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노조 혐오’ 부추기는 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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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노조 혐오 방정식, 지지율 장사의 밑천’

5월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열사정신계승 전국건설노동조합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열사정신계승 전국건설노동조합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신동윤 뉴스타파 PD] ‘노조 혐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조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언론의 보도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퍼지고 있는 '노조 혐오' 문제를 자료 조사와 취재로 분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신동윤 PD는 제작기를 통해 "노조가 시민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정부와 법, 언론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나아지는 건 없다"며 노조는 물론 시민의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다음은 신동윤 PD의 제작기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10월 29일. 서울 시내에서 길을 걷던 158명이 숨졌다. 6시 34분부터 참사의 전조가 보였지만 정부는 작동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에게 뭐했느냐며 호통만 쳤고 총리와 장관은 막말을 쏟아냈다. 누구 하나 ‘내가 잘못했다’, ‘책임지겠다’고 하는 공직자가 없었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지만,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여 만에 30%대로 반등하던 지지율은 연말에 40%대까지 상승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한 것이 계기였다.

노동조합을 공격하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비판은 사그라들었다. 참사 이후 제대로 된 뒷수습도 못 하고,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정치적 효능감을 얻은 정부는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나선 이유다.

사람들은 왜 노동조합을 싫어할까. 추정은 된다. 노조가 파업을 하거나 농성을 하면 정부는 불법 딱지를 붙인다. 기업이 노조 때문에 손실이 크다고 주장하면 언론은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걱정한다. 뻔하다. 그렇다고 이 뻔한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노조를 미워하는 시민이 과반이나 된다는 건 좀처럼 이해되진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화물연대의 파업을 중단시켰고, 새해가 되자 건설노동자들을 ‘건폭’이라고 칭하며 공갈과 협박 등의 죄를 물었다. 정부는 어떤 근거로 이들의 기본권을 뺏을 수 있던 걸까. 현장에 찾아가서 물어봤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업계 불황으로 삭감됐던 임금을 원상회복하라”고 대우조선해양에 요구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최저임금이나 다름없는 안전운임제를 폐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화물차 기사들도 그래선 안 됐다. 타워크레인 기사들도 공기 단축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도 추가 수당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이 지난해 7월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이다. ⓒ민주노총

한국의 법은 이 같은 비정규직들이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생계에 위협이 되어도 정부에 대항해선 안 된다. 마음만 먹으면 노동법과 노조법을 무력화해 사용자를 바꾸고, 업무개시를 명령하고, 수 년간 이어진 관행을 하루 만에 폭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법 기술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데다가 “정부는 기업과 원팀”이라고 천명하기까지 한다.

정부가 시민들의 기본권을 무력화하면 언론이라도 문제를 삼아야 하지만,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언론은 기업과 원팀을 넘어서서 한 몸이 된 지 오래다. 알아서 기업의 매출을 걱정해 주고, 임금을 높이려는 노조는 철밥통이고 귀족이라고 공격한다. 이에 반해 언론에서 노조가 파업하게 된 맥락이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두 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뉴스타파 데이터팀 김강민 기자가 언론들이 노조를 다룬 사설을 분석해 봤다. 무려 10년 치, 3,377건이다. 정권은 세 번 바뀌었지만 노조를 묘사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파업’, ‘강성’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건 한결 같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 ‘불법’이다. 주요 보수, 경제지가 앞장섰다.

막말로 강성 노조가 파업으로 임금을 마구 올리는 게 왜 문제일까. 그 때문에 기업 경영이 악화하면 광고를 받는 언론이야 타격이 있겠지만, 독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거다. (물론 그런 경우는 못 봤다. 어느 경영진이 그렇게 하겠나.)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라면 언론에서 묘사하는 노조의 모습은 재수가 없어 보이긴 할 것 같다. 갈수록 심화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는 노조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득권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노조 조직률을 살펴보면 전체 14.2% 조직률 중 300명 이상 사업장은 절반에 가까운 46.3%나 노조가 결성돼 있었고,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이 비율은 현저히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 노동시장으로 분류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수는 전체의 18.7%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6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서비스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6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서비스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이뤄진 ‘노동조합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노조에 소속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기 때문에 노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46%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만 보더라도 정규직 지회는 조직률이 100%, 비정규직 지회는 비정규직 전체 1만 4천여 명 중 조합원은 200여 명뿐이다. 노조가 비정규직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중심으로 짜인 지금의 틀을 부숴야 하지만 쉽진 않을 듯하다.

멀리 볼 것 없이 언론노조만 봐도 그렇다. 지난 5월 언론노조는 임시대의원회에서 간선제인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하는 안건을 올렸다.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바꿔나가자는 언론인들이 모여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직선제가 무조건 최선의 방법이고 정답이 될 수야 없지만, 모든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하자고 하는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민주노총이 2014년 직선제로 전환했으니 오히려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부결.

찾아보니 언론노조의 직선제 시도는 2015년부터 있었다. 하지만 2015년에도, 2021년에도, 2023년에도 언론노조의 직선제 전환은 실패했다.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장이 인터뷰 중 했던 말이 생각난다. “금속노조나 민주노총도 자본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기업 주주총회 보면 그렇잖아요. 주식 제일 많은 사람이 의결권 제일 많이 갖고 있는 거잖아요. 똑같은 거죠. 정규직 노동자 조합 조직이 많이 돼 있으면 대의원도 제일 많아요. 그럼 그 대의원들이 누구를 위해서 의결하겠어요. 그런 구조로 돼 있는 거죠. 이게 자본주의 구조죠.” 직선제 안건이 부결된 이유가 짐작이 간다.

2023년 노동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인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하여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을 한 지 모르겠습니다.” 이후 조선일보는 건설노조가 양 씨의 분신을 방조했다는 글을 지면에 실었고, 원희룡은 죽음에 이용하지 말라고 그 글을 받았다. 노조 혐오의 공식은 깨지지 않고 건재하다.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분신으로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故 양회동 씨 ⓒ민주노총

지난 수십 년간 노동조합과 노동자 스스로 지키고 바꿔온 한국 사회 노동인권. 그러나 날이 갈수록 노동에 대한 혐오와 외면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노조가 시민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정부와 법, 언론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나아지는 건 없다.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나누고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많은 시민이 노동조합 활동을 지지하도록 하면, ‘표생표사’인 정치인들이 노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더디지만 노조가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지 않을까. 그래서 일을 하는 다수의 시민을 위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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