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기구함 뚫은 복순이 할머니 기억에 남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8회 이달의 PD상 수상자 인터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백시원 PD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백골시신과 시멘트, 1948 사라진 사람들편을 연출한 백시원 PD. 사진제공=백시원 PD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백골시신과 시멘트, 1948 사라진 사람들편을 연출한 백시원 PD. 사진제공=백시원 PD

[PD저널=이영광 객원기자] 제278회 이달의 PD상 TV 교양정보 부문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백골시신과 시멘트, 1948 사라진 사람들’ 편이 선정됐다. 선정작은 제주 4·3 사건의 전개 과정과 다랑쉬굴 안에서 발견된 백골에 관한 진실 등을 알기 쉽게 다뤄 호평을 받았다.

수상 소감과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9일 백시원 SBS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배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 4월 방송된 <꼬꼬무> ‘백골시신과 시멘트, 1948 사라진 사람들’ 편으로 제278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했습니다. 소감 부탁드려요.
“굉장히 감사해요. 제작 과정이 항상 힘들지만 여러 아이템 중 (이번 편이) 특히 힘들었던 아이템이거든요. 저희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많이 다루는데 사건 자체가 7년 7개월 동안 벌어졌던 일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심사위원분들이 ‘굉장히 잘 압축했고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잘 정리 했다’고 평가해주셨어요. 굉장히 많이 노력했는데 그게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려요.”

- 이번 편이 특히 힘들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워낙 피해자가 많은 사건이기도 하지만 피해 규모에 비해 너무 안 알려졌던 사건이라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피해 유족들이 되게 많거든요. 이걸 정확하게 전달해야 유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혹시라도 사실관계가 어긋나거나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모두 확인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컸어요.”

- 이야기 친구로 출연한 장혁진, 김의성, 강미나 씨도 섭외하셨더라고요.
“미나 배우님은 초등학교까지 제주도에서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은 희생자가 나았던 노형리 쪽에서 부모님이 가게도 하셨고요. 본인도 어렸을 때 4·3 기념관 같은 곳에 견학을 갔었데요. 연고가 있는 동네라서 조금 더 해줄 수 있는 얘기들이 있을 거라 봤어요. 김의성, 장혁진 배우님은 <모범택시>에 출연했었는데요. 이 드라마가 정의란 무엇인지 묻는 드라마잖아요. 그래서 이 아이템에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의성 배우님은 사회적 발언도 많이 하던 분이고 솔직한 입장을 많이 보여주셨던 분이라서 섭외했고요. 장혁진 배우님은 저희 프로 ‘성수대교’ 편에 출연했었어요. 그때 공감을 잘해 주시더라고요. 이 분을 섭외하면 시청자들이 이 사건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섭외 단계에서 아이템에 대한 설명도 드리나요?
아예 가르쳐주지 않아요. 저희의 원칙이라서요. 섭외 때마다 ‘정말 죄송한데 아이템을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얘기해요. 초반에는 그게 간혹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너무 안 알려주니까요. 근데 지금은 소문이 났는지 큰 문제 없이 섭외하고 있어요.”

이야기 친구로 출연한 장혁진 배우. 사진=SBS
이야기 친구로 출연한 장혁진 배우. 사진=SBS

- 애쓴 만큼 수상에 대한 기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너무 바빠서 출품해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솔직히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엄청 기대하진 않았어요.”

- 수상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제가 팀장이라서 저희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는데 다들 환호하는 이모티콘을 엄청 보내시더라고요. 엄청 좋아하셨어요.”

- 4·3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게 1991년이라고 나오던데 그전에는 아예 몰랐나요?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사건이라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은연중에 다 알고 있는 사건이었어요. 그전 군부독재 시대에는 ‘남로당 당원들이 일으킨 민란 같은 거다. 그래서 죽인 거다.’라는 식으로 프레임이 씌워졌죠. 그러다 김영삼 정권으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 요즘은 예전보다 4·3 사건이 알려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이 알려졌는데 저만 하더라도 자세히는 몰랐어요. 어떤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고, 피해 인원수가 이렇게 많았다는 점이요. 또 거의 아무런 명분 없이 희생당했다는 사실과 사건이 발발하게 된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더라고요. 저도 대학생 때 짧게만 들었었고 아이템을 진행하면서 자세히 알게 됐거든요. 제작진들도요.”

- 탐사대원들 이야기로 다랑쉬굴 이야기를 끌어냈잖아요. 이야기를 구성한 배경이 궁금해요.
“너무 옛날얘기라서 중간 다리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시점을 고려하면 심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죠. 그리고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야기가 되게 흥미롭더라고요. 제가 만약 탐사대원 입장이었다면 비밀을 퍼 올리는 느낌일 것 같은 거예요. 다랑쉬굴을 처음 발견했던 사람들이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이 탐정이 된 느낌으로 추적해 나가는 라인이 되게 재미있다고 느껴서 그 사람들을 앞에 배치했어요. 그들의 시선으로 어떤 맥락에서 다랑쉬굴의 비밀이 만들어진 건지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형식을 띠는 게 되게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 토벌대에게 가족을 잃은 복순이와 광치 형제 이야기도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좁혀준 것 같아요.
“맞아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감정 이입이 힘들었을 것 같고요. 주인공 나이가 되게 어리잖아요. 가치 판단을 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가지기 힘든 나이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 복순이와 광치 형제들 케이스에 조금 더 공감되지 않았나 해요. 어떻게 보면 아무 잘못 없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되게 많았을 거라는 느낌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 살인 면허를 받은 듯한 서북청년단 이야기도 다뤘어요.
“이분들도 복잡한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런 행동을 저지르신 분들이더라고요. 대부분 북한 출신들이고요. 10대나 2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였거든요. 혈기 왕성하던 나이에 북한 공산당에게 자기 땅을 무작위로 빼앗긴 사람들이거나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하고 또 박해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분들 입장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해요. 이승만 정권은 그 심리를 이용한 거죠. 이분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서 기구한 경험을 하셨던 분들이죠. 본인이 대학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셨던 분들이니까요.”

함복순 할머니. 사진=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 갈무리.
함복순 할머니. 사진=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 갈무리.

- 고증 과정은 어땠나요?
“거의 모든 자막과 내레이션을 팩트 체크 했어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몇 개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이 그때 당시 계엄령을 내렸는데 어떤 역사책에서는 불법이라고 나오고 어떤 데서는 그냥 계엄령이라고 나와요, 그런 표현들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4·3 연구소라든가 아니면 4·3 사건을 취재한 기자님이나 교수님들에게 문제가 없는지 자문을 많이 받았어요. 자막에 대한 최종 검수도 제가 했는데 평소보다 한 10배는 꼼꼼히 한 거 같아요.”

- 사실적인 다랑쉬굴 미니어처도 생각나요. 제작할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꼬꼬무>에서 미니어처 제작을 자주 해요. 특별하게 이번 편만 한 건 아닌데 동굴 장면 구현을 디테일하게 잘 해주셨죠. 미니어처를 이중으로 만들었잖아요. 겉에 다랑쉬 오름이 보이고 뚜껑을 열면 동굴의 구조가 보여요. 안에 있었던 세부적인 물건들이죠. 거기 있었던 찻잔이나 가마솥, 옷 그 다음 유해가 놓인 모양 같은 걸 사진으로 보여드렸는데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 주셨어요. 소품 만드는 미니어처 감독님이 집착적일 정도로 디테일하시거든요. 그게 너무 아까워서 저희가 4·3 재단에다 기부했어요.”

-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복순이 할머니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와 오빠를 잃었고 아버지도 굉장히 크게 부상 당하셨죠. 어떻게 보면 이 사건으로 일가족을 다 잃은 분이거든요. 사람이 어떤 시대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운명의 기구함을 뚫고 끈질기게 생존한 얘기를 해주시는 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제작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손대기 겁나는 아이템이었어요. 그래도 용기를 내 던지면(?)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개인적으로 팀원들에게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요. 저희가 잘 안 풀린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취재도 그렇고 회의도 정말 여러 번 했어요. 대본 작업도 녹화 일주일 전쯤 끝마치는데 이번엔 녹화 전날 밤까지 계속 고쳤어요. 제가 그 정도로 팀원들을 들볶았어요.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특히 손하늘 작가랑 우용만 PD가 고생한 게 기억에 남네요.”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