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백지화 논란, 권력자의 ‘전략가’로 전락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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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본질 벗어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양극화된 정파 논리만 남긴 언론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지역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규명 TF의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후 보충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대화가 단절된 만큼 정쟁은 뜨겁다. 대통령은 집권 1년만에 국회가 만든 법을 2번이나 거부했고 신고 의무도 없는 시민들의 문화제와 밤샘 집회를 범죄가 ‘예상’된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강제해산하고 있다.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시행령으로 강행하여 공영방송의 돈줄을 옥죄었다.

정치권 초유의 대치 상황은 엉뚱한 결과로 터져 나왔다. 15년간 추진된 국책사업이자 지역 숙원사업인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정부가 백지화 선언한 것이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야당의 김건희 씨 일가 땅 특혜 의혹 제기를 이유로 들었다.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 자체를 백지화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사과하면 재추진할 수도 있다’(7/9)는 원 장관의 발언에서는 민주당을 향한 적개심이 두드러진다. 의혹에 대한 설명과 공박은 필요 없고 야당을 힘으로 찍어 눌러 찍소리 못하게 하겠다는 태도다. 장관보다는 ‘전장의 선봉장’에 가까운 자세다. 대화 없는 정치는 많은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의혹 제기마저 ‘격퇴’해야 하는 ‘적대세력의 괴담’으로 만들었다.

일부 언론은 이 전장에서 훌륭한 전서구가 됐다.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 완료까지는 정부 차원의 공식 논의도 없었던 ‘강상면 종점안’이 올해 5월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계획에서 갑작스레 확정되고 변경된 종점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김건희 씨와 모친 최은순 씨, 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을 받는 친오빠의 가족회사 등이 가진 땅이 7천평 넘게 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의혹 제기가 막 시작됐을 당시인 7월 3일엔 원희룡 장관마저 “김건희 여사 땅이 강상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레임,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이래서 정무직 장관이 필요하다. 이래선 안 된다. 즉각 원전 재검토하라 지시했다”라고 할 정도로 충분히 합리적인 의혹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관련 논의를 위한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관련 논의를 위한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수세에 몰린 정부‧여당을 향해 반가운 전령이 날아들었다. 알고 보니 2년 전에 민주당도 같은 노선안을 요구했었다는 ‘역공 전략’이다. 조선일보의 <‘김건희 특혜’라던 양평고속도 노선, 2년 전 민주당서도 요구했다>(7.7) 등 많은 보도들이 2021년 민주당 최재관 지역위원장과 정동균 당시 양평군수가 강하IC를 설치하는 안을 제안했으며 이는 현 정부의 강상면 종점안과 다를 게 없다고 허를 찔렀다. 정부‧여당은 곧바로 민주당이 근거 없이 김건희 여사를 악마화하고 있다는 공세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강하IC는 양평 주민들이 오랜 기간 요구한 요소로서 2021년 당시 양평군은 강하IC 설치만 반영했을 뿐 종점은 원안 그대로인 양서면으로 뒀던 것이다. 이 고속도로 건설의 지상 목표가 유명 관광지인 두물머리 인근 6번 국도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것이라 그 인근인 양서면 종점은 사업 추진 내내 바뀐 적이 없었다.

언론은 새로운 전술을 물어다줬다. 알고보니 민주당 소속 정동균 전 양평군수도 종점 인근에 땅을 가지고 있다는 ‘피장파장’ 전략이다. 조선일보가 몸소 선봉에 섰다. 조선일보의 <단독/민주당 前양평군수 일가, 고속道 원안 종점 일대 大지주였다>(7.9) <단독/민주당 前양평군수, 예타 통과 앞두고 원안 종점 땅 258평 샀다>(7.10)는 “정 전 군수 일가는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에 1만여㎡(3천여평)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가 노선 원안상 종점으로부터 1.6㎞가량 거리에 있다”면서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정 전 군수의 종점 변경 반대는 자기 땅값 상승을 위한 것 아니냐는 논리도 성립된다”고 날카로운 창끝을 뻗었다. 국민의힘은 물론, 매복해있던 다른 언론들까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언론까지 진흙탕 정쟁의 플레이어가 되는 게 일상화됐지만 유난히 기이한 그림이다. 애초 의혹은 그리 복잡하지도 않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동안 논의가 없었던 종점안이 하필 김건희 씨 일가 땅 인근으로 튀어나왔으니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언론에서는 극소수에서만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여당에서는 종적을 감췄다. 대신 언론이 띄운 ‘민주당도 똑같이 의심스럽다’는 진흙탕 전략이 전장을 뒤덮었다. 민주당 소속 전 양평군수도 원안 종점에 땅을 가졌든, 강하IC를 요구했든, 적어도 의혹이 되려면 김건희 씨 관련 의혹처럼 ‘갑툭튀 종점안’과 같은 ‘이상현상’이 있어야 한다. 의혹의 기본 요건과 사안의 본질을 덮은 ‘어차피 모두가 다 더럽다’는 식의 싸움에서 국민에 대한 설명 의무 대신 ‘사업 백지화’를 택한 정부의 책임도 사라졌다. 전세 역전의 수훈갑은 언론인데 언론의 역할이 원래 이런 ‘전략가’였던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 ⓒ뉴시스

‘전략가 언론’은 이상하게도 정말 전략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사라졌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전투원이어야 할 언론이 종적을 감춘 대표적 이슈다. IAEA의 종합 보고서는 ‘책임 지지 않는다’거나 ‘일본의 계획과 데이터’에 의거했음을 밝히고 있으며 오작동률 등 다핵종제거설비의 기술 검증과 국제해양법 상 의무 차원의 검증이 없었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인류가 처음 겪는 노심 노출 원전의 대규모 오염수를 인위적으로 처리해 내보내는 사태에서 이런 보고서만으로 안전성을 확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걱정과 불안과 문제제기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체계적인 전략을 보여줘야 할 언론이 사라졌다. 도리어 한국에 온 IAEA 사무총장과 ‘북핵이 더 위험하다’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단독/IAEA 사무총장 “국제사회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후쿠시마가 아닌 북핵”>(조선일보 7.8)와 같은 기사를 양산했다. <사설/IAEA 보고서 공개…괴담 벗어나 국민 불안 해소 머리 맞대야>(서울경제 7.5) 등 IAEA는 과학으로, 문제제기와 비판은 ‘괴담’으로 규정한 보도들도 넘쳐났는데 해당 기사의 결론은 놀랍게도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IAEA의 결론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누구인지 헷갈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심판은 IAEA가 아니라 국제해양법, 런던의정서 등 공인된 국제적 약속과 국내에서는 은폐됐으나 국제적으로 축적된 생물 농축과 저선량 방사선의 위험성, 알프스 설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연구결과들이다. 언론은 김건희 씨 일가 양평 땅을 너무 쉽게 믿어주는 것처럼, 별 이유도 없이 IAEA와 일본에만 ‘승복’하고 있다.

국회 찾은 그로시 IAEA 사무총장 ⓒ뉴시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장마다 역할과 의무를 달리 취사선택하는 언론은 묘한 지점에서 만난다. <광우병 괴담 주도 세력, 오염수 찍고 양평으로>(조선일보 7.12) 등의 보도는 광우병 수입 반대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양평 김건희 일가 땅 의혹 제기까지 ‘괴담 선동’을 한 시민단체들의 ‘구성’이 똑같다며 ‘민주당이 동원하는 괴담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가 정부 정책이나 기조를 비판하며 활동해 온 게 대체 왜 ‘괴담’이 되는지 의문이지만 중요한 건 ‘괴담 세력’이라는 낙인이다. ‘낙인 전략’은 항상 ‘진실’을 마음대로 규정하려는 ‘권력자’에게 유효하게 작동해왔다. 다양한 현안에서 권력자의 편의에 맞춘 ‘한방 전략’까지, 언론은 진정한 전략가로 거듭났다.

언론이 떠나간 전장에는 정쟁과 혐오, 양극화된 정파 논리만 남게 됐다. 저들이 ‘괴담’이라 치부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광우병 수입 재협상을 이끌어냈고 소에게 소뼈를 먹이는 관행 자체를 국제적으로 없애는 데 기여했다. ‘괴담’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과 언론의 신출귀몰 전략 속에 바로 그 목소리가 갈 곳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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