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만든’ 기자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산복 빨래방 기획한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기자를 만나다

부산 산복 빨래방ⓒ부산일보
부산 산복 빨래방ⓒ부산일보

PD저널=박재철 CBS PD] 현장(現場).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현장에는 이야기가 있다. 기자는 그곳에 간다. 현장에 간 기자는 ‘간과한 이야기’를 발견하거나, ‘은폐된 이야기’를 발굴한다. 말하자면 기자는 현장에 종속된 존재다. 필자가 부산일보 김준용, 이상배 두 기자에게 주목한 이유는 현장과 기자의 관계를 뒤집어서다.

그들은 있는 현장을 찾아가기보단, 이야기가 생성될 법한 현장을 직접 만들었다. 현장을 채집, 기록한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계획, 구성했다. 그러나 그 현장이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걸어올지 본인들 역시 몰랐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일이 기획이고, 그걸 외화해 구현하는 일은 연출이다. 두 기자는 6개월간 기획하고 연출하는 피디가 됐고 결과물은 훌륭했다. 직업적 선입견을 유쾌하게 깬 그들의 프로젝트명은 ‘부산 산복마을 빨래방’.

마을 대소사에 대한 정보가 우물물처럼 고이는 곳,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하고 자연스레 씻겨 내려가게 하는 장소, 그곳이 옛 빨래터다. 그 분위기가 산복마을에 재생될 수 있도록 현대식 빨래터를 마련한 셈이다.

코인 대신 이야기로 빨래 삯을 치르는 이 낯선 빨래방은 이내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로 그리고 ‘사랑방’으로 변모해갔다. 산복마을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하나둘 정착하면서 형성된 산동네다. 오랫동안 가난과 역경이 골목골목 짙은 주름살처럼 패여 있다. 특히 6.70년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값싼 노동력이 손쉽게 차출된 곳이라, 그때의 이야기가 두터운 지층으로 남아있다.

부산 산복 빨래방 ⓒ부산일보
부산 산복 빨래방 ⓒ부산일보

“부산시에서 신발공장의 역사를 담은 기록관을 세울 계획을 하고 초기 나이키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을 수소문해 찾았다고 합니다. 결국 못 찾았죠. 그런데 어느 날 당시 여공이었던 할머니 한 분이 빨래방에 오셔서 그때의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시는 겁니다.”

9년 차 김준용 기자는 사람 이야기가 좋아 기자가 됐다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 ‘제도’와 관련한 기사만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직업적 회의가 턱밑까지 차오를 즈음 산복 빨래방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런데 카페나 매점이 아닌 왜 빨래방이었을까?

“첫째, 마을에 도움이 되는 시설을 하자, 두 번째는 산복 마을에는 없는 걸 하자. 빨래방이 무료다 보니 다른 상가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됐거든요. 마을 분들이 대개 믹스 커피를 드시고 외식도 잘 안 하시니 카페나 식당은 자연스레 후보군에서 빠졌습니다. 목욕탕도 생각해봤는데 아직 코로나가 상존했고 영상 콘텐츠가 되다 보니 구현에도 한계가 있지 싶었죠. 그런데 빨래방은 마을에 없기도 했지만, 세탁하는 동안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조성되는 이점이 컸습니다.”

좋은 기획을 알아본 외부의 평가는 후했다.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부문, 문체부장관상 지역신문 콘퍼런스 대상, 일경언론상 대상 등 수상) 이번 프로젝트가 두 기자 내면에 일으킬 변화 역시, 적잖았다. 이상배 기자다.

“좋은 기사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좋은 기사는 단독보도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죠. 타사보다 좀 더 빨리 보도하는 걸 목표로 썼습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다른 관점의 이야기도 좋은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죠.”

부산일보 김준용(왼쪽) 이상배(오른쪽) 기자 ⓒ박재철 CBS PD

프로젝트에는 2천만 원의 예산이 쓰였다. “기자들은 자기 돈으로 일하지 않는다”라는 편견을 깨려고 주위 동료들을 하나둘 설득을 했고 신문사 임원들 앞에서 PT도 했다. 콘텐츠 제작 종료 후 빨래방은 마을에 기부했다.

그 과정의 우여곡절은 신간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 빨래방>(남해의 봄날) 기자인 그들이 피디로 월경(?)을 한 이유에는,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외부 배경에는 ‘레거시 미디어의 활로 모색’이라는 과제가 놓여있다. 이에 대해 이상배 기자는 라디오 피디인 내가 새겨들어야 할 답을 해주었다.

“언론인들은 왜 유튜버들을 이길 수 없는가? 한 유명 유튜버 강의에서 강사분이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더군요. ‘여러분들은 망하든 말든 월급이 나오지 않습니까?’ 절실함의 차이인 셈인데, 그 절실함이 유튜브 세계의 문법과 기호를 철저히 분석하고 생존술을 찾아내게 했다는 뜻일 테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그들하고 경쟁하려 하지 말자. 다만 좋은 이야기를 찾자. 그리고 필요하면 유튜브를 이용하자. 절대 기자 본연의 일을 놓치지 말자. 그러면 다 잃는다.”

“그러면 다 잃는다.” 마지막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 인터뷰였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