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과 학생인권 ‘제로섬 게임’ 몰아간 비정한 언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홍수 범란에 환경단체 책임 타깃, 4대강 사업 정부 방침 대대적 홍보

 24일 오전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정치가 사라진 곳에 모순적이게도 가장 극단적 형태의 정치만 남았다. 폭우로 침수된 지하차도에서 14명의 국민이 희생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하천 준설” “4대강 보 복구” 등 4대강 사업 재개를 선언했다.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의 죽음으로 과중한 학생 관리에 민원과 소송까지 떠안아야 하는 ‘교권’의 위기가 떠오르자 이번엔 ‘진보교육감과 전교조가 만든 학생인권조례’가 목표물이 됐다. 하천 생태계 파괴를 걱정하는 이들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가 인권 사각지대가 될 것을 우려한 이들도 모두 ‘좌파’로 몰아붙인 서슬퍼런 ‘이념’이, 사안을 가리지 않고 삐죽 튀어나온다.

언론은 이 죽음의 행렬에서 놀랍도록 비정했다. 조선일보 <홍수 대비 미호강 준설 사업, 2년전 환경단체 반발에 막혔다>(7.20)은 폭우로 인한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미호강 범람이 “미호강 일대 준설 작업”을 막은 “환경단체 반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은 준설작업을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미호강 수질 개선 다음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수량·친수공간 확보가 아니라 홍수 완화를 위한 저류 공간 확보”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환경단체는 준설을 포함한 충북도의 ‘미호강 프로젝트’가 “배 띄우고 놀이공원 짓겠다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지 홍수 예방을 위한 강폭 확장이나 준설을 반대한 적이 없다. 환경단체를 ‘지하차도 침수 참사’의 원흉으로 몰기 위한 이러한 공세는 ‘하천 준설’과 ‘4대강 보 복구’라는 정부 기조 속에 세계일보 <사설/물관리 국토부로 환원하고 4대강 보 재건 모색해야>(7.19)와 같은 보도들로 폭발했다.

국토부 규정조차 지키지 않은 임시 제방의 부실 시공과 참사 4시간 전부터 최소 4차례 신고를 받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충북도, 청주시 등의 책임이 너무도 직관적인 참사의 원인으로 나타났지만 언론은 ‘준설’이 홍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4대강의 환상’에 매몰됐다. 하천 바닥을 퍼내는 준설이 홍수위를 고작 1m 내외로 늘릴 수 있고 그마저도 금방 퇴적토로 메워져 효과가 떨어지며 하천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은 크다는 역대 정부의 감사 및 조사 결과 역시 보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비가 내린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도림천 전광판에 호우주의보 발령으로 인한 하천이용 금지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많은 비가 내린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도림천 전광판에 호우주의보 발령으로 인한 하천이용 금지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급기야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희생된 고 채수근 상병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해병대 원망 없이 “다신 비극 없길”…故채수근 상병 부모의 편지>(7.23)와 같은 보도까지 나왔다. 고인의 부모님이 “윤석열 대통령님의 말씀과 조전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며 “생때같은 자식을 잃었음에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은 없었다”는 것이 요지다. 장갑차도 철수할 정도로 위험한 급류 수색 현장에 해병대원들을 안전장비도 없이 투입시키고 심지어 지휘관들이 대민지원을 실적으로 쌓아 진급에 이용한다는 논란까지 나온 상황에서 언론에겐 ‘유족이 대통령을 원망하는지 여부’가 너무 소중했던 것이다. 지난 19일 고 채 상병의 실종 당시 유족은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냐”며 진상규명을 호소한 바 있다. 대통령과 당국을 비판하는 모든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이는 원망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인데 몇몇 언론에게는 그 구분이 참 어렵나보다.

국가의 책무를 대신 이행하는 사람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현장에서 희생되는 건 최근 교권침해 사태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학생 간 학교폭력과 달리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에는 되도록 교육현장에서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학교폭력대책위원회와 같은 중재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소송, 폭력에 교사들이 노출되었다는 문제의식은 오랜 기간 제기됐다.

지난해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1호 과제 역시 ‘교권 보호’였고 지난해 10월 서울시의회에 교권 보호를 위한 ‘교육활동 보호 조례안’을 내기도 했다. 학부모의 부당한 교육활동 침해를 금지하고 학습 방해나 무단 침입 시 학교 출입을 제한하며 교사의 소송비를 지원하겠다는 이 조례를 상정조차 안 한 것은 서울시의회였다. 그런 서울시의회가 지난 18일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21일 갑자기 ‘학생인권조례 근원적 개혁’을 선언했다. 같은 날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 정비”를 선언하자 언론과 보수 정치권, 보수 교육감들이 기다렸다는 듯 ‘진보교육감이 만든 학생인권조례’를 겨냥했다. 24일엔 대통령까지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지시했다.

전국의 교사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사회자가 울먹이며 교사 생존권 보장 구호를 선창하자 한 교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전국의 교사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사회자가 울먹이며 교사 생존권 보장 구호를 선창하자 한 교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언론은 여기서 좀 더 비정했다. 아직 고인이 정확히 어떤 어려움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일보 <한 초등교사의 죽음...그 비극까지 파고든 가짜뉴스>(7.21)는 여러 소문들에 초점을 맞춰 ‘가짜뉴스’라 비난하고 “(경찰은)교사가 개인적 사정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수사할 것”이라 강조했다. 뉴데일리 <단독/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7.20) 등의 보도는 입수 경위와 유족 동의 여부도 밝히지 않은 채 고인의 일기장 내용을 보도하며 “남자친구와 관계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업무 스트레스와 연인관계 등으로 우울증을 알아왔고 병원 치료까지 받아온 것”를 운운했고 “학부모 갑질 내용은 없다고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4일 참다못한 유족이 일기장 일부를 공개했고 거기서 학생 관리로 인한 갈등의 정황이 나오자 언론은 안색을 바꿔 조선일보 <“업무폭탄·◯◯난리, 버겁고 놓고 싶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2주 전 일기>(7.24)와 같은 보도를 쏟아냈다. 나치 공무원들이 평소대로 일을 하다보니 유태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악의 평범성’과 유사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영혼도 책무도 잃어버린 언론에 유가족만 고통스럽다.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정부가 띄우자 분위기는 또 바뀌었다. 세계일보 <사설/교사 숨막히게 하는 학생인권조례 서둘러 재정비하라>(7.23)와 같은 보도는 “교권침해가 심각해지는 건 학생인권조례와 무관치 않다”“학생인권조례가 오히려 교권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와 ‘진보교육감’을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학생인권조례 중에서는 “수업시간 학생의 전자기기 소지 및 사용을 금지해선 안 된다”는 “사생활의 자유 조항”과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우거나 일으켜 세우면 교사가 인권침해로 몰리기 일쑤”인 “과중한 휴식권”을 콕 집어 개정하라 요구했다. 여기서 지목된 학생인권 조례의 ‘사생활의 자유’ ‘휴식권’ 조항은 헌법적 권리를 학생에 맞게 써놓은 수준이다.

“학생은 소지품과 사적 기록물, 사적 공간, 사적 관계 등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 침해되거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건강하고 개성 있는 자아의 형성·발달을 위하여 과중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 적절한 휴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들이다. 그 어디에도 수업시간에 자거나 휴대전화 쓰는 학생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규정이 없다. 오히려 “수업권 보장을 위해 규칙으로 전자기기의 사용 및 소지의 시간과 장소를 규제할 수 있다”며 지도의 근거까지 적어놨다.

서이초 사망 교사 일기장을 입수해 단독 보도한 뉴데일리 기사

‘진보교육감이 만든 학생인권조례’의 약화 또는 폐지를 지상 목표로 삼은 정부가 마침 교권침해 논란이 커지자 이를 기점으로 삼은 모양새다. 4대강 사업 재개를 위해 수해를 끌어온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은 이러한 정부 기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교권이 위험하다면 교권을 강화하면 된다. 학생 인권이 적대적 관계인 것처럼 묘사하는 주장은 언뜻 봐도 몰상식한데 몰상식을 상식으로 그리는 언론의 비정함은 해병대원 유족이 대통령을 원망했는지 따져본 언론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국민의 생명이 희생된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사건에 언론과 권력은 이처럼 기괴한 논리 구조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은 어쩌면 막을 수 없다. 4대강 사업은 재개될 것이며 학생인권조례는 대폭 축소될 것이다. 언론에 비판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정말 더 이상 불가한 일일까? 이제는 언론의 책임을 기록해 두는 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