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건강하고 행복한 이웃으로 연대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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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50주년 특별기획 '장바구니 집사들'

KBS '장바구니 집사들'

[PD저널=김자영 KBS PD] “형, 빵이랑 우유는 더 비싸잖아”라고 툭 내던지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말을, 10년 전 여름 어느 지역 아동센터에서 들었다. 그때 나는, 센터의 아동들에게 과일을 챙겨 먹이자는 캠페인 방송을 위해 답사 중이었다. 급식이 나오지 않는 아침은 어떻게 먹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은 대개 부모나 보호자들이 부재한 식탁에서 홀로 끼니를 챙기고 있었다. 그중 식빵 한두 쪽과 우유 한 잔으로 때운다는 열두 살의 대답에 열 살이 이어간 대꾸였다. 그 아이의 아침은 맨밥에 김치, 혹은 가끔 라면이었다. 밥에 김치 한 조각 얹어 먹는 것이 식빵과 우유보다 끼니당 ‘가격’이 싸다는 것을, 너무 일찍부터 걱정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답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셈법도 걱정도 필요 없는 행복한 식탁을 마주할 수 있고, 건강한 이웃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0년 가까이 이어온 이 고민은, 긴 팬데믹과 전쟁으로 모두가 밥상 물가를 걱정하던 작년에 본격적인 프로그램 구상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처럼 혼자 힘으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밥 사먹을 돈’이 아니라 ‘건강한 식재료’가 든 장바구니를 이 청년들에게 보내주면 어떨까,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건강하고 따뜻한 집밥을 요리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면, 또한 누군가 이 장바구니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면서 청년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관계를 맺는 실험을 해나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프로그램의 외피를 씌운 질문이 시작되었다. 다만, 이것이 방송의 판타지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현실까지 닿을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는 프로그램은, 방송을 넘어선 <장바구니 집사들 프로젝트>로 한차례 진화하게 되었다.

KBS '장바구니 집사들'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물론, 자립준비청년들이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여러 사회복지재단을 만나서 자문을 구했다. 응원과 우려가 섞여 들어왔다. “그 친구들은 스스로를 잘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도움도 관계도 절실하지만 동정은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조심스레, 요즘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듣고 싶다는 공지를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인 SNS에 올리고, 아동복지시설 등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6개월 동안 50여 명의 청년들을 어렵게 만났고, 두세 시간씩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끼니로 뭘 먹고 사는지부터, 홀로 자립하기까지 어떤 상황을 견디면서 살았는지, 앞으로 무슨 희망을 붙들고 있는지.

<장바구니 집사들> 방송에 담은 자립준비청년들의 사연은, 이들이 이겨낸 시절의 극히 일부분이다. 제작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화내고, 때로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대화의 끝에는 항상 이런 말이 나왔다. “진짜 고생했어요. 참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당신의 얼굴과 이야기를 방송에 공개하고, 식재료 장바구니로 생경한 집밥을 해보라고 굳이 설득하지는 않았다. 청년들이 먼저, 건강한 집밥 요리를 통해 스스로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고 싶다고, 무엇보다 그동안의 삶을 잘 버텨왔고, 밝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다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말했다. 우리는 이들이 참,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장바구니 집사들>은 제작진을 찾아와준 자립준비청년들의 용기와 진심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작진과 집사 출연자들은 같은 말을 담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청년들로부터 깊이 배우고 위로를 받는다고.

KBS '장바구니 집사들'

<장바구니 집사들 프로젝트>의 또 다른 주인공은 청년들의 장바구니를 채우고, 이들의 꿈과 삶에 따스한 응원을 보낼 집사들이었다. 방송의 기획 의도부터 깊이 공감해 준 출연자 장민호, 한혜진, 장성규 등과 다양한 후원으로 마음을 전한 시청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에 더해, 청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줄 사회복지재단, 식재료 주문과 배송을 담당할 온라인 마트 플랫폼,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부 채널 등이 필요했다. 작년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반년 이상의 협의를 통해서 두 곳의 사회복지재단과 농협 온라인몰, 카카오 ‘같이가치’ 등의 주요한 주체들과 협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장바구니 집사들 프로젝트>의 요청에 기꺼이 화답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담아주었다. 방송 안에서 청년들과 집사들의 진심이 이어지고, 서로의 삶에 공감하며 응원을 주고받는 동안, 약 70여 명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올해 말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식재료 장바구니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과 후원금이 만들어졌다. ‘사회사업’의 영역은 ‘방송 제작’과는 또 다른 별세계였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방송 프로그램과 사회사업을 동시에 만들어가는 복잡한 여정은, 청년들의 집밥 요리 마냥 우리 제작진에게도 새로운 도전의 장이었다.

결국 그 여정의 끝 무렵에서 6회차의 프로그램이 무사히 방송되고, 2천 5백 개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던 장바구니의 개수는 4천 개를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지난 5월부터, 약 70명의 자립준비청년들이 작은 원룸에서 집밥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보내온 후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때우고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던 끼니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스레 한 끼를 차려 먹으면서 잘 차려진 한 끼를 제 자신에게 선물하고 선물받는 기분이라 하루 중 식사시간이 제일 기대되는 것 같습니다.”

KBS '장바구니 집사들'. '집사'로 출연한 배우 한혜진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건강한 식재료와 따스한 응원을 보내고,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 <장바구니 집사들 프로젝트>는 올해를 넘어서 내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기꺼이 동참해준 청년들과 시청자들, 장바구니를 든 집사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된 이 연대의 구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는 한결 진화한 내용의 후속 방송과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

이제 공영방송을 위해 일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책무가 더욱 치열하게 느껴지는 시절이 왔다. 10년 전 만난 그 아이들 또한 아마 야무지고 단단한 스무 살 무렵의 청년으로 자랐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과 청년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는 일, <장바구니 집사들 프로젝트>는 그 시작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KBS '장바구니 집사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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