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BBC에 들이닥친 공영방송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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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16]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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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정욱 MBC PD] 거대한 파도가 방송가를 덮쳤다. TV수신료 분리징수가 그것이다. 공영방송은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나는 정부로부터 직접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이 내는 공적 부담금을 받아 운영하는 것이다. KBS가 받는 수신료가 후자에 속한다면 지금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TBS는 전자에 해당한다. 서울시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TBS는 보수정당에 비판적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방송하면서 국민의힘과 대립을 벌였다. 하지만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서울시의회에서도 국민의힘이 다수가 되면서 엄청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TBS에 대한 서울시의 재정지원은 큰 규모로 삭감되었고 내년부터는 아예 지원 자체가 중단될 상황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퇴출되었다. 지금 TBS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오세훈 서울시장도 알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공영방송 TBS가 뚜렷한 전망 없이 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KBS의 수신료 분리징수는 더욱 복잡한 문제를 포함한다. 공영방송으로서 KBS는 재난, 지역, 장애인, 소외계층, 다문화, 재외동포, 전통문화 등 소위 '돈이 되지 않지만 방송의 공공성을 위해 꼭 해야 하는' 방송을 제작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영방송이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간섭과 자본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재원을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로부터 충당하는 것은 KBS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분리징수안을 꺼내들면서 그 근간을 뒤흔들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수신료 분리징수를 밀어붙이는 것일까. 공식적으로 가장 커다란 이유는 국민들의 여론이다. 수신료를 전기료와 합산해 강제징수하는 데 대해 반발하는 여론이 크다. 반발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대체로 “나는 KBS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나 유튜브 등을 통한 영상시청이 크게 늘면서 비단 KBS뿐만 아니라 TV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의 수신료 분리징수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흔히 수신료 분리징수의 모범사례로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언급한다. 하지만 BBC의 사례를 곰곰이 뜯어보면 KBS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알게 된다. BBC는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대신 미납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과태료도 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처벌을 당하는 인원이 매년 수만 명에 이른다. 영국에서는 도대체 수신료 미납이 형사처벌까지 당할 문제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분리징수를 한다지만 영국의 수신료는 사실상 강제징수인 셈이다. 수신료 액수도 1인당 연 154파운드(약 20만원)가 넘는다. 영국 국민들로서는 부담률도 높은 데다가 법적인 처벌까지 당할 수도 있으니 수신료에 대한 불만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존재 필요성의 논리가 불만 여론보다 더 우세했다.

영국 BBC ⓒpixbay
영국 BBC ⓒpixbay

하지만 이 관계를 뒤흔드는 정치적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한다. EU 탈퇴를 둘러싸고 벌어진 ‘브렉시트(Brexit)’ 논쟁이 그것이다. BBC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찬성론자들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당연히 브렉시트 찬성파인 정치인 보리스 존슨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문제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칼자루를 쥐게 된 존슨 총리는 BBC 수신료 이슈를 브렉시트로 인해 낮아진 자신의 지지율을 커버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그는 총선 기간 중 수신료 미납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며 이를 여론의 도마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존슨 내각의 문화부 장관은 수신료 폐지를 주장하는 니키 모건(Nicky Morgan)이었는데 그는 BBC 수신료 미납에 대한 처벌 면제를 검토하는 기구를 만들어 이 문제를 공론에 붙였다. 영국 내에서는 존슨 총리가 수신료를 빌미로 언론 장악을 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으나 존슨은 수신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근거로 내세웠다. 결국 존슨 총리는 2027년 수신료 완전 폐지를 선언했다. BBC는 이에 대한 자구책 마련으로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보도부문을 대폭 축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회사의 중심을 온라인으로 이동해 몸집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은 물러날 때까지 수신료 폐지 이후 BBC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안도 없이 불만 먼저 질러놓고 퇴장한 셈이다.

BBC의 상황이 한국에서 너무나 흡사한 형태로 재현되는 중이다. 정부가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하면서 재원을 끊는 압박을 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를 매개로 삼아 그러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도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가장 비슷한 것은 이러한 조치의 큰그림이 없다는 점이다. TBS를 형해화하면서도 그러했지만, KBS의 수신료 분리징수를 결정하면서도 향후 공영방송을 어떠한 모습으로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비단 KBS에 홀로 불어닥친 파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신료 분리징수는 KBS의 재정압박으로 이어질 것이고, KBS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광고 송출 확대로 나설 것이다. 방송 광고 시장의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로 인한 여파가 온 방송가에 미치리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방송계 전체가 커다란 구조조정에 휘말리는 후폭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과 미디어가 너무나 느긋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정부가 공영방송을 시대적 흐름에 맞춰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면 환영할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우선 품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지 국민들과 방송 종사자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고 난 이후에 어떠한 변화든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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