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속 학교와 우리의 학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15]

2023학년도 수능을 31일 앞둔 한 고등학교 교실 ⓒ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어린 시절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중고교생들을 보면서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것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커다란 캐비닛이었다. 당시 뭔가를 학교에 두고 다니려면 교실의 낡은 책상 서랍 속에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상서랍은 매우 좁았으며 잠글 수도, 감출 수도 없었기에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기에 부적합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학교에도 대부분 캐비닛이 설치되었기에 적어도 그 점에서는 더 이상 미드 속 학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미국 학교에서 부러웠던 두 번째는 급식이었다. 툭하면 새서 가방을 더럽히는 반찬 국물과 매일 똑같은 밥 반찬이 지겨웠던 나로서는 학교에서 밥을 주는 시스템이 너무 신기하게 여겨졌다. 물론 모두 알듯이 이미 우리나라에도 학교 급식 시스템이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미국 영화 속 중고등학교에서 부러웠던 세 번째는 마치 대학 강의실처럼 학생들이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 대목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에서 중요한 사건이 터지는 계기가 되곤 했다. 주인공들은 교실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짝사랑하는 이성과 썸을 타기도 하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진을 혼내주기도 했다. 그게 왜 좋았냐고? 종일 교실에 앉아만 있어야만 대한민국의 고교생에게 차라리 미국 영화 속 학교의 모습이 좀 더 활기차 보였달까.

그런데 이제는 그것마저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 중학교 2학년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는 학생들이 선택과목 수강 신청한 후 해당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을 옮겨다녀야 하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해 고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들은 앞으로의 고교 생활에서 고교학점제로 가는 징검다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고교학점제는 말 그대로 고등학교 과목을 학점으로 변환한 뒤 일정 학점을 이수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내신성적을 1~9등급으로 분류해 대입에 적용하지만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각 과목이 5등급제(A,B,C,D,E학점)나 3등급제(A,B,C학점)로 전환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 폭이 넓어진다.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각기 듣는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전교 석차를 계산하기도 어렵다. 과목별 석차만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마저도 기존의 9등급제가 5등급이나 3등급으로 대폭 완화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공부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미국 영화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들이 펼쳐질 차례이다. 한국의 교육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시선이 대학입시에 고정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교 입장에서는 그동안 9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던 학생들이 5개 등급으로 축소되는 만큼 학생 선발에서 변별력을 찾기 어려워진다. 학생마다 들은 과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지원자들 간에 비교를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난감해하는 대학교 측에 교육부는 간단하게 한 마디를 던지고 있다. "중등교육(중고등학교)은 중등교육 본연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고 대학입시는 지원자와 대학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재검토 및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2021.7.21 ⓒ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재검토 및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2021.7.21 ⓒ뉴시스

결과적으로 대학교에게 알아서 학생을 뽑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학교는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은 사실상 본고사가 부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교 교육에서 변별력이 줄어든 만큼 대학교가 다른 평가 기준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본고사가 부활하면 당연히 사교육 부담은 증가한다. 고교 공교육 부담이 줄어든 만큼 학교 밖에서 뭔가를 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래서야 고교학점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큰그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기존 제도에 문제가 있으니 뭔가 바꾸자는 것이겠지만 학생이 이처럼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과목을 잘게 나누어 여러 클래스를 개설하는 게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인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자꾸 바뀌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 시스템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워진다는 점이 가장 불만이다. 변화에 대한 부담과 불안을 고스란히 사교육이 먹을거리로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