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이번엔 ‘사교육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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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복돋아 존재감 과시하는 '칼잡이' 언론
뒤틀린 범죄와의 전쟁 속 고통받는 국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교육비 경감 대책 발표를 위해 연단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2023년 6월의 우리 사회는 1980년대를 그린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와 기이한 방식으로 만났다. 대통령이 연일 ‘나쁜 놈들’을 지목하고 당국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이 지금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언론이다. 언론은 대통령이 지목한 ‘나쁜놈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여론의 분노를 북돋아 존재감을 과시한다. 국가의 물리적 공권력과 언론의 상징 권력을 합친 이 거대한 힘은 마치 다음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어슬렁거리는데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서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하며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에 칼바람을 내리칠 때 지목한 ‘나쁜놈들’은 사교육 업계다. ‘킬러문항’은 수능 도입 30년간 불가능한 난제에 가까운 ‘공교육 과정 내에서의 적정한 변별력과 난이도’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수능은 본래 도입 당시 PASS/FAIL로 가늠하는 ‘기본적 수학 능력 평가’를 거쳐 학생 선발은 대학별 고사로 이뤄지는 걸 목표로 했던 시험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입시의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피하는 사이 수능은 입시의 절대적 척도로서 미세한 차이로 학생들을 줄세우는 ‘변별력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 근본적 한계에서 나온 게 ‘킬러문항’이지만 대통령과 교육부는 ‘공교육 과정 외 문제’ ‘교과 융합형 문제’ ‘초고난도 문제’ ‘어려운 배경지식을 요하는 문제’ 등 정리도 채 안 된 개념을 나열하며 섣부른 지시를 내렸고 느닷없이 그 원인을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했다.

그간 교육 당국이 만든 수능, 킬러문항을 따라 성장한 사교육 업계는 갑자기 킬러문항을 만든 ‘나쁜놈들’이 됐다. 허위광고 단속 등을 ‘사법처리’한다는 엄포와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 피해를 바탕으로 초과 이익을 취하는 것은 범죄이고 사회악"이라는 여당 사무총장의 지휘 속에 언론이 등장했다. <일타 강사들, ‘킬러 문항’ 배제에 불만 표출… ‘밥그릇 챙기기’ 비판 >(세계일보 6.21)는 “자신의 소득세가 130억원임을 직접 인증하며 수입을 공개한 바 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에 출연해 자신의 수입차와 고급주택 등을 보여 주기도 했다” 등 일부 학원 강사들의 ‘호화 생활’을 나열하더니 “애들한테 번 돈으로 수입차 사고 호화로운 주택에 살면서 그걸 자랑하는 게 교육자의 태도라 할 수 있냐”라는 익명 인터넷 댓글을 결론으로 삼았다. 이런 보도는 대통령이 ‘사교육 카르텔’을 지목한 후 넘쳐나기 시작했다. 학생 서열화, 학교 서열화 등 뿌리 깊은 교육 정책의 구조적 문제는 사라지고 많은 수업과 학생 관리를 통해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고소득을 올린 강사들이 ‘범죄자’가 됐다.

세계일보 6월 21일자 5면 기사

대통령이 일망타진 지시를 내린 ‘나쁜놈들’ 중 ‘일타 강사’는 그래도 ‘스타’에 속하기 때문에 주목이라도 받는 편이다.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선동에 휘둘려 국익을 훼손하는 괴담론자’들로 손가락질받는 억울한 사연도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가 배치된 성주의 주민들이다. 21일 국방부는 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의 전자파가 휴대전화 기지국보다 더 낮아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농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성주 이름에 먹칠한 민주당은 국민 앞에, 성주 군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것"(6/22 윤재옥 원내대표) "반과학적 사드 괴담으로 농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은 민주당은 그동안 사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었나"(6/22 강민국 수석대변인) 등 민주당을 향해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따르면 성주 주민들은 ‘민주당 괴담’에 ‘대못’이 박힌 사람들이다. 언론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성주 주민들도 ‘나쁜놈들’에 포함시켰다. <사설/사드 괴담 규명에 6년…사과 없이 또 오염수 선동하는 野>(문화일보 6.22)는 “괴담 선동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사법적 책임을 묻고, 최종적으로는 국민 스스로 다시는 속지 않도록 각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정치권발 ‘망국적 괴담’ 15년간 한국 사회 휩쓸어>(문화일보 6.22)의 경우 “괴담 사회의 양상에 대해 좌파의 선전·선동 기술과 극단적 진영 논리가 결합한 데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했던 주민들을 ‘좌파의 선전 선동’ ‘극단적 진영 논리’의 한 축으로 취급했다.

 26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철회 성주대책위원회와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성주에서 물러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성주 주민들은 ‘괴담론자’도, ‘민주당의 피해자’도, ‘좌파’도 아니다. 본 적 없는 거대한 무기 체계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자 저항하고 우려를 표한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국방부의 환경영향평가 후에 구체적으로 전자파 분석 방식을 논박하며 불신을 표한 것도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레이더의 가동 여부와 모드에 따라 출력이 천차만별인 사드의 특성상 출력을 공개한 상태에서 24시간 상시 측정기를 달고 최소 1년 측정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으나 국방부가 외면했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레이더 가동 여부와 출력조차 비공개인 상태에서 4개월 만에 측정을 마쳐 조사 결과가 무의미하다는 의미다. ‘괴담’을 설파하면서 정작 이런 목소리를 전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괴담’을 누가 만들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과 여당이 ‘나쁜놈들’을 지목하면서 정말 나쁜 놈이 누구인지 논의할 틈도 없이 ‘범죄와의 전쟁’만 줄을 잇고 있다.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어 약속한 조합원 채용 배제 금지 조항마저 ‘조합원 채용 강요’라며 ‘양대노총’을 ‘나쁜놈들’, 정확하게는 ‘건폭’으로 지목한 대통령이다. 안타깝게도 ‘건폭과의 전쟁’에서는 고 양회동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 비극 속에서 언론이 중재자도 아닌 권력의 ‘칼집’ 역할을 하는 현실은 영화보다 끔찍하다. 뒤틀린 범죄와의 전쟁에서 고통받는 건 늘 평범한 국민들이다. 영화에서도 ‘범죄와의 전쟁’ 끝에 살아남은 승리자가 가장 ‘나쁜놈’이자 공권력과의 유착을 악랄하게 이용했던 최익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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