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업인의 거룩한 직업일기, ‘엔니오-더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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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를 본 두 시선 ① PD의 시선
세계가 사랑한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영화음악가로서 훑어 본 그의 직업 일대기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
영화 <시네마천국>부터 <미션>까지...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가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평생 음악에 매진한 한 천재의 삶에 평론가와 관람객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 음악에 한 획을 그은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와 권성민 전 MBC PD가 각자의 시선을 담은 영화평을 보내왔다. 2인 2색의 평론을 통해 영화를 더 깊게 들여다보자. <편집자 주>

[PD저널=권성민 PD] 미디어시장이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제작현장 일선에 있는 PD들이 체감하는 유무형의 변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혹자는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이 겪었을 변화를 말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실제로 편집기를 붙들고 앉아 있는 시간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바로 음악의 사용이다. 전파를 통해서만 방송이 나가는 동안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의 통합계약을 통해 대부분의 음악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덕분에 PD들은 자기 프로그램에 평소 좋아하던 음악의 힘을 빌려올 수 있었고, 좋은 음악을 많이 알고 있으면서 방송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PD들은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자기 감각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세련된 감각이 아니더라도 어떤 음악들은 특히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관능적인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때 어김없이 흐르는 조지 마이클의 ‘Careless Whispher’라든지, Bulr라는 그룹은 몰라도 ‘Song2’의 “우후!”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머릿속을 스치는 방송장면들이 한가득일 것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OST ‘Synopsis’는 <러브하우스>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어도 새 집의 문을 열 때마다 다들 흥얼거리고 있다. ‘뚜루루루루~’

하지만 글로벌 OTT 시대에 이런 편집은 이제 불가능하다. 해외로 전송되는 상업 프로그램은 음저협과 방송사 간 계약 범위 바깥에 있고, 따라서 이제 PD들은 기존의 곡을 사용하려면 음원마다 저작권과 실연권을 나눠 가진 수많은 이해당사자들 모두에게 일일이 허가를 받아 곡당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곡당이다, 곡당. 그러니 이제 전 세계 뮤지션들의 영감을 정수만 뽑아 프로그램에 꽉꽉 채우던 밀도는 불가능하다. OTT 전송을 전제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프로그램마다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OST를 급하게 제작하거나, BGM용으로 만들어진 배포용 음원 아카이브를 활용해야 한다. 덕분에 음악적 식견으로 방송을 고양시키던 PD들은 우울해지고 있고, 자기 음반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여러 싱어송라이터들의 수입은 급격히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묵직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앞서 ‘이름은 몰라도 들으면 아는’ 종류의 음악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스파게티 웨스턴’ 시절부터 <미션>, <시네마 천국>,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 <헤이트풀8>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라피/디스코그라피 이야기는 여기선 건너뛰자.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라고는 했지만 <시네마 천국>의 감독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그의 사적인 삶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음악을 배우며 2차대전의 한 가운데를 통과했던 그의 어린시절이나,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은 아주 짧게 언급되고 지나간다. 제목이 말해주듯 ‘마에스트로’로서의 삶, 오직 치열하게 음악을 만들어 온 그의 ‘직업사’ 만이 이 영화의 관심사다.

영화는 2시간 반 동안 오직 ‘엔니오라는 이름의 거장’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화면과 화려한 이름의 인터뷰이들, 그리고 상당히 편안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엔니오 본인의 인터뷰 화면들을 동원해 하고자 하는 말은 사실상 ‘엔니오는 천재다’ 한 가지나 다름없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임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얼마나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빼어난 성취를 이루어 냈는지를 끊임없이 동어반복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면 이해가 되는가. <미션>의 오보에 소리가 흘러나올 때, <시네마 천국>의 선율이 흐를 때,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의 음악과 함께 로버트 드 니로의 미소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나는 이 영화들에서 동시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세대는 아니니, 주변 객석을 채운 나이 지긋한 관객들이 흘리는 눈물은 내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농도였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가 런닝타임 내내 ‘엔니오는 천재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어도 거북하지 않은 것은 그 메시지 위로 흐르는 음악들에 여지없이 설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거장의 생애’를 다루는 작품치고 그가 꿰뚫고 지나간 시대에 대한 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영화음악가’로서의 그의 작업 일대기를 훑는 것은 그대로 20세기 영화예술사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들끓는 자부심을 가진 예술가임과 동시에, ‘감독의 주문에 따라 화면에 음악을 입히는’ 직업인으로서의 자각 또한 철저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이는 그의 한가지 고뇌는 ‘순수예술’로서의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향수와, 영화음악가로서 거둔 직업적 성취와 즐거움 사이의 갈등이었던 것 같다. 영화음악은 결국 누군가의 ‘발주’를 받는 것에 그 본질이 있고, 소리로만 향유하는 음악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그는 자신의 ‘영화음악’이 ‘독립적인 음악’으로서도 고유한 예술성을 가질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그러면서도 ‘영화음악’이 가져야 하는 기능적 본질을 잊지 않으며 끝까지 감독을 존중했다. (보고 있으면 저 감독들 엔니오랑 작업해서 참 즐겁고 굉장히 피곤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스틸컷

방송 PD들은 이제 자기 프로그램에 뛰어난 음악들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엔니오 같은 거장과 작업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다. 이 영화를 보는 PD들은 아마 대부분 저런 음악을 쓸 수 있어서 사무치게 부럽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음악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 거장 감독들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사실 음악을 사용할 수 있는 양상이 달라진 것은 이 직업이 겪는 변화의 사소한 부분이다. 미디어 시장의 확장과 자본의 재편성은 점점 PD들에게 기획자이자 연출자로서의 재량을 덜어내도록 요구할 것이다. 제작비가 커질수록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PD 개인의 판단보다는 자본과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될 것이고, 자본과 시스템은 또 그만큼 연출과 제작의 크고 작은 부분들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TV 시절의 공공성을 생각하던 태도가 어느 순간 걸림돌처럼 부딪히기도 할 것이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많은 PD들의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즘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회의가 몰려오는 순간이 있다면, 철저히 직업인이었으면서 동시에 그 속에 자신의 인장을 꾸준히 남겼던 어느 거장의 작업기를 보며 위안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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