 독려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24일부터 전국 경찰은 캡사이신 살포를 포함한 집회 강제 해산 및 검거 훈련도 시작했는데 여기엔 ‘이탈 차단 조치’도 포함됐다. ‘토끼몰이’로 시위대의 희생을 야기했던 군사독재 시절의 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훈련이다. 윤희근 청장은 “눈에 띄는 유형의 폭력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과 교통체증은 경우에 따라 더 큰 상처와 피해를 가져오기에 경찰에게 주어진 법률과 권한에 따라 제대로 막아내는 것이 경찰의 사명”이라며 ‘소음과 교통체증만으로도 해산 및 검거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나열하기도 벅찬 ‘집회 탄압 지시’들은 불과 일주일 사이에 터져 나왔으며, 곧바로 현실화됐다. 25일엔 금속노조와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의 대법원 앞 야간 문화제를 ‘변칙적 불법 집회로 변질될 소지’만으로 오후 2시부터 원천봉쇄했다. 29일엔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이 31일 금속노조의 총파업을 미리 “불법 파업”이라며 ‘행정지도’ 공문까지 내려보냈다. 일어나지도 않은 불법을 국가가 미리 처벌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당연히 법적 근거가 없는 권력남용이다.

집회는 대통령 관저와 같은 특수한 장소가 아니면 신고만 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시간대에도 제약이 없다. 2003년 야간집회 금지에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 “집회의 금지는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뒤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이라 밝혔다.

누군가 모여 밤새 노숙을 하든 산책을 하든 노래를 하든 경찰이 잡아갈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시끄러워 주변에 피해가 간다면 시민들끼리 자율적으로 양보하고 조율하는 게 먼저다. 그래서 그간 경찰이 경고 방송만 한 것이지 ‘전 정부가 경찰권을 포기’한 게 아니다. 경찰권은 그런 곳에 쓰는 게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경찰을 응원했다. <조선일보>는  <[기자의 시각] ‘경찰다운’ 경찰>에서 “노조의 움직임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는 경찰 정보과는 지난 정부 때 폐지에 준할 정도로 축소”, “2017년 경찰청은 집회를 통제하는 데 쓰였던 차벽과 살수차를 사실상 퇴출” 등 전 정부를 비판하더니 “노숙 시위로 도심이 난장판이 됐을 때도 경찰엔 이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경찰다운 경찰’, 즉 ‘노숙집회를 미리 때려잡는 경찰’이 되라는 종용이다. ‘노숙집회’만으로 ‘문화제’부터 ‘출퇴근 시간대 및 야간 집회’까지 모조리 금지하겠다는 불법적 인식이 정부만큼이나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울신문> 사설 <불법폭력 시위의 공권력 유린, 이참에 끊어야>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공권력을 유린’했다는 ‘불법폭력 시위’의 발단으로 아무 충돌도 없었던 1박 2일 노숙집회를 지목했다.

이외에도 △ 현행법대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판사까지 비난한 보도(조선일보  사설 <민노총 도심서 술판 방뇨 노숙, 허가하는 판사, 방관하는 경찰>5.18), △ ‘순수한 문화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유신 시절 관점을 노출한 보도(문화일보 <문화제 빙자한 집회…시민불편 야기 땐 해산 가능>5.19), △ 고 양회동 열사는 열사가 아닌 ‘범죄 혐의자’라며 ‘술판 집회’로 인해 ‘건폭 수사 당위성’이 더 커졌다고 주장한 보도(문화일보 사설 <민노총 ‘술판’ 노숙 집회…더 커진 건폭 수사 당위성>5.17) 등 정부 논리를 고루 대변한 보도들이 넘쳐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회할 권리 축소’에 반색하는 언론의 안색이 공포스럽다. 

조선일보 6월 1일자 12면 기사.
조선일보 6월 1일자 12면 기사.

‘문화제 강제 해산’, ‘교통체증 발생 시 엄단’이라는 경찰의 예고는 31일 현실화됐다. 경찰은 신고 의무가 없는 ‘고 양회동 지대장 추모 문화제’에서 ‘분향소 설치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강제해산하여 조합원 3명의 팔이 골절됐다.

광양에서는 1년 넘게 교섭을 거부하는 포스코에 맞서 고공농성을 단행한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체포에 저항한다’ ‘고공농성장이 교통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곤봉으로 머리를 1분 동안 내리쳐 피투성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경찰 폭행 노조원 4명 체포’ 보도만 두드러졌다.(조선일보 <민노총, 분신간부 분향소 설치 시도...경찰, 철거 방해 조합원 4명 체포>5.31.)

이 모든 사태의 목표는 노조다. ‘노조 때려잡기’의 포장지인 ‘노동개혁’으로 급기야 모든 국민의 집회할 권리까지 드잡이 하겠다는 심산이다. 고작 ‘노숙’과 ‘음주’를 빌미로 집회를 금지하겠다건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인데 선혈이 낭자한 현실이 됐다.

정파성과 무관하게 언론도 공권력이 아닌 다친 시민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인도 노동자고 사람이다. 누구나 밤새 동료들과 길거리에서 술을 먹을 수 있고 노래를 할 수도 있으며 그대로 잠이 들 수도 있다. 인류애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언론이 사람의 얼굴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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