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논란, ‘공영방송 무용론’까지 나아간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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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편향' 거론, 전체주의적 발상 가까워
금도 없는 언론에 공영방송 가치 '거래 대상' 전락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심사위원회 개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심사위원회 개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또 수신료의 계절이 왔다. 정권 교체기마다 ‘내 편이 아닌 KBS’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정치권이 애용한 ‘수신료 분리징수’의 파고가 이번엔 더 가파르다. ‘법치주의’를 앞세워 신고 의무도 없는 ‘문화제’까지 ‘사전 강제해산’하는 걸 현실로 보여준 정부답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을 ‘유죄 추정’ 논란 속에서도 강행하더니 그 빈자리를 파고들어 방송통신위원회로 하여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5인 중 3인만 남은 ‘비상 체제’이지만 6월 14일,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의결했다.

놀라운 건 다른 언론들의 반응이다. 일부 신문사들은 소위 고삐가 풀렸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대통령실도 극구 선을 긋는 분리 징수 강행의 ‘정치적 의도’를 도리어 신문사들이 감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설] 편파방송 반성은 없이 자리 흥정만 하는 KBS 사장>(중앙일보 6.9)은 사장직을 걸고 수신료 분리 징수 철회를 요구한 김의철 사장을 향해 “정파성에 치우친 왜곡·편향 방송,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자성 없이 분리징수 문제를 정치적 다툼으로 몰아가는 부적절한 발언”이라 비판했다. 

<[사설] 독재 때보다 편향, 도 넘은 방만, KBS 수신료 강제 징수 끝내야>(조선일보 6.9)는 “KBS는 문재인 정권 내내 정권의 응원단 역할을 하더니 정권이 바뀐 뒤에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듯 정부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통령 방미를 평가하는 라디오 출연자의 성향은 131명 중 80명이 민주당과 친야 성향” “지금 문제는 KBS의 도를 넘은 편파와 방만 경영”이라면서 “수신료 강제징수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 ‘KBS가 전 정부만 편들고 현 정부는 비난만 하기 때문에 분리 징수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사례다. 같은 언론사들끼리 주고 받기엔 민망한 주장이다. 당장 해당 매체들 스스로도 ‘정파적’이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보도에 대한 ‘정치적 편향’ 평가는 시민사회에서 오갈 수는 있으나 정부가 돈줄 옥죄기나 심의로 통제하는 순간 그 자체로 언론 자유 침해다. ‘편향’은 수많은 콘텐츠를 일일이 검증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 입증이 불가할 뿐 아니라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열린 KBS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열린 KBS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더구나 현재 국민의힘이나 위 보도 사례에서 ‘정치적 편향’을 거론하는 건 사실상 ‘우리 편을 들지 않는다’는 유치한 이유이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발상에 가깝다. 수신료 논란이 정권교체기마다 떠오르고도 현실화되지 않았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고 김의철 사장의 직을 건 제안에 대통령실이 “국민이 원하는 게 분리징수” “경영진 교체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부끄러운 이유를 언론이 숨기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도 9일 YTN 라디오에 나와 “KBS가 민노총의 노역 방송 조작 방송, 편파 방송 이런 걸 했기 때문에 이런 걸 자기들이 초래한 것”이라 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꼭 언론만은 아니다. 

대통령실이 분리 징수 추진의 근거로 삼은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 여론’을 진짜 여론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해준 사례들도 많다. 

<방만·편파 논란 커지는데… KBS, 年 3만원 ‘수신료 세금’ 고집>(문화일보 6.8)의 경우 “KBS TV 수신료를 둘러싼 대통령실과 KBS의 정면충돌은 공영방송의 편파적 보도행태, 방만 경영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신료가 사실상 세금처럼 강제징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상황을 규정하더니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건’ 공개 토론을 진행한 결과 수신료 분리징수 찬성률은 96.5%에 달했다”라고 부연했다. 

‘편파적 보도행태’ 때문에 ‘수신료 충돌’이 발생했다는 ‘반자유주의’적 묘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도 신기한데 ‘국민제안 홈페이지 공개 토론 결과 분리징수 찬성률’을 마치 통상적 여론조사처럼 기술한 부분은 더 가관이다. 

인터넷 친목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이 재미로 해보는 온라인 설문조사 수준에 불과한 국민제안 홈페이지 국민 참여 토론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제안 심의위원회가 선정하여 상정한다는 국민 참여 토론 게시판 안건은 심의 대상이 된 전체 안건도 비공개이고 누가 심의하는지도 비공개이며, 심지어 토론 결과는 추천, 비추천 개수, 댓글 개수로 결정된다. 

언론이 ‘분리징수 찬성률이 96.5%’라며 북한 공산당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 높은 찬성률은 ‘수신료 분리징수 찬반 근거를 적은 게시글’에 ‘추천’이 5만6226회, ‘비추천’ 2025회라는 걸 의미한다. 누가 언제 하는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결국 동의하는 사람만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인터넷 게시판 설문의 추천, 비추천 개수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미래 세대’를 우리가 미리 경험하고 있는 꼴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비극을 정극으로 쓰고 있는 언론 보도는 광대놀음에 다름 아니다.

더 나아가 아예 공영방송 무용론을 주장한 기사들도 있다. 

문화일보 6월 7일자 31면 사설.
문화일보 6월 7일자 31면 사설.

<[사설]시대착오 KBS 수신료 폐지하고 조직 대폭 축소해야>(문화일보 6.7)는 “민간의 다양한 매체가 전방위로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현실에서, 공영방송은 이제 시대착오” “왜곡 편향 방송으로 ‘정권 나팔수’ 오명까지 자초하며, 여러 채널의 TV와 라디오 방송 등 방대한 조직을 유지할 필요도 없다. KBS가 시대착오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게 하는 것은 국가적 당위다”라고 주장했다. 

민간의 다양한 매체들은 돈이 안 되는 건 안 만든다. 문화일보와 현 정부가 좋아하는 시장의 논리다. 따라서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 방송, 소수자가 주인공인 방송, 전시 및 재난 특보, 북한 주민들을 위한 한민족 방송, 재외동포들을 위한 방송, 보편적인 방송 콘텐츠 접근성 보장 등 공적으로 반드시 필요한데 돈이 안 되는 책무를 공영방송에 맡기고 공적 재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게 한전을 통한 통합징수든 아니든 공영방송이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공적 재원을 두고 있으며 수신료 개편을 진행 중인 영국 BBC에서도 ‘공적 재원’이라는 전제가 바뀐 적이 없다. 오히려 2027년까지 물가 인상률에 따라 수신료도 인상하기로 했고 2028년 이후에도 공적 자금으로 지원한다는 공감대에 합의했다. 더구나 이 기사의 말대로 ‘왜곡, 편향’ 때문에 ‘조직’조차 유지할 필요가 없다면 민영 언론 중에서도 당장 정부 광고를 끊어야 할 매체가 부지기수다.

이번 KBS 수신료 사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비추고 있다. 폭력적이고 반헌법적인 언론 탄압, 그것도 방송법 등 상위법 개정을 ‘시행령’으로 우회하는 꼼수에 저항하는 시민사회나 언론의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무력하다.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 시민들도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공영방송 무용론, 수신료를 향한 거부감이 팽배하다. 같은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야 할 언론은 그럼 민심을 정파적으로 갈라쳐 특정 정치세력에 복무하고 있다. 당연히 시민과 함께 지켜야 할 공영방송의 가치는 공영방송 사장이 자기 자리를 내걸고 조직의 명운부터 지키고 봐야하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방송통신위원회나 KBS 이사회의 구성이 현 정부 입맛대로 바뀌고 KBS 수신료의 수명이 조금 더 연장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하다. 독임제와 합의제 사이의 무엇, 정부 부처와 민관 합의 기관 사이의 무엇으로 모호하게 남아 정치적 개입을 자르지 못한 방통위의 태생적 한계, 그리고 끝내 법에도 없는 정당 추천권을 잘라내지 못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실패가 우리를 여기까지 내몰았다. 

수신료 문제에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분리징수’를 외쳐본 적이 있는 정치권이 미래 세대에 할 말이 있으려면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정당 후견주의를 삭제할 방송법 개정안부터 빨리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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