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 약자를 희생시켜 거둔 부의 추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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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악귀’가 꼬집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

SBS 금토드라마 '악귀'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죽은 어린 아이나 자의적인 낙태, 유산으로 인해 죽은 태아의 영혼.’ 한국 귀신의 하나인 ‘태자귀’를 뜻하는 말이다. 무속 신앙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무당이 신을 얻기 위해서 어린 아이를 가둬 굶어죽게 만들고, 그렇게 한이 맺혀 귀신이 된 아이를 무당이 이용한다고 한다. 최근 김은희 작가가 쓴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왜 그 많고 많은 토착 귀신들 중 하필이면 바로 이 태자귀를 중심적인 소재로 가져온 걸까.

그 해답은 <악귀>라는 작품이 가진 독특한 은유적 설정 속에 있다.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 공포 장르지만 <악귀>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은유적으로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끔찍한 아동학대를 해온 비정한 부모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그렇다. 이 이야기에서는 귀신이 저지른 사건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귀신이 추악한 부모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인간이 악귀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꼬집었다. 이처럼 <악귀>는 그 오컬트 판타지가 갖는 공포 장르로서의 재미만이 아니라, 그 비현실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려는 은유적 재미도 있는 작품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태자귀라는 특정 귀신의 서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아이라는 약자를 희생시켜 무언가를 얻으려는 엇나간 어른들의 욕망이 탄생시킨 귀신이 아닌가. 이것을 현재의 청춘(으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이야기로 해석하면, 청춘 같은 약자들을 희생시켜 부와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어른들의 욕망을 이 태자귀라는 비극적인 존재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

이 은유적 서사를 김은희 작가는 1958년 장진리에서 벌어진 염매 사건을 통해 그린다. 무고한 아이를 죽여 태자귀를 만든 사건. 그건 염해상(오정세)의 집안이 대대손손 부를 얻기 위해 태자귀를 얻고자 악귀를 만들어낸 사건이었고, 가난한데다 흉년에 시달리던 장진리 마을 사람들조차 동조해서 벌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악귀는 염해상 집안의 장손들에게 깃들어 그들이 원하는 부와 권력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악귀는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스스로도 커져가는 존재였다. 악귀는 그런 점에서 돈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내는 ‘나쁜 생각’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약자를 희생시켜 부자가 되려는 그 욕망은 사실상 개발시대의 압축성장 시스템이 고안한 것들이었다. 아이를 포함해 여성들,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은 이 시스템 안에서 일종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사회적 약자는 그 사회가 내세운 기준에 의해 밀려난 이들인데, 개발시대의 그 기준은 ‘생산성’이 중심이었다. 그 생산성 기준에서 더 많이 생산하는 대표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나머지들을 들러리로 세우거나 없는 존재처럼 치부하는 희생의 시스템이 바로 그 압축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에 의해 가족 구성원이 희생했고, 직장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희생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

즉 <악귀>가 그리고 있는 태자귀의 은유에서는, 사실상 지금껏 한국 사회가 압축성장을 통해 거둔 성과만큼 그 뒤에 놓여 있던 희생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이 작품은 구산영(김태리)이라는 청춘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 약자의 대표격으로 현재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청춘들의 서사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 청춘 대신 희생되어온 사회적 약자들 이를테면 여성이나 노인, 아이 같은 존재들을 세워도 은유의 의미는 통한다.

<악귀>는 그래서 태자귀 같은 오컬트적 존재를 통해, 우리가 거두고 있는 부의 축적에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나쁜 생각들이고, 그 나쁜 생각들의 축적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한창 빛나고 행복해야 할 청춘들이 한강다리 앞에 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사회란 한 마디로 ‘악귀’들린 사회라는 것. 그 냉엄한 비판의식이 이 작품의 은유에는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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