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권법, '금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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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취재 후 여권법 위반으로 벌금형 받은 장진영 사진작가

정지영 사진가가 지난 6월 언론개혁시민연대
장진영 사진가가 6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여권법 위헌법률 심판 제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PD저널=장진영 사진가] 2022년 3월 말쯤, 우크라이나 입국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 경찰청에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통화 끝에 방문조사 일정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여행금지 제도와 여권법 제17조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여권법 제17조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내 인생과 연결된 적이 있었나 한번 되돌아봤다.

데워지는 물 속
“오늘은 주 카불 한국 대사관에서 명시한 강제 철수일 중 독신들의 철수일이다 (중략) 1년 전 카불에 올 때 내 손에는 편도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향하는 편도 티켓을 가지고 기약 없이 정든 아프간을 떠나게 된다. (중략) 이제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이 피로 점철된 나라를 나는 타의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됐다.” (정은진, <카불의 사진사>)

여행금지 제도를 생각하면서 가정 먼저 떠오른 기억은 십몇 년 전에 읽었던 “카불의 사진사”였다. 이 책은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정은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인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보낸 1년 여를 기록한 포토 에세이집이다.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글과 사진을 가지고 좌충우돌하며 보낸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의 아프가니스탄 생활은 강제 철수로 막을 내린다. ‘샘물교회 납치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교민이나 체류했던 주재원 등 한국 국적 사람은 철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던진 나라에서 출국해야 하는 절망감과 무너진 삶의 계획에서 오는 두려움에 공감했다. 동시에 분쟁지역을 촬영해야 하는 사진기자가 분쟁지역은 위험하니 철수하라는 외교부 말을 들어야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다만, 그것은 내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사진을 업으로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랬는지, 여행금지제도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17년 촬영을 하다 한 프리랜서 사진기자를 만났다. 그는 2003년을 이라크 전쟁 한복판에서 보냈다. 이라크 전쟁 이전과 이후에는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다양한 분쟁지역에서 삶을 이어갔다. 이후에 국내로 복귀를 했고, 샘물교회 사건이 발생했다. 그 결과, 여권법 제17조가 개정됐다. 여러 분쟁지역을 누빈 그와 그날 일정이 끝나고 커피 한잔을 할 기회가 생겼다. 대화를 이어가다가 그가 종군 사진기자에게 한국여권이 어떤 의미인지 말했다.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나라가 몇 개국인가를 놓고 순위를 매기는 ‘세계 여권 순위’에서 한국은 3위이니, 4위이니 사람들은 말하지만,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사진기자에게 한국의 여권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고 했다. 한국 여권은 세계 여러 나라에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아니라, 분쟁지역의 문을 걸어 잠근 단단한 자물쇠라며.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지만 시리아에는 갈 수 없다는, 분쟁지역 취재에서 인정을 받았던 그의 말은 기이하게 들렸다. 다만, 그게 내 문제는 아니었다.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나 계획이 없어서 그랬는지, 여권법 제17조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3월 13일, 우크라이나 르비우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남편이 배웅 나온 부인을 안고 있다. ⓒ 장진영
3월 13일, 우크라이나 르비우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남편이 배웅 나온 부인을 안고 있다. ⓒ 장진영

2019년 가을, 나는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를 찍고 있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한국인 프리랜서 사진기자를 만났다. 그는 여러 분쟁지역을 다녔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을 촬영했다고 한다. 홍콩에서 며칠 동안 그와 함께 다니면서 그에게 분쟁지역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들었다. 그 경험담 속에서도 여행금지국가와 여권법이라는 단어는 계속 등장했다. ‘언론인의 안전’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권법이란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외교부의 모습이, 괴이해 보였다.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체포를 막을까? 소방관이 인명구조나 화재진압을 할 때, 위험할 수 있다고 구조나 진압을 하지 말라고 하나? 이러한 의문을 품었지만, 그게 내 문제는 아니었다.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나 계획이 없어서 그랬는지, 여권법 제17조는 여전히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감각해지는 온도 변화
여권법 제17조 외교부장관은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危難狀況)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체류를 금지 (이하 “여권의 사용제한 등”이라 한다)할 수 있다. 다만, 영주(永住), 취재·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목적의 여행으로서 외교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여권의 사용과 방문·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

지난 삶을 되돌아 보니, 지금까지 여행금지제도와 여권법 제17조가 직접·간접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마주쳤다. 한 사람은 실제 강제 철수를 당했고, 다른 사람은 분쟁지역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분쟁지역에 갔다. 인생이란 오솔길에서 이와 같이 여권법과 여행금지제도를 우연히 몇 번 마주쳤을 때, 이것들의 기이함, 괴상함은 느꼈다. 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위험을 이유로 분쟁지역에 가는 것을 막는 기이함과 기자들이 분쟁지역에 갈 때 가더라도 국가의 ‘예외적 허가’를 받고 가야하는 괴상함을. 다만 지난 마주침에서 이 기이함과 괴상함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진이 아닌 다른 생업에 종사할 때도 있었고, 분쟁지역에 가고 싶은 마음이나 계획도 없는 내가 여권법 제17조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권법 제17조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려는 언론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 기자들의 ‘위난상황’인 국가나 지역의 방문을 막거나, 그들을 해당 지역에서 철수시킨다. 그러나 여권법 제17조가 가진 다른 힘은 기자들을 위험에서 구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유럽평의회는 “분쟁 및 침략상황에서의 저널리즘 원칙”에서 유럽 회원국에게 국경 이동과 분쟁지역 접근을 포함하여 언론인에게 이동의 자유와 정보의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헌법 제21조 제2항에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한국의 언론인들은 분쟁지역에 가려면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예외적 허가)에만 가능하다.

3월 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앙역에서 한 군인이 피난을 가는 부인과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 장진영
3월 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앙역에서 한 군인이 피난을 가는 부인과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 장진영

언론 자유 보장하는 원칙 세워야 
언론에 대한 제한은 원칙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다. 그러나 분쟁지역에 위험이 상존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분쟁지역 취재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분쟁지역에서 기자들은 위험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취재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우리가 경찰관과 소방관의 업무 특성상 위험이 상존한다고 그들의 업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않듯이 말이다. 오히려 경찰청과 소방청은 체포나 화재진압 과정에서 드러나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한다. 위험한 상황을 대비한 적절한 장비를 연구·개발하거나 다양한 위험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법이나 전략 등을 모의실험을 통해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훈련한다. 이처럼 분쟁지역 취재에 상존하는 위험을, 분쟁지역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분쟁지역 방문을 금지하거나 예외적 허가를 하는 것은 온전한 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분쟁지역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외국의 언론단체들이 분쟁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우는 워크숍 등을 개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수학여행 전면금지를 안전대책 중에 하나로 내놓았다. 수학여행의 교육적 목적·효과보다 학생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면, 수학여행을 금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여행의 교육적 목적·효과와 학생의 안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수학여행 전면금지라는 대책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위험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게다가 이 대책이 얼마나 게으른 대책인지도 알 수 있다. 분쟁지역의 위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분쟁지역의 위험성에 관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직시하며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다. 거기에 더해 게으르고 간편한 대책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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